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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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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로레알 직원’은 왜 티셔츠를 입었을까

연장근무와 온라인 판매 등 ‘공짜 노동’ 보상을 요구하며
샤넬과 로레알 1300명 복장 투쟁
등록 2021-10-09 02:54 수정 2021-10-09 02:54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헐렁한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샤넬코리아와 로레알코리아 직원들이 ‘복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오후 12시와 5시 정각에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마스크 위에 빨간 손수건을 묶은 뒤 2분간 팻말을 든다. 티셔츠에는 ‘연장영업 반대’ ‘공동휴식권 보장’ 같은 구호가 적혀 있다. ‘투쟁’ 머리띠를 쓴 캐릭터 그림을 직접 그려넣은 이도 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연휴에 전면파업 시작 “명절에 쉰 게 처음”

백화점 화장품 매장은 정장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고, 화장법과 매니큐어 색깔까지 정해주는 ‘꾸밈노동 규정’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샤넬(400명)과 로레알(900명) 두 회사 직원들이 2021년 9월 중순 ‘복장 투쟁’을 시작했다. 연장근무와 온라인 판매 등의 ‘공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싸움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백면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연장영업을 결정하는 일을 중단하고 사전에 직원들과 협의할 것, 최근 늘어난 온라인 판매 촉진과 관련한 업무 기여분을 임금에 정당하게 반영할 것.

“연장영업을 다음날 하겠다고 갑자기 (백화점이) 결정하는 경우가 있어요. 백화점이 ‘갑’이니까 본사는 그냥 따르죠. 직원의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사전 동의를 구한다거나 (매장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일이 전혀 없어요.”(김소연 샤넬코리아 지부장) 연장영업 결정은 백화점이 내리고, 연장근무 수당은 본사가 지급한다. “매달 말 백화점의 다음달 정기휴무일이 정해지면 그 일정에 맞춰 직원들이 휴무 일정을 조율하죠. 그런데 백화점이 예고 없이 휴일을 바꿀 때마다 직원들의 개인 일정이 싹 바뀌어야 해서 개인 생활도 사라져요.”(하인주 백면노조 위원장 겸 로레알코리아 지부장)

10월6일 서울 서대문구 백면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두 위원장은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백화점과 본사로부터 이중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21년 초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백화점 노동자 44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3명 중 1명꼴(34.9%)로 야근이 잦아 하루 9~10시간씩 근무한다고 답했다. 명절에도 쉴 수 없다. 지난 추석 연휴에 노조는 이틀 동안 첫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하인주 위원장은 “명절에 쉰 게 처음”이라며 “모든 매장, 모든 직원이 함께 쉬지 않으면 단체채팅방 등을 통해 지시가 계속 내려오기 때문에 ‘공동휴식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의 충격파를 직접 맞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줄어들자 본사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이용자들에게 할인쿠폰을 지급했다. 온라인 매출이 급증하면서 백화점 현장 매출은 자연스레 줄었다. 이는 백화점 판매직원의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졌다. 임금의 15~20%가량은 판매 목표치 달성 여부에 따라 성과급으로 지급되는 탓이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현장에서 유치한 손님을 온라인이 빼가는 상황”

이른바 ‘온라인 기여노동’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과 카카오톡 ‘선물하기’ 코너 등에서 화장품을 산 손님들은 직접 매장에 와서 립스틱, 아이섀도 등의 색상을 본 뒤 최종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별도 선물 포장을 요청하거나 각인 서비스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하 위원장은 “온라인 쇼핑몰 가격이 더 싸다보니 현장 구매 고객이 물건을 환불하는 경우도 있고 매장을 찾은 고객의 온라인 쇼핑몰 가입을 돕기도 한다”며 “현장에서 유치한 손님을 (온라인이) 빼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판매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백화점에서 팔아야 하는 목표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김소연 지부장은 “전년 대비 10%, 많게는 30%까지 매출 신장을 요구해서 사실상 제로섬 게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온라인 기여노동’ 문제가 단순히 수당 지급 문제를 넘어선다고 판단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판매 중심축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고용 자체가 좌우될 수 있는 탓이다.

“재택근무가 불가한 대면 업무 등 감염병 위기에 취약한 일자리일수록 코로나19 시기 퇴직한 여성 비중이 높은”(한국여성정책연구원 ‘코로나19 이후 여성 취업변동과 고용위기 대응 정책 개선 과제’) 특성이 화장품 매장에서도 나타난다. “매출은 온라인에서, 노동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니까 시장 규모가 줄고 직원 연봉도 줄어 퇴사가 이어지죠.”(하인주 위원장) “샤넬도 지난해 ‘카톡 선물하기’ 채널을 열었어요. ‘온라인 (유통 채널) 확장을 가속화하지 않겠다고 회사가 약속해줄 수 있냐’고 물으면 답을 안 해요. 유통산업 구조가 바뀌는 건 불가피하다 해도, 노동자가 논의에서 계속 소외되다보니 ‘온라인 기여노동’을 정당하게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김소연 지부장)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한국시세이도는 ‘기여 수당’ 수급 합의

추석 때 샤넬, 로레알 노조와 함께 전면파업에 돌입했던 한국시세이도 노동조합은 최근 ‘온라인 매출 기여 수당’ 명목으로 월 5천원을 받기로 회사 쪽과 잠정 합의했다. 서비스연맹은 “액수가 적지만 성과급이 아니라 매달 모든 직원이 고정 수당을 처음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샤넬과 로레알의 노사 교섭은 지지부진하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10월9~11일 전면파업도 계획 중이다.

앞서 두 노조는 ‘감정노동’ ‘꾸밈노동’ 같은 새로운 노동 개념을 만들어 알리고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등을 싸워서 얻어낸 경험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온라인 기여노동’ 문제는 “(산업구조 전환 앞에서) 달걀로 바위를 깨는 격”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과잉 경쟁과 유통산업 전환 속에서 노동자가 입는 피해에 대해 좀더 많은 시민이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복장 투쟁’합니다.”(하인주 위원장)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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