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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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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하인 계급’ 된 저임금 외국인 가정부들

인종·계급·젠더에 따라 달라지는 ‘돌봄 받을 자격’
싱가포르에서 미얀마 가정부 학대당해 24㎏로 숨지기도
등록 2021-09-02 09:54 수정 2021-09-03 02:20
필리핀 출신의 36살 가사노동자가 싱가포르의 한 가정집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다. 아이 양육, 환자 돌봄 등을 이주여성을 고용해 해결하는 돌봄 노동의 이주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REUTERS

필리핀 출신의 36살 가사노동자가 싱가포르의 한 가정집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다. 아이 양육, 환자 돌봄 등을 이주여성을 고용해 해결하는 돌봄 노동의 이주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REUTERS

돌봄을 돌보기 위하여 연재 순서

① 상품화된 의료의 돌봄

② 돌봄은 젠더 이슈가 아니다

③ 돌봄의 의미를 다시 묻다

④ 돌봄 노동의 이주화

모든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는 돌봄을 주고받는 존재로, 돌봄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 돌봄이 가치 있는 행위임에도 돌봄 ‘노동’은 시간과 육체적, 경제적, 감정적 소모를 수반한다. 그래서 누가 돌봄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와 누가 돌봄 노동을 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오랫동안 불평등 영역으로 남아 있다.

오랫동안 돌봄 노동은 상호적이고 호혜적이라기보다는 노예, 하인, 여성, 외국인 같은 사회적 약자가 수행해야 할 일로 강요받았다. 그만큼 힘들고 경제적 보상이 적으며 사회적으로 저평가됐다. 하지만 현재 전 지구적 차원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인간의 노동 또한 돌봄 노동이다. 팬데믹 이후 취약해진 인간 생명,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멈춘 사회적 돌봄을 누가, 어떻게 담당해야 하는지는 중요한 이슈다.

인도·아프리카 간호사 불러들인 영국

지난 40년간 발전한 국가들은 아이 양육, 환자 돌봄, 인구 고령화로 늘어난 노인 돌봄 문제를 ‘이주’로 해결해왔다. 이주자는 ‘우리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돌봄 노동을 제공하고, 값싸게 고용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된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한 미국 등은 복지 혜택을 줄이고 복지서비스를 민영화하면서 돌봄을 사적으로 해결할 일로 처리했다. 전통적인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보건의료와 돌봄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돌봄에 특화된 외국인을 대규모로 받아들였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 아시아 경제부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보건의료 종사자, 가사·돌봄 노동자는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돌봄 노동자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인도, 필리핀, 남부 아프리카 출신의 간호사와 가사노동자 등을 대규모로 불러들였다. 영국에선 인구 620명당 의사는 1명, 간호사는 185명당 1명의 비율로 있지만,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경우 의사 1명이 인구 4만3478명, 간호사 1명이 9804명을 돌봐야 한다.

이처럼 보건의료 분야에서 국가 간 돌봄 격차가 심화하는 이유는, 빈곤국이나 경제개발국에서 교육받은 보건의료 종사자가 더 나은 일터 환경과 경제적 보상을 위해 선진국으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전문직으로 인정받지는 못해도, 북반구의 노인요양 복지시설이나 병원 등에 배치돼 간호하거나 ‘낯선 이방인’ 신분으로 누군가의 가정에 들어가 아이를 기르고 음식을 만드는 돌봄 이주자도 급증하고 있다.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전 지구적 소득 불평등의 증가가 새로운 계급분화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서비스, 접대, 돌봄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돌보는 계급’(Serving Class)과 그런 돌봄을 받는 고소득층이나 중산층 계급(Served Class)으로 분화된다. 돌보는 계급은 누군가의 집에 사적으로 고용돼 아이나 환자를 돌보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청소한다. 이들은 중상류층 가족의 돌봄 공동화와 문화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고용된다.

돌봄 노동자는 국가 간 협약으로 국외로 이주하지만, 대부분 국가 총생산에 포함되지 않는 ‘사적으로 고용된 하인’처럼 일한다. 집이라는 사적 영역의 고용관계는 노동권이나 계약이 존재하지 않는 신분제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사센은 이들을 글로벌 시대에 태동한 ‘하인 계급’이라 명명한다.1

‘돌봄 사슬’에서 착취당하는 이주여성들

이들은 분명 임금노동자지만 고용주가 마치 봉건 영주처럼 이들의 신체·감정·인격에 대한 온전한 처분권을 가진 것처럼 대우하기도 한다. 돌봄 부재를 메우기 위해 협력해야 할 관계가 아닌, 인종과 신분에 따라 분리된 존재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 운전사 기택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건 둘 사이에 결코 메울 수 없는 문명적·신분적 격차가 존재하니 복종하라 요구하는 것이다.

매일 돌봄 이주자 수만 명이 당하는 폭력·성폭력·학대는 익숙한 ‘사실’이다. 싱가포르의 가정집에 고용됐다가 학대와 고문, 기아로 숨진 미얀마 가정부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2 3살 아이를 둔 24살 미얀마 가정부 피앙 응아이 돈은 싱가포르 가정집에 고용된 지 5개월 만에 사망했는데, 발견 당시 그는 몸무게가 24㎏이었고 뇌 손상이 심한 기아 상태였다. 몸에는 31개 흉터와 47개 외상이 발견됐으며, 죽기 전 12일 동안 창틀에 묶여 있었다.

이 사건이 재판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제는 여성 고용주가 겪는 ‘엄마’로서의 고충에 초점이 맞춰졌다. 변호사는 가해자 중 한 명인 여성 고용주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산후우울증과 강박적 인격장애를 겪고,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해 청결과 위생에 집착했다고 변호했다.

2021년 싱가포르에서 가정부로 일하다가 학대당해 숨진 미얀마 출신의 피앙 응아이 돈. 사망 당시 그의 몸무게는 24㎏밖에 되지 않았다. ‘Helping Hnads for Migrant Workers, Singapore’ 페이스북 갈무리

2021년 싱가포르에서 가정부로 일하다가 학대당해 숨진 미얀마 출신의 피앙 응아이 돈. 사망 당시 그의 몸무게는 24㎏밖에 되지 않았다. ‘Helping Hnads for Migrant Workers, Singapore’ 페이스북 갈무리

돌고 도는 ‘돌봄의 위기’ 악순환

경찰관이던 남편이 증거인멸을 하고 학대를 조장했다는 점은 중요한 사안이 되지 않았다. 여성 돌봄 이주자의 죽음은 다시 이기적이고 모성이 있는 여성 고용주의 문제로 환원됐다. 결국 돌봄 노동의 본질을 여성과 어머니의 일로 만들고 돌봄 노동을 하찮은 일로 간주해 여성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에 무관심했던 사회는 계속 여성을 비난하고 동정하는 방식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보지 않게 만든다.

전 지구적인 돌봄의 시장화는 인종·언어·생활양식·계급이 다른 사람들을 돌봄 제공자와 돌봄 수혜자로 연결한다. 심화하는 경제 격차와 돌봄 노동을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가부장적 각본은 새로운 형태의 돌봄 성차별주의-인종주의를 낳는다. 백인 중산층과 아시아 중산층의 이성애 가족 구성원에 대한 돌봄 요구는 삶의 질 향상, 복지 혜택, 돌봄의 사회화란 이름으로 승인된다. 이들은 ‘돌봄 받을 자격을 갖춘 존재’이다. 남반구의 수많은 여성과 보건의료 종사자는 “당신의 실업·빈곤·박탈감을 스스로 해결하라”며 이주를 권유하는 국가정책 때문에 집을 떠나기도 한다. 여성이나 주양육자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면,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는 다른 사람 손에 키워지면서 또 다른 돌봄 부재를 겪게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엘리 러셀 혹실드는 현재의 글로벌 돌봄 사슬(Global Care Chains)을 ‘감정제국주의’라고 정의한다.3 경제 부국은 자국민의 안녕, 좋은 삶과 노후, 건강을 위해 전세계 경제개발국이나 빈곤국 이주민이 보유하고 훈련해온 감정·돌봄·간호·노동·지식을 마치 천연자원처럼 마구 착취하고 값싸게 사용하지만 정작 이주노동자의 돌봄 요구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간병하고 아이를 돌봐온 중국 동포 등 이주자의 안전, 건강, 노동권은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19 같은 전 지구적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사회는 방역과 재난 구호 체제에서 이주자를 배제하며 이들을 돌봄 받을 자격에서 배제했다.

돌봄권은 돌봄을 행하고, 돌봄을 받고, 돌봄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돌봄 사회로의 전환’은 누구라도 돌봄을 받아야 하고 돌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전환이 경제력이 있는 북반구 특정 인구층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시장화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돌봄 노동에 침윤된 계급·인종·젠더 불평등 문제를 다차원으로 고려해야 한다.

‘돌볼 줄 아는 존재’가 높이 평가받아야

이를 위해선 먼저 돌봄 노동을 공유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며, 그 사회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들에선 ‘가족’이 의식주 제공부터 보육과 간호까지 돌봄의 최소 단위로 기능했다. 코로나19 위기로 다시 가족이 돌봄의 중층적 요구를 수행하는 장소가 되면서 여성에게 많은 부담을 지운다. 여성은 돌봄 시장에 나온 다른 여성의 돌봄 노동을 사서 이 위기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외에서 대규모로 돌봄 이주자를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 또한 한국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과 사회 진출을 위해 ‘저렴한’ 외국인 가정부를 ‘수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성 불평등이나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는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고, 가족 내 돌봄 노동의 공평한 분배를 문제 삼지 않은 채 돌봄 공동화를 다시 ‘여성’의 일로 환원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를 운영하고 재생산하는 데 가장 필요한 돌봄은 다시 여성의 일로 본질화되고,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부재는 여성 간 글로벌 계급 격차로 인한 차별과 갈등의 문제로 재현된다.

한 국가의 사회적 돌봄 역량을 강화하는 일은 단순히 외국인 이주자를 싼값에 고용해 해결할 수 없다. 돌봄 노동은 ‘필수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력 재생산을 보장하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논의와 법 제도화가 필요하다. 가장 긴급한 일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임금노동자가 되기 위해 교육받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돌볼 줄 아는 존재로 역할하는 돌봄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돌봄 역량을 갖춘 이가 높이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 돌봄의 인종·젠더·계급 불평등을 해결해가야 한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참고 문헌
1. , Saskia Sassen, New York: The New Press, 1998
2. www.channelnewsasia.com/news/singapore/gaiyathiri-murugayan-admits-killing-maid-piang-ngaih-don-14263088
www.channelnewsasia.com/news/singapore/maid-abuse-woman-charged-failing-to-pay-salary-on-time-mom-14710722
3. <가족은 잘 지내나요?: 현대 가족의 일과 삶과 사랑의 공감 지도 그리기>, 엘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계순 옮김, 이매진 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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