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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를 딛고? 장애 극복?

등록 2021-08-27 18:01 수정 2021-08-28 02:21
8월24일 2020 도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8월24일 2020 도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제32회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 한국방송 KBS의 모든 중계방송을 여기서 마칩니다.”

제1376호에서 임경지 뉴스큐레이터가 언급했듯, 2021년 8월8일 도쿄올림픽 폐막식을 중계한 KBS 이재후 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는 ‘장애인 올림픽’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해 많은 이의 호응을 얻었다.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시혜적·동정적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2021년 8월24일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 개막했다. 장애인 선수들은 9월5일까지 갈고닦은 기량을 겨룬다. 이재후 아나운서 덕분에 첫 단추를 잘 끼운 만큼 패럴림픽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같이 나눴으면 한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10대 일간지 장애인 관련 기사 전체를 모니터링했던 김민정 연구원이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모니터링 리포트> 31호(2018년 4월)에 남긴 글을 발췌해 소개한다. 장애인올림픽을 보도하는 언론들이 피해야 할 다섯 가지 포인트다. 독자도 ‘매의 눈’으로 언론을 감시해주시라!

①장애인을 ‘인간 승리의 드라마’ 혹은 ‘감동의 원천’으로 묘사 ②‘소아마비를 딛고’처럼 ‘장애 극복’을 강조하는 경우 ③신체 손상을 상세하게 부각하거나 장애와 질병을 동일시하는 경우 ④장애를 무기력함, 불행, 절망 수치 등으로 묘사 ⑤장애인 가족(특히 배우자와 어머니)을 죄인 또는 영웅으로 묘사

이 다섯 가지는 실제 평창 장애인올림픽 때 많은 언론이 장애인 선수들의 성취를 묘사한 방식이었다. 이런 묘사를 피하자는 이유는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 ‘비장애인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등으로 바라보거나, ‘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해 ‘고쳐야 할 것’으로 간주하지 말자는 것이다. 즉 장애인을 대상화하지 말고, 그들의 경기력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제안이다. 또 어느 장애인 선수의 성취가 그럴 수 없는 장애인들의 좌절로 이어지지 않게 우리 사회가 세심하게 신경 쓰자는 의미도 있다. 올림픽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끝없는 도전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장애인/비장애인 선수들은 다를 게 없다.

언론과 시청자가 다섯 가지 포인트에 유의해 패럴림픽을 보면 장애인 스포츠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장애인 올림픽에서도 근대5종경기(펜싱·수영·승마·크로스컨트리·사격), 여자배구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종목의 매력에 많은 이가 빠져들었다. 선수들의 경기력과 개별 종목이 갖는 재미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레 스포츠가 가진 매력으로 손에 땀을 쥐게 될 것이다.

8월24일 패럴림픽 개막식 중계 말미 KBS는 다음과 같은 자막을 띄우고 아나운서는 “저희의 슬로건으로 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노력과, 같은 열정과, 같은 감동과, 조금 더 깊은 존경심으로 KBS 도쿄패럴림픽 중계방송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자양궁 개인전에서 안산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순간 KBS 아나운서가 한 말이 패럴림픽 내내 울려퍼졌으면 한다. “여러분은 지금 국가, 인종, 종교, 성별로 규정된 게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노력한 한 인간으로서의 그 선수, 그 자체를 보고 계십니다!”

이승준 <한겨레>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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