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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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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왜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지는가

청년 무연고 사망 22명, 사인 모르는 청년 고독사 사회적 부검 필요
등록 2021-10-26 06:50 수정 2021-10-29 05:14
‘길벗 한의사모임’ 회원들이 2021년 10월1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세계 정신건강의 날, 청년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계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고독사에 대해 국가가 책임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길벗 한의사모임’ 회원들이 2021년 10월1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세계 정신건강의 날, 청년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계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고독사에 대해 국가가 책임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509-20, 회색빛 1층 건물. 이곳은 ‘무연고 추모의 집’이다.
무연고 사망자 중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장례를 치르고 난 유골함을 봉안하는 장소다. 혹시라도 뒤늦게 나타날지 모를 연고자를 유골함이 5년 동안 기다리는 장소다. 2021년 10월20일 현재, 이곳에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은 모두 3087기. 연평균 200여 기의 유골함이 봉안된다.
이곳엔 아무런 안내판도, 표지판도 없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글씨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무연고 사망자는 살아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는데,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10월15일 이곳에서 ‘제5회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 위령제’가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의 사회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다.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10월17일)에 맞춰 매년 열린다.
‘추모의 집’ 문은 평소에는 늘 굳게 닫혀 있다. 유골함 봉안 때와 연고자가 나타나 유골함 반환 요청을 할 때, 단 두 경우에만 열린다. 그리고 1년에 딱 하루 더 열린다. 바로 ‘합동 추모 위령제’가 열리는 날이다.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이나 지인 등은 이날만 기다렸다가 ‘추모의 집’ 안으로 들어가 유골함을 만난다. 하지만 올해는 위령제가 열리는 날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곳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이유로 들었다. 위령제 참석자 40여 명은 행사만 치른 뒤 떠나야 했다. 후드득 떨어지던 가을비가 위령제 시작 직전에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난과 관계 단절, 질병으로 인해 투명인간의 삶을 살았던 무연고 사망자들의 사연을 전한 제1384호(‘투명인간의 죽음’)에 이어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 리포트’ 2부를 이어간다. 이번호에서는 ‘우리 곁의 무연고사’를 집중조명했다. 무연고 사망자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 지인이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1216명을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60대(370명)가 3명 중 1명꼴(30.4%)로 가장 많지만, 3살 이하 어린 아기 6명, 20~30대 청년 22명 등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연고사 또는 고독사는 우리 곁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죽음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의 생애를 따라가봤다. 다음호(제1386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제도적 대안을 살펴볼 예정이다._편집자주

지난 609일 동안 서울에서 무연고 사망한 1216명 가운데 20~30대 청년은 22명(1.8%)이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 2020년 1월~2021년 8월 치른 공영장례 사례를 연령별로 정리해 청년만 따로 집계한 결과다. 무연고 사망자 1216명을 연령·성별로 분류해보면 60대 남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청년 무연고 사망자’도 적지는 않다.

특히 이 숫자는 최근 증가하는 ‘청년 고독사’ 문제의 한 단면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고독사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맞아 일정 시간(보통 3일)이 지난 뒤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뜻한다. 청년 고독사를 포함해 고독사만 따로 집계하는 통계는 아직 없다. 다만 가족 등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주검 인수를 회피·거부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무연고 사망자’ 통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고독사’ 실태를 일부 들여다볼 수 있다.

청년 무연고 사망자 22명 가운데 거주지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해 ‘청년 고독사’로 추정되는 이는 모두 5명(22.7%)이다. 중국 국적자인 청년 1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가족이 해체되는 경험을 한 뒤 1인 가구로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0년 서울 20~30대 청년 1인 가구는 67만2565가구에 이른다. 서울 전체 1인 가구의 절반 가까이(48.4%)가 청년 1인 가구인 셈이다. 이 비중은 2017년 46.5%, 2018년 47.1%, 2019년 47.8%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통계청 ‘연령별 1인 가구’)

2020년 여름, 거주하던 주택에서 ‘알 수 없는 이유’(사인 미상)로 숨진 강병숙(39·가명)은 부모 이혼 뒤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2020년 가을 배성철(25·가명)은 혼자 살던 주택에서 ‘알 수 없는 이유’(사인 미상)로 숨졌다. 그가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다. 10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숨졌고, 20살 무렵에는 어머니도 숨졌다. 2021년 봄, 거주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윤규일(37·가명)도 아버지가 숨져 혼자 살던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거주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진 이영자(38·가명)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재혼해 외국에 살고 있는 1인 가구였다.

무연고 사망자 통해 들여다보는 ‘청년 고독사’의 단면

이에 대해 고독사 연구 전문가인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전통적인 가족 해체와 1인 가구 증가 등의 사회적 변화가 청년 고독사 증가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돌봄 책임을 가족이 맡아왔는데,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돌봄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고독사 4명 중 3명의 사망 원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앞의 3명을 포함해 ‘원인 미상’으로 숨진 청년은 22명 가운데 모두 5명(22.7%)이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원인 미상의 죽음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청년이 왜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지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청년 고독사 현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 경제, 복지, 일자리 등의 영역에서 전반적인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숨진 현장 상황과 현장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바탕으로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사회적 부검’ 같은 방식의 현장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청년 무연고 사망자 22명의 사망 원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병사’(15명·68.2%)였다. 고혈압성 뇌출혈, 다발성 장기부전, 심내막염, 폐결핵, 유방암, 폐렴 등 다양한 이유로 청년들은 숨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도 2명(9.1%) 있었다.

주소지는 주택·주민센터·아파트 순서로 많아

청년 무연고 사망자들이 살았던 거주지는 주택이 11명(50%)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주민센터 3명(13.6%), 아파트 3명(13.6%), 고시원 2명(9.1%), 여관 1명(4.5%), 쪽방 1명(4.5%), 병원 1명(4.5%) 순이었다. 주민센터는 거주지가 분명치 않아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에 대해 행정상 관리주소로 지정되는 주소지다.

사망 장소는 병원이 12명(54.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거주지 5명(22.7%), 거리 3명(13.6%), 요양병원 1명(4.5%), 기타 1명(4.5%) 순이었다. 22명 중에는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적의 외국인 3명도 포함됐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봄꽃으로 지고 만 청춘

성폭행 저지른 친아빠 신고 뒤

“열일곱의 푸르던 너는 마냥 웃고 있었다. 언제나 우리의 귓가엔 네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네 속 타는 줄 모르고 나와 우리는 네가 행복한 줄 알았다. 미안하다. 네가 지고 나서야 후회한다. 지는 순간에 너는 얼마나 아팠을까. 봄에 만나 봄에 떠난 너는 우리에게 봄이었다. 우리는 너를 많이 사랑했다.”

2021년 3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열린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식에서 유연주(가명)를 추모하며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이렇게 적었다. 유연주의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너무 일찍 떠난 친구를 애도했다.

봄꽃이 만개하는 봄날에 태어난 유연주는 21살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지고 말았다. 유연주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빠를 잃는 것이 두려웠다. 남자친구 홍대현(29·가명)은 “그건 범죄야”라고 설득했다. 결국 경찰에 아빠 유현기(50·가명)를 성폭행 혐의로 신고했다. 경찰은 가해자와 분리하기 위해 숙소를 제공했다. 하지만 사흘 뒤, 유연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대현, 나 좋아해줘서 고마워. 넌 내 아름답던 모습만 기억해줬어. 한편으로는 너무 외로웠다.”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현기는 구속됐다. 그녀가 어릴 때 이혼한 엄마와 아빠 유현기 모두 주검을 위임했고, 유연주는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2021년 9월10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윤경아)는 유현기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 공판에는 유연주의 친구 예닐곱 명이 참석해 판결을 끝까지 지켜봤다. 홍대현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의 범죄 때문에 연주는 이제 세상에 없는데, (가해자) 처벌이 너무 가벼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유현기가 항소할 것을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유연주가 세상을 떠난 지 7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홍대현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엔 여전히 두 사람이 함께 봄날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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