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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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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지역 주민 44% “3년 안에 이주”

전국 89곳에 거주하는 600명 설문조사, 2030세대 표적집단면접조사
등록 2021-12-27 11:04 수정 2022-12-10 01:16

깜깜해도 오래 보면 보인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빛에 가려 어두운 지역이 그렇다.
<한겨레21>은 2021년 8월 말부터 4개월간 ‘지방소멸’ 위기를 심층취재했다. 전남 고흥군, 부산 동구, 경남 거창군, 전남 영암군, 대전광역시에서 도시마다 길게는 10일간 취재했다. 인구절벽 위기인 농어촌 마을, 이주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쇠퇴한 산업도시, 초등학교 폐교 위기를 겪는 산촌마을, 신도시가 그늘을 드리운 대도시의 원도심 사람들을 만났다. 소멸, 쇠퇴, 위기라는 공허한 단어를 지역주민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로 채우려 했다. 그게 얼마나 보편적인 목소리인지 궁금했다. 89곳 인구감소지역 주민의 실태와 인식 조사에 착수한 이유다.
<한겨레21>은 인구감소지역 89곳 주민 19~64살 남녀 600명을 설문조사했다. 여론조사 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2021년 11월18일~12월2일 온라인 조사로 진행했다. 지역주민의 생활 실태와 인식을 주제로 크게 36가지 질문을 던졌다. 설문 설계와 분석은 지방소멸 위기를 연구해온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과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인구감소지역 89곳 주민에 대한 설문조사는 정부와 언론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인구감소지역은 2021년 10월19일 행정안전부가 역대 처음으로 지정·고시했다. 인구 증감률, 청년(만 19~34살) 순이동률, 주간 인구 규모, 고령화 비율 등을 반영해 전국 89개 시·군·구를 지정했다. 2022년 지방소멸대응기금도 신설해 인구감소지역에 매해 1조원씩 10년간 투입하기로 했다. 청년 유출과 인구고령화, 인구감소, 도시 기능 쇠퇴의 악순환에 빠진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방책이다.
설문조사와 동시에 20·30대 표적집단면접조사(FGI)도 진행했다.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군 거주자 3명과 시 거주자 5명을 각각 2021년 12월1일과 2일 인터뷰했다. 20·30대의 언어로 통계를 읽으려 했다. 말에서 통계가 보였고 통계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인구감소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 기대했다. 이제 정부가 그 기대에 부응할 일만 남았다. _편집자주

인구감소지역 주민생활 실태·인식 설문조사

조사 대상: 2021년 행정안전부 고시 인구감소지역 89곳(시·군·구) 거주 만 19~64살 600명

조사 기간: 2021년 11월18일~12월2일

조사 기관: 글로벌리서치

조사 방법: 온라인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0%)

인구감소지역 20~30대 표적집단면접(FGI)

면접 대상: 2021년 행정안전부 고시 인구감소지역 89곳 중에 ‘시’에 거주하는 20~30대 5명(A그룹), ‘군’에 거주하는 20~30대 3명(B그룹)

면접 기관: 글로벌리서치

면접 방법: 온라인 화상 집단면접(A그룹 12월2일, B그룹 12월1일)

“더는 여기 못 있겠다. 최대한 빨리 이사할 생각이다.” -김○○(충북 옥천군·30대·여·주부)

“여긴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2세 계획할 즈음 청주로 이사할 생각이다.” -김○○(충북 보은군·30대·여·영양사)

“지난 2년간 많이 느꼈다. 큰 도시로 갈 거다. 1~2년 뒤 부산이나 경기도로 이주할 생각이다.” -안○○(경남 창녕군·30대·남·회사원)

<한겨레21>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곳 인구감소지역의 시·군에 거주하는 20~30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방소멸의 핵심은 청년들이 떠나서 지역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다. 소멸, 쇠퇴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현재 그곳에 사는 청년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이들은 떠나고 싶어 할까, 머물고 싶어 할까. 떠난다면 왜 떠나고 싶은 걸까.

먼저 인구감소지역 89곳에 사는 만 19~64살 주민 600명을 대상으로 36가지 항목의 온라인 설문조사(2021년 11월18일~12월2일)를 진행한 뒤, 이 가운데 2030세대 8명을 뽑아 표적집단면접조사(12월1~2일)를 진행했다. 8명 중에 군 거주자가 3명(경남 창녕·충북 보은·충북 옥천), 시 거주자가 5명(충남 공주·경북 영천·전북 남원·충북 제천·경북 안동)이다. 조사는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가 맡았다.

표적집단면접조사(FGI)에 참여한 8명 가운데 5명은 “수도권 또는 대도시로 이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군 거주자 3명은 모두가, 시 거주자는 5명 중 2명이 다른 도시로 갈 거라고 했다. 시점도 구체적이다. 1~2년 뒤, 또는 취업이나 출산 무렵 떠나겠다고 예정했다. 이들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구감소지역 89곳의 주민 6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35쪽 그래프 참조), ‘3년 이내 이주 의향’이 있는 사람이 44.8%(269명)였다. 이주를 희망하는 사유는 취업·창업 등 직업 관련(32.7%), 교통·편의시설 등 생활환경(23.0%), 주택 (17.5%) 등의 순이다. 이 269명 가운데 다른 시·군·구로 이주하겠다는 응답자가 72.5%였다. 전체 주민 3명 중 1명꼴(32.5%)로 3년 안에 다른 도시로 떠날 생각을 하는 것이다.(89곳 중에 구 단위는 광역도시인 부산과 대구의 5곳뿐이다.)

이주 의향은 연령이나 권역에 따라 큰 차이는 없었다. 19~29살이 76.8%로 떠나려는 마음이 가장 컸고 40대(75.4%), 50~64살(72.6%), 30대(63.0%)가 뒤를 이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해마다 국내 이사율이 10% 안팎이고, 그중 다른 시·군·구로의 이동률은 70%를 넘지 않는다. 다른 시·군·구로의 이동 의향이 3년 안에 30%를 넘는 건 매우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기준 국내 ‘지난 1년간 이사 경험’ 비율은 9.75%로 나타났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복지패널조사’) 2020년 전체 인구이동(전출입) 중 다른 시·군·구로의 이동은 62.2%(통계청 ‘국내 인구이동 통계’)로 이번 조사 결과의 72.5%보다 낮다.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젊은 사람들의 이주 의향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 연령층에서 비교적 고르게 높다는 점은 지역 공동체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연령을 아우르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의료: “새벽에 아이 안고 대전 응급실로”

“아이가 아파서 개인병원에 가면 ‘너무 어린 아기라 진료하기 어렵다’며 ‘그냥 대전으로 가라’고 말한다.” 김○○(30대·여)씨는 3년 전 대전광역시에서 충북 옥천군으로 이주했다. 남편 직장 때문이다. 갓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데 “병원 다니기 너무 불편하다”. 새벽에 아이를 안고 대전에 있는 응급실로 달려간 것만 수차례다. 국도로 30분, 고속도로는 빠르면 15분 거리다. 김씨는 1~2년 안에 다시 대전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김○○(충북 보은군·30대·여·영양사)씨는 남편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집도 직장도 보은에 있지만 외식, 쇼핑, 영화 관람은 물론 가벼운 진료도 청주에 가서 해결한다. 그는 “동네 어르신들은 진료 날짜를 맞춰서 단체로 차를 타고 청주 병원에 간다”며 “어르신들이 병원 다니기가 힘들어 대전이나 청주로 이사 가는 분이 꽤 있다”고 말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김씨는 임신·출산할 즈음 청주로 이사할 생각이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형○○(전북 남원시·20대·여·취업준비생)씨는 “면 지역에선 전주, 익산, 광주에 있는 큰 병원까지 편도로 약 1시간이 걸린다”며 “어르신 가운데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국민보건의료실태(2015년 기준)를 조사한 결과, ‘치료 가능한 사망률’이 서울 강남구는 10만 명당 29.6명인데 경북 영양군은 107.8명으로 나타났다. ‘치료 가능한 사망’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을 뜻한다. 지역별 의료 불평등이 그만큼 심하다는 의미다.

인구감소지역 주민들은 ‘지역 생활여건’ 중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점으로 ‘일자리 창출’(40.2%)을 꼽았다. 두 번째로는 ‘보건·의료·복지 여건’(16.8%)을 많이 택했다. ‘가장 필요한 지역 편의시설’을 물었더니 ‘문화·예술 시설’(25.2%)과 함께 보건·의료 시설(24.5%)을 많이 골랐다. 면 지역에선 읍·동 지역과 달리 보건·의료 시설(30.5%)에 대한 요구가 문화·예술 시설(22.7%)보다 높았다. 연령대에서는 30대가 보건·의료 시설(35.7%)을 많이 꼽았다. 30대는 ‘지역 의료기관’ 만족도에서도 다른 연령대보다 불만족한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았다(36.9%).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30대 부모일수록, (상대적으로 열악한) 면 지역에 거주할수록 의료·보건 시설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자녀 유무나 지역 특성에 따라 인프라 수요가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지역주민 5명 중 1명(19.0%·2021년 기준)은 ‘가장 자주 이용한 의료기관’이 다른 시·군·구에 있다고 응답했다. 수도권 소재 의료기관이 9.2%, 비수도권 의료기관이 9.8%였다. 지역 의료기관에 불만족한 주민들은 ‘의료진 전문성 부족(치료 결과 미흡)’(42.5%)을 최우선 개선 과제로 꼽았다. ‘의료시설 및 장비 부족’(30.7%), ‘의료기관의 거리’(17.6%) 등이 뒤를 이었다.

마강래 교수는 “그동안 시골 의료 문제는 시설이 부족하거나 병원까지 거리가 먼 현실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지역주민이 더 중요하게 느끼는 건 ‘의료진 전문성’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 “더 클수록 더 좋다”

이○○(충남 공주시·30대·여·사회복지사)씨는 병원과 쇼핑을 세종시나 대전광역시로 다닌다. 차로 세종은 15분, 대전은 40분 거리다. 그는 여건만 되면 아이 학교와 학원도 옮기고 싶다고 했다. “차량 운행이나 픽업이 가능하면 세종이나 대전에 있는 학교와 학원에 보내고 싶다. 아이만 생각하면 이사 가고 싶지만 부모님 집과 직장 모두 공주에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

1~2년 안에 대전으로 이주할 생각인 김○○(충북 옥천군·30대·여)씨는 “아이 있는 집들은 보통 옥천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대전이나 청주로 이사 간다”고 말했다. 형○○(전북 남원시·20대·여)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남원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남원엔 학원도 별로 없고 수업 내용과 정보가 부실해서, 고등학교 때 서울로 입시학원을 다녔다”며 “금요일에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전주에 있는 주말 학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 꽤 많다”고 설명했다.

지역주민 600명에게 ‘현재 사는 시·군·구에 있는 유치원, 어린이집, 초중고에 다니는 자녀 또는 손자녀가 있냐’고 물었더니 23.2%인 139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10.7%(64명)는 ‘다른 시·군·구에 있는 보육·교육기관에 보낸다’고 했다. 64명에게 굳이 다른 지역에 보내는 이유를 물었더니 △지역 내 교육시설 미흡(31.3%) △가까운 학교가 없어서(23.4%) △수업 내용 등 교육 프로그램이 부실해서(20.3%) △지역 인근 교육환경(사교육)(14.1%) 등이 꼽혔다.

600명 전체에게 ‘지역 교육여건 개선 사항’을 묻자 ‘지역 특성 맞춤 교육 프로그램 개발’(37.5%),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 지원’(15.7%), ‘우수 교사 확보’(14.7%), ‘학교시설 개선’(12.7%), ‘지역 소규모 학교 유지’(6.8%) 등의 순으로 많이 응답했다.

일자리: 공무원 말고 다른 일자리는?

표적집단면접조사에 참가한 20~30대들이 현재 사는 도시를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말은 ‘공무원이 살기 좋은 도시’였다.

“공무원시험 준비할 게 아니면 수도권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남원은 정말 좋은 도시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떠나고 싶다.” -형○○(전북 남원시·20대·여·취업준비생)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취업이면 모르겠지만 일반 사기업에 가려면 여기선 살기 불가능하다. 그나마 지역 은행 지점이 있는데 채용 인원이 극소수다.” -송○○(경북 안동시·20대·여·대학생)

“공무원은 많은데 공장이나 회사가 별로 없어서 일자리가 적다. 내 또래 중 여기서 일자리를 구해 자리잡는 건 드문 일이다.” -김○○(충북 보은군·30대·여·영양사)

“처음 여기 왔을 때 공무원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무원이 정말 많아서 저녁 6시 공무원들이 빠져나가면 식당과 가게도 하나둘 문을 닫는다.” -김○○(충북 옥천군·30대·여·주부)

“새해에 시 공무원으로 새로 취직할 예정이다. 아마 이 일을 계속할 것 같다. 여기도 일자리만 괜찮으면 살 만하다.” -황○○(경북 영천시·20대·남)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지역 생활여건’ 1위는 ‘일자리 창출’(40.2%), ‘수도권 또는 서울 대비 사회경제적 기회 격차가 가장 큰 분야’ 1위도 ‘일자리’(37.3%)가 꼽혔다. 지역 일자리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다른 시·군·구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이유다. 인구감소지역 주민 600명 중 현재 사는 시·군·구에서 구직활동을 경험한 사람은 46.3%, 다른 시·군·구에서 구직활동을 경험한 이는 38.7%였다. 다른 시·군·구에서 구직활동을 경험한 이를 연령대별로 보면 20~40대는 50% 안팎이었으나 50~64살은 28.2%에 불과했다.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한 이유로는 ‘지역 내 일자리 부족’(46.1%)을 가장 많이 꼽았고 ‘낮은 임금’(12.9%), ‘취업 정보 부족’(11.6%), ‘채용 조건 까다로움’(9.1%) 등이 뒤를 이었다.

여가: 불 켜진 편의점 딱 하나

안○○(경남 창녕군·30대·남)씨는 2019년 경기도에서 경남 창녕군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는 ‘수도권 지역주민 대비 사회경제적 기회의 격차’를 묻자 밤거리 풍경부터 언급했다. “저녁에 밖에 나가면 사람도 없고, 불 켜진 곳이 편의점 하나 정도다. 문화시설 자체가 없다. 볼링 치거나 영화 보러 차를 타고 근교 30분 거리를 가야 한다.”

형○○(전북 남원시·20대·여)씨는 온라인상에 ‘짤’(사진이나 그림 등)로 돌아다니는 영화관 얘기를 꺼냈다. “시내에 있는 영화관이 예약제가 아닌 자유좌석제라 줄 서서 기다리는 게 지루하고 시설도 낡아서 자주 방문하진 않는다.” 송○○(경북 안동시·20대·여)씨는 “안동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두 개 있는데 백화점 같은 다른 놀거리가 없어서 친구들과 대구로 놀러 간다”고 말했다. 백○○(충북 제천시·20대·여)씨는 “주변 친구들이 서울로 취업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공연, 콘서트, 전시회 같은 문화생활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도시에선 문화로 자리잡은 빠르고 편리한 배송·배달에도 갈증을 느낀다. 경남 창녕에 사는 회사원 안○○씨는 “여기가 안 좋은 게 배달 자체가 없다. 당일 배송은 없고 보통 3~4일 걸린다”고 말했다. 주부 김○○(충북 옥천군·30대·여)씨도 “새벽 배송은 전혀 안 되고 보통 이틀 걸린다. 기저귀나 분유 등 아기용품이 급히 필요하면 밤에 대전으로 차 타고 가서 구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구감소지역 주민들은 ‘가장 필요한 지역 편의시설’로 ‘문화·예술 시설’(25.2%)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지역 여가생활 여건에 ‘불만족한다’고 응답한 이유로는 대다수가 ‘절대적인 시설 부족’(61.9%)을 꼽았다. ‘경제적 부담’(15.7%), ‘교통수단 또는 거리 등 접근성’(11.9%)이 뒤를 이었다. ‘수도권 또는 서울 대비 사회경제적 기회 격차가 가장 큰 분야’도 ‘일자리’(37.3%)에 이어 ‘문화·여가 생활’(28.4%)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연령별로 보면 19~29살은 다른 연령대와 달리, ‘문화·여가 생활’(36.3%)이 ‘일자리’(36.3%)만큼이나 수도권·서울과의 격차가 크다고 답했다.

마강래 교수는 “지역 젊은이들이 일자리 부족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만, 문화·여가 생활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일자리가 있어도 불편함이 크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서울에선 당일 배송이 당연한 일인데 지역에선 빨라야 이틀 걸린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지에서 젊은이가 들어온다면

“창녕만 아니면 되나요?” 2년째 경남 창녕에 사는 30대 남성 안○○씨에게 이주할 지역을 묻자 다른 이들이 끼어들었다.

“보은 안 돼요.” -김○○(충북 보은군·30대·여)

“옥천도 안 돼요.” -김○○(충북 옥천군·30대·여)

보은군에 사는 30대 여성 김○○씨는 “부모님이 여기 안 계시면 나도 여기 안 살 것 같다. 젊은 사람이 혼자 생활하기엔 아무것도 없어서 답답하고 우울감이 들 거다. 일자리를 구해 보은으로 온다고 해도 추천 안 한다”고 밝혔다. 옥천군에 사는 30대 여성 김○○씨도 같은 생각이다. “내 또래가 ‘결혼하고 여기 살까봐’ 그러면 ‘나 곧 다시 대전 갈 거야’라고 말릴 거다.”

다만 ‘외지인이 이사 오는 문제에 대한 선호도’는 4.7%만 ‘싫다’는 의견을 밝혔다. 절반 이상인 50.3%는 ‘좋다’고 했고, 나머지 45.0%는 ‘그냥 그렇다’고 응답했다. 반면 ‘외지인이 지역에 정착하는 어려움’은 ‘쉽다’ 27.4%, ‘보통’ 50.2%, ‘어렵다’ 22.5%로 나타났다. ‘외지인이 오는 건 환영하지만 정착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일자리 구하기’(37.8%), ’지역 또는 마을 주민과의 교류’(31.9%), ‘문화·예술·여가 생활’(10.4%) 등이 외지인 정착이 어려운 이유로 꼽혔다. 20~30대 외지인의 정착이 어려운 이유는 조금 달랐다. ‘일자리 구하기’(70.3%)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문화·예술·여가 생활’(12.9%), ‘보육·교육 환경’(5.9%), ‘지역 또는 마을 주민과의 교류’(5.0%) 순으로 나타났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인구감소지역에 사는 20~30대라고 해서 무조건 자기 동네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긍정적 현실 인식도 엿보였다.

“크게 욕심 안 부리면 그렇게 나쁜 동네는 아니다. 차도 별로 없고 공기도 맑고 아주 만족한다. 평생 살 거다.” -황○○(경북 영천시·20대·남)

“차가 안 막히고 공기가 좋고, 시골치곤 값싸고 질 좋은 문화공연을 자주 한다.” -이○○(충남 공주시·30대·여)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학급이 5개였는데, 지금은 2개로 줄었다. 막냇동생이 그 학교에 다니는데 부모님은 학생 수가 적어서 선생님이 더 많이 신경 써줄 수 있다며 만족스러워한다.” -백○○(충북 제천시·20대·여)

“느리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도로를 넓힌 구간도 있고 한옥호텔이 생겼고 패스트푸드점과 프랜차이즈 카페도 하나둘 생기는 중이다.” -형○○(전북 남원시·20대·여)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지역에 청년을 중심으로 사람이 줄어서 공동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도로, 교통, 필수 공공시설이나 서비스 등 정책 개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주민 3명 중 1명은 ‘5년 전보다 지역 생활여건이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5년 전보다 ‘좋아졌다’가 32.0%, ‘보통’이 44.5%, ‘나빠졌다’가 20.9%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지방소멸 위기’(지역 간 격차 심화, 고령화, 인구감소 등) 체감도는 높게 나타났다. 지방소멸 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76.1%였다.(‘매우 심각’ 18.8%, ‘심각’ 57.3%, ‘안 심각’ 14.8%, ‘전혀 안 심각’ 1.8%, ‘잘 모르겠음’ 7.2%)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지는 미지수다. 앞으로도 지역의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절반 가까이(47.8%) 나왔다. 다만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살기 힘들어질 것’(16.3%)이라는 절망보다 ‘미래에 더 살기 좋아질 것’(35.8%)이라는 희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의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와 낙관적인 전망 사이를 메울 이는 누구인가. 지역주민은 ‘지방소멸 위기의 주된 책임 주체’로 중앙정부(47.0%)를 지목했다. 지자체(20.2%), ‘누구의 책임도 아님’(14.2%)이 그 뒤를 따랐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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