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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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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정책이 성평등을 앞당긴다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 낮아지는 ‘엄마 효과’ 등 해결 위해선
채용 강제보단 사회적 갈등 줄이는 세제 혜택 등으로 풀어야
등록 2021-09-14 10:32 수정 2021-09-17 01:18

2020년 한 해 여아 수백만 명이 실종됐습니다.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가 부모라는 점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1990년 처음 언급한 ‘실종 여성’은 실존했어야 할 여아의 예측치와 실제 여아 수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그림1은 지난 수십 년간 실종된 여성의 수입니다. 이런 끔찍한 일의 대부분은 남아선호가 뚜렷한 중국,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매년 수백만 여아가 사라진다

여아들이 사라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고 낙태를 선택하거나(성별 선택 낙태), 태어난 여아를 죽게 하는 것(산후 성별 선택)입니다. 후자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영유아 살해’라고 칭하겠습니다. 둘 다 죽음의 현장을 쉽게 포착할 수 없으니 그 수를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별 선택 낙태 건수는 태어난 아이의 남녀 성비가 자연 수치인 1.05~1.07:1에서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측정합니다. 영유아 살해 건수는 통계 기법을 활용해 5살까지 살아 있어야 하는 여아의 수와 실제 살아남은 아이 수의 차이를 계산합니다. 영유아 살해로 죽은 아이는 2020년에 171만 명, 성별 선택 낙태로 사라진 아이는 150만 명으로 추계됩니다.

영유아 살해의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그 방법이 은밀하고 잔인합니다. 여아에게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고, 아파도 제대로 치료하지 않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에 찌든 부모는 차별적 행동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방치해 죽게 합니다. 성별 선택 낙태는 산전초음파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1980년대 시작됐습니다. 이때부터는 아이를 태어난 다음에 죽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미리 성별을 알아내 배 속에서 죽이면 훨씬 쉬우니까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20년의 성비는 1.05로 지극히 정상입니다. 남아선호가 전혀 없는 나라에서도 이는 대략 1.05~1.07입니다. 남아가 왜 더 많이 태어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남자의 사망률이 일반적으로 높아서 일어난 진화의 산물이라는 설명과, 딸이 임신 초기에 유산할 위험이 더 크다는 설명 등이 있습니다.

중국·인도 여아 사망률, 남아의 1.3배

우리나라 남아선호는 1980~1990년대에 무척 심각했습니다. 그림2는 연도별로 태어난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입니다. 초음파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1980년을 기점으로 성비 불균형이 무섭게 심화됐고, 2010년 들어서야 원상복귀됐습니다. 첫째 아이의 성비는 늘 자연성비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둘째부터는 본격적으로 성별 선택 낙태가 벌어졌습니다.

성별 선택 낙태로 희생된 여아는 얼마나 될까요? 보수적으로 추계하기 위해 자연성비를 조금 크게 1.06으로 가정하겠습니다. 1993년에 첫째, 둘째, 셋째 이상 아이의 성비는 1.06, 1.15, 2.06입니다. 첫째의 성비는 자연성비와 같으니 성별 선택 낙태가 (거의) 없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둘째로 태어난 남아는 15만2766명입니다. 성별 선택 낙태가 없다면 여아는 14만4119명(15만2766명/1.06)이 태어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13만3024명만이 태어났습니다. 이 둘의 차이인 1만1095명의 여아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성비를 토대로 추산하면 1981년부터 2019년까지 사라진 여자 태아는 최소 30만 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유아 살해는 거의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2011년 유엔 보고에 따르면 남아선호가 없는 유럽·북미·일본의 경우 5살 미만 아동 사망률은 남아가 여아보다 1.2~1.3배 정도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70~1980년대에 1.1배, 그리고 2000년대에는 1.13배입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아의 추가 사망이 40~50년 전에는 어느 정도 존재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영유아 살해가 만연한 중국과 인도에선 여아가 더 많이 죽기 때문에 5살 미만 아동 사망률은 오히려 여아가 1.2∼1.3배 높습니다. (유엔, 2011).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남아선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자녀 1명만 낳는다면 66.2%가 딸을 원하고 33.8%만이 아들을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임금격차, 유리천장 등 남녀차별 여전

저 또한 딸을 더 원했습니다. 첫아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너무 기뻤지만, 꼭 딸을 낳고 싶었죠. 둘째는 가족이 필리핀에 거주할 때 임신했습니다. 산전초음파 결과 딸임을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팔짝 뛰어버렸습니다. 의사가 아들이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파안대소했습니다.

이런 저인데도 남녀차별적 태도가 있습니다. 아들과 딸에 대한 기대가 사뭇 다릅니다. 아들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기 바랍니다. 성격은 시원시원하고 리더십이 있는 아이가 되길 바라죠. 물론 딸도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을 갖기 바라지만, 외모가 예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기대하는 직업도 다릅니다. 그림3은 우리나라 부모의 첫 자녀가 갖기 바라는 직업을 보여줍니다. 임금이 높은 최고경영자(CEO), 의사, 법률가, 교수 등은 남아가 갖기 바라는 직업입니다. 여아에겐 패션 스타일리스트, 간호사, 약사, 교사 등 보수는 낮지만 가정을 돌보기 수월한 직업을 갖기 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남녀차별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대 황지수와 한양대 최자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들이 여전히 아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Choi and Hwang, , 2020) 가령 남아가 여아보다 사교육비를 10% 정도 더 씁니다. 남아의 엄마는 여아의 엄마보다 노동시간을 더 줄여 아이를 돌봅니다. 집안일도 여아가 더 많이 합니다. 이런 부모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같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도 남아가 누리는 미래 소득이 여아보다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희망적이게 출생 이후 차별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성별 임금격차가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보적인 1위입니다(그림4). 이는 동종 업계에서 같은 일을 하며 생기는 차별이 아닙니다. 남녀의 직업(직군)과 직위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성은 임금이 더 많은 의학과나 이공계로 진학할 확률이 남성보다 낮습니다. 다행히 직군 차이는 지난 20년 동안 많이 개선됐습니다. 이제 행정고시, 외무고시,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남녀 비율은 거의 비슷합니다. 여성 의사 비율도 20년 전에는 약 15%였는데, 현재는 의대 입학생의 30%가 여성입니다. 이공계 여성 학생의 비율도 30%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남녀 직급 차이는 상대적으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 핵심에는 경력단절여성 문제가 있습니다. 출산 뒤 직장을 그만두면 이후 직장 복귀가 어렵고, 이마저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죠. 최근 연구는 ‘엄마 효과’(The Mommy Effect)가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영국의 경우 출산 전 약 88%였던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이 출산 뒤 약 50%로 줄어듭니다. 미국은 약 70%에서 35%로 감소합니다.(Kuziemko, Ilyana, et al. NBER, 2018) 연세대 한유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출산 전 65% 수준이던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이 출산 후 45%까지 떨어집니다. 임금은 무려 68%나 줄어듭니다.

어렵게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또 한번 좌절을 경험합니다. ‘유리천장 효과’라고 합니다. 남성 관리자가 여성의 능력을 더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 양육, 집안일 등 가정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 큰 현실에서 여성이 사회에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부드러운 개입과 가정친화정책으로

그러므로 여성에게 어느 정도 적극적 우대조처(Affirmative Action)를 적용하는 것은 일견 타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는 주로 여성할당제를 통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여성을 채용해야 하는 방법은 강제하고 윽박지르는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대놓고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은 일부 남성들의 반발을 가져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젠더 갈등이 조장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더 우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는 여성만이 지원할 수 있는 교수 자리를 공지했습니다. 여성할당제입니다. 그런데 정작 실력이 뛰어난 여성 경제학자들은 이 자리에 지원하는 것을 기피했습니다. 실력은 없는데 여자라서 뽑혔다는 편견이 담긴 시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가 재직한 홍콩과학기술대학은 일종의 너지(Nudge·부드러운 개입)를 사용합니다. 학과별로 독립채산제를 실시하는데, 여성 부교수나 정교수를 뽑으면 대학본부에서 5년간 임금을 지원합니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 ‘기업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 조항’을 포함하도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1년 10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에는 여성 이사를 반드시 1명 이상 선임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여성 임원이 이미 있는 회사엔 영향이 없고, 여성 임원이 없는 회사를 강제하는 하수의 방법입니다. 이보다는 여성 임원을 많이 배출하는 회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부드러운 개입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고수의 방법입니다. 여성 전용 주차장도 오답입니다. 정답은 어린아이와 노약자 동반 가족을 위한 주차장입니다. 남여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불필요한 젠더 갈등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혜택을 여성이 누릴 것입니다.

양성평등으로 가는 또 하나의 축은 사회시스템을 ‘가정’친화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은 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파트타임이라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52시간근무제, 자율출퇴근제도는 가정친화적인 변화이지요. 또 ‘여성’에게만 초점을 둔 정책보다 ‘가정’에 초점을 둔 정책이 좋습니다. 가령 여성의 경력 단절에만 초점을 둔 정책 도입보다는, 출산·질병 등 다양한 어려움으로 직장을 포기하는 일이 적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추가적 배려 필요 없는 세상 오길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저렴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도 고려합시다. 홍콩에 거주하는 우리 가정은 부부가 모두 학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학계는 따로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지만, 매우 치열하게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장시간 맡아주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큰 도움이 됩니다. 부부가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실제 홍콩은 이 제도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0~14%포인트 이상 증가했습니다.(Cortes and Pan, 2013)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오랜 세월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을 받았습니다. 차별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여성에 대한 추가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배려하는 방법이 우아하면 남성들도 쉽게 수긍할 것입니다. 더 이상 추가적 배려가 필요 없는 세상도 빨리 오겠지요.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 및 공공정책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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