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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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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끝났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갓갓 ‘n번방’의 피해자 협박하는 피의자 체포…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저지르는 디지털성범죄, 기성세대 틀 안에서 발전한 것
등록 2021-11-25 12:50 수정 2022-05-17 01:40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피고인 문형욱(닉네임 갓갓)의 상고를 기각한다.”

2021년 11월11일 대법원 제2호 법정에서 성착취물이 유포된 ‘엔(n)번방’과 ‘박사방’ 운영진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면서 관련 재판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n번방’은 운영자 문형욱(갓갓)을 포함해 총 9명의 최종 선고 형량 총합이 71년으로 피고인 1명당 평균 징역 7.9년 정도, ‘박사방’은 총 10명의 형량 총합이 145~150년으로 피고인 1명당 평균 징역 14.75년 정도, ’프로젝트n번방‘은 총 4명의 형량 총합이 24~33년으로 피고인 1명당 평균 징역 7.1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 신상이 공개됐고 각종 보안처분도 뒤따랐다.

이를 두고 2019년까지 동일 죄명으로 기소된 다른 디지털성범죄 재판에 견줘 엄벌이라는 평가도 있고, 더 강한 처벌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형량, 보안처분 등 결과에 대한 분석에서 한 걸음 나아갈 필요가 있다. 특히 범행 시기나 목적, 범행 수법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모방과 경쟁을 하며 범행을 저질렀다는 측면에서, 별건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이번 사건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문형욱과 강훈(닉네임 부따)의 대법원 선고가 있던 11월11일 경찰청은 2021년 3월부터 10월까지 실시한 ‘사이버 성폭력 불법유통망·유통사범 집중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피의자 연령대인데, 10대와 20대로 구성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62.7%(1015명)였으며, 이들이 성착취물 제작·공급의 55.2%(전체 919명 중 507명)를 차지한다. 여기에 여러 방식으로 성착취물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한 30대까지 포함하면 디지털 매체 활용에 능숙한 세대의 디지털성범죄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박사방 25살 정도, 프로젝트n번방은 17.5살

이런 현상은 ‘n번방–박사방–프로젝트n번방’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n번방 운영자 문형욱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1995년생 동갑내기로 범행 당시 24살(2019년 기준)이었으며, 박사방의 강훈과 이아무개(닉네임 태평양)는 미성년자 때 범행에 가담했다. 프로젝트n번방의 경우 범행 당시 가담자 모두 미성년자였다. 거기에 n번방을 이어받고 홍보 역할을 했던 신아무개(켈리)와 전아무개(와치맨)는 30대로, 각각 미성년자 대상의 성범죄와 해킹·불법촬영 등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였다. 범죄자 평균 나이(범행 당시)를 계산해보면 n번방은 27살 전후, 박사방은 25살 정도, 프로젝트n번방은 17.5살이다. 모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주도하고 30대 이상이 뒤를 받치는 구조로 범행을 이어나갔다. 거기에 성착취물 재유포 사범까지 포함하면 촉법소년을 비롯해 더 낮은 연령대의 디지털성범죄 피의자들이 있다.

범죄 목적에서도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n번방을 만든 문형욱은 성착취물을 토대로 한 수익 창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2015년 성년이 된 이후부터 ‘여성임을 인증하라’는 식으로 다수의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문씨는, 닉네임(갓갓)대로 온라인 세상에서 본인이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기를 원했다. 여전히 많은 디지털성범죄자가 과시욕, 통제욕 등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하고 온라인 세상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르는데 갓갓이 그 부류였다. 박사방을 만든 조주빈은 아예 처음부터 성착취물을 통한 수익 창출에 열을 올렸다. 이런 흐름을 알게 된 배아무개(범행 당시 17살)는 n번방과 박사방을 결합한 형태인 프로젝트n번방을 만들어 성착취물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잡히지 않을 거란 자신감의 근원은

범행 수법 역시 비슷했다. 이들은 보안을 위해 텔레그램을 활용하고,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피해자를 물색한 뒤 피해자 정보를 탈취, 협박하는 방식으로 성착취·성폭력을 저질렀다. ‘n번방–박사방–프로젝트n번방’으로 갈수록 범행 수법이 더 정교해졌다.

n번방의 문형욱이 독자 범행 혹은 공범 한두 명 정도와의 협업을 토대로 성착취 범행 등을 이어나갔다면, 박사방의 조주빈은 강아무개 등을 이용해 해킹을 통한 피해자 정보 탈취 등을 시도하고, 강훈 등 매체 활용 능력이 있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범행을 조직적·체계적·집단적 형태로 저질렀다. 가장 늦게 등장한 프로젝트n번방의 경우 공범을 모집한 뒤 아예 자신들이 해킹 사이트를 만들어 피해자 정보를 탈취하는 형태로 범행을 이어나갔다.

이렇듯 정보통신기기와 각종 매체의 활용 능력이 뛰어난 세대가 그에 걸맞은 윤리의식 없이 온라인 세상에서 유영할 경우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집단이나 범죄 단체 일원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모든 피고인이 어린 나이부터 성착취물을 접하거나 관련 성범죄 전과가 있음에도 범행 초기 단계에서 제대로 된 처벌과 재교육이 진행되지 않아 짧은 시간에 극악한 디지털성범죄자가 됐다.

이들은 수사기관과 법원 등 공적 시스템에 대한 조롱을 토대로 본인들이 절대로 잡히지 않거나, 잡히더라도 선처받아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매체 활용 능력이 있고 온라인 세상에서 추앙받는 존재일수록 자신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형욱은 2019년 n번방을 운영할 때부터 공범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본인은 잡히지 않을 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실제 2020년 5월 경찰 조사를 받던 와중에도 그는 본인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가 물증을 내미는 수사관 앞에서야 겨우 본인이 갓갓임을 인정했다. 이는 그간 한국 수사기관이 디지털성범죄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강훈 역시 일명 ‘지인능욕 사건’으로 조사받던 2019년 말에 여전히 박사방 운영에 관여하고 있었으며, 다른 공범들도 독자 범행 등을 이어나가며 본인이 절대 잡히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디지털성범죄 사건은?

성범죄 전과가 있던 신아무개(켈리)와 전아무개(와치맨)의 경우 선처받았던 경험을 살려 수사기관과 법원에 협조하면서 감형을 노렸다. 이들 모두 2019년 초가을에 붙잡혀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했다. 그러나 2020년 들어 텔레그램 기반의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거세지고 다양한 변화가 이어지면서 수사 협조를 통한 선처 가능성이 낮아지자 기소된 디지털성범죄자들은 ‘절차적 문제’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디지털 증거가 변형·왜곡될 가능성이 높음을 들어 증거의 동일성과 무결성이 훼손됐다거나, 압수수색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식의 절차적 하자를 들어 무죄를 끌어내려는 ‘위법수집증거배제의 법칙’을 적극 활용했다. 박사방의 천아무개(랄로), n번방의 신아무개(켈리)가 대표적으로 이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2020년 수사기관과 법원의 태도가 달라지면서 범죄자들의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피의자 신분인 디지털성범죄자들의 신상을 수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2021년인 현재도 박사방·n번방 관련 범죄자들의 검거 소식이 들리고 있으며, 꼼꼼한 수사기록 검토로 추가기소를 하고, 법리 검토 역시 세심하게 했다.

법원도 기존과 비교될 만한 형량을 선고했다. 위법수집증거배제의 법칙을 내세운 피고인들의 방어전략에 대해서도 일부 절차적 하자를 감수할 만한 예외적인 상황임을 인정해 그들의 전략을 무력화했다. 박사방의 경우 성범죄 사건에서는 최초로 ‘범죄집단’으로 인정해 공범들 역시 강력하게 처벌했으며, 그에 앞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된 프로젝트n번방에는 범죄집단의 법리를 가져오지는 않았으나 ‘공동정범’(2명 이상의 공동 범행)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다만 n번방의 경우 오프라인 성착취·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갓갓의 공범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갓갓이 잡히기 전인 2019년과 2020년 초에 집중되면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 제작 등의 혐의로 기소됐음에도 ‘작량감경’(법관 재량에 따라 형량을 줄여주는 것)이 적용되고 검사도 항소와 상고를 포기하면서 평균 ‘징역 3년’ 선고에 머물렀다. 범죄집단이나 공동정범의 적용을 검토조차 못하고 공범에 대한 법적 단죄가 마무리됐다.

n번방 이전에 소라넷, 빨간방이

이외 다른 사건도 수사와 재판 모두 잘 진행되고 있을까? 디지털성범죄자들이 이 사건의 수사·재판 결과를 보면서 반성하고 더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할까? 아쉽게도 아니다. 앞에 언급한 사건들이야 외부로 잘 알려져 언론과 시민들의 감시가 활발해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감시가 소홀한 다른 사건들은 여전히 관행에 따라 수사·재판이 진행되기도 한다. 디지털성범죄자들 역시 자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여전히 우물 안에서 잡히지 않을 것이라 과신하고 있다. 아직 멀었다.

이 사건들과 같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저지르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 사건들은 당시 유명했던 가십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디지털 유목민’으로 분류되는 기성세대의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n번방, 박사방, 프로젝트n번방’을 만들어 함께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악마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든 틀 안에서 자가발전한 것이다. 회원수 100만 명이 넘는 ‘소라넷’, 122만7천 명이 넘는다는 ‘AV스눕’, 한 해 수백억원의 수익을 얻는다는 ‘웹하드’, 피해자를 ‘노예’로 부르며 제작한 성착취물을 ‘경품’으로 내걸어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했던 ‘빨간방’ 등 한국 사회 기성세대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욕망을 충족하며 수익을 얻는 방식을 전수해왔다. 그러니 현세대의 특성이자 잘못으로 거리를 두면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2021년 11월16일 경북경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 검거된 갓갓이 유포한 n번방의 성착취물 영상과 피해자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나 그 가족에게 문자메시지 등으로 접근해 마치 영상을 공개할 것처럼 협박한 피의자 10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의 현실이 이런 것이다. 법적 단죄는 마무리됐으나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기억과 기록, 행동은 사회의 책무다. 피해자는 잊어도 사회는 기억하고 기록하며 행동해야 한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한겨레21>의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stopn.hani.co.kr) 아카이브의 ‘n개의 범죄(가해자 조직도)’를 참조하면, 글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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