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장애인 공약, 포괄적이거나 모호하거나

이재명·윤석열·심상정 대선 후보 장애인 정책 비교 분석
등록 2021-12-30 05:42 수정 2021-12-31 02:22
지적장애 특수학교를 방문하며 최혜영 의원 휠체어를 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동취재사진

지적장애 특수학교를 방문하며 최혜영 의원 휠체어를 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동취재사진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의 장애 정책을 비교 분석했다. 모든 후보 정책을 전부 소개하면 좋겠지만 정책 분석을 함께 다루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정책도 살폈다. 후보별 장애 정책을 하나씩 살펴보며 향후 5년간 달라질 ‘장애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미리 밝혀둘 것은 ‘더불어, 장애’는 기사가 아닌 칼럼이라는 점이다. 나는 전직 정치부 기자이자 현직 발달장애아의 엄마로서 후보별 정책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장애인 삶’에 기반해 가감 없이 얘기하려 한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고(Go)!

이재명 후보의 핵심 정책 규제 없으면 허울 좋은 껍데기 될 가능성

두 후보의 핵심 정책을 먼저 살펴보자. 핵심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나머지 장애 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고 장애 문제에 접근하는 후보의 인식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 핵심 공약을 2개씩 제시했다.

먼저 이재명 후보의 핵심 공약은 △유니버설 디자인 법제화 △장애인 일자리 확대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개념으로 장애인만이 아닌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생활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다.

이 후보는 이를 공공부문부터 시행해 민간 영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법제화해 인증제를 시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법제화로 대한민국 모든 건축물과 도로 환경, 교통수단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면 우리 사회는 휠체어 이용자만이 아닌 유아차를 끄는 부부나 캐리어를 끄는 청년, 깁스한 중년과 계단 오르기 힘든 노인, 한글 안내문을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인이나 발달장애인 등 모든 사람이 생활의 장벽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한마디로 ‘케이(K)-환경’이 또 한 번 전세계를 놀라게 할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마냥 좋아하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이 후보는 유니버설 디자인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는 ‘필수’가 아닌 ‘권고’의 성격을 갖는다는 뜻일까? 워워, 그렇다면 좋다 말았다.

적어도 법제화를 하려면 강력한 법적 규제가 뒤따라야 실효성을 보장한다. 장애인 고용 문제만 해도 법적 의무고용률이 있지만 처벌 규정이 약해 각 기업은 장애인 고용 대신 벌금을 내고 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권고 사항에 불과한 법제화라면, (설령 세금을 약간 감면해주는 등의 혜택이 있더라도) 건물주 입장에선 굳이 월세 잘 받는 건물을 많은 돈 들여 이리저리 뜯어고칠 이유가 없다. 결국 강력한 규제가 뒤따르지 않는 법제화라면 허울만 좋은 껍데기 공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안내견을 쓰다듬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공동취재사진

안내견을 쓰다듬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후보의 핵심 정책 고된 길 놓인 개인예산제, 방향성에서 충돌

이번엔 윤석열 후보의 핵심 공약을 살펴보자. 윤 후보는 △사회서비스 확대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제시했다. 눈에 띄는 건 개인예산제다. 오~ 윤 후보님, 정말로 장애계의 오랜 염원인 개인예산제를 건드려보시려고요? 대환영입니다. 박수 백만 번 짝짝짝짝짝.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미국·일본 등에서 시행하는 제도로, 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 맞춤 계획을 개별적으로 세워 당사자에게 직접 예산을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사회서비스 제공 기관이 예산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발달장애인 아들의 경우 생후 13개월부터 재활치료(언어, 작업, 감각통합, 심리, 심리운동, 놀이, 음악, 인지, 특수체육 등 안 해본 치료가 없다)를 시작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바우처(사회서비스 이용권) 카드를 통해 소정의, 아주 적은 치료비를 지원받는데 문제는 그것마저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 다니는 언어치료실이 바우처 등록 기관이 아닌데다 다음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특수체육 치료실도 바우처 등록이 돼 있지 않다.

바우처 등록 치료실을 다니면 안 되냐고? 아들의 장애 특성에 맞는 치료실, 아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사가 하필이면 그 기관들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이 수학학원에 가야지 나라에서 돈 조금 지원받는다고 국어학원에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개인예산제가 시행되면 재활치료와 활동지원 서비스, 방과후 활동이나 병원 진료비 등 아들에게 정말 필요한 곳에 맞춤으로 지원금이 사용되면서 가정의 부담도 줄어든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들이 나라의 복지서비스를 받는 걸 실감할 듯하다.

나는 윤 후보가 개인예산제 도입을 꼭 실현하길 바란다. 장애인 사회서비스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모든 부서가 각기 다른 서비스를 맡아 시행하고 지방자치단체 간 사업도 천차만별이다. 개인예산제를 도입하려면 이 모든 부서와 지자체 사이의 예산·업무·인력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등 고된 작업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필요성은 느끼지만 여태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는데, 윤 후보가 그 엄청난 일을 하겠다며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당연히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 후보는 현금수당을 제공한다고 장애인 삶의 질이 개선되진 않는다며 사회서비스 확대를 강조했다. 개인예산제는 당사자에게 현금지원을 늘리는 방식이다. 스스로 제시한 정책 안에서 방향성이 충돌한다.

장애인 이동권 저상버스만으로 될까

두 후보 모두 장애인 이동권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법제화로 장애인 이동권의 물꼬를 튼 이재명 후보는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22~2026년)’에 맞춰 저상버스 도입률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는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비율을 평균 5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장애인 콜택시를 중증장애인 인구 100명당 1대 수준으로 증차하겠다고 밝혔다. 또 ‘장애인 교통바우처(카드)’를 제공해 특별교통수단, 바우처 택시, 철도, 버스, 자가용 유류비 등에 모두 쓸 수 있게 하겠단다.

사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대책은 저상버스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저상버스는 장애인만이 아닌 누구나 탑승하기 편하기에 정책으로 제시했을 때 욕먹을 일도 없고 예산집행을 위한 여론 형성에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정말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다면 시내버스의 저상버스화만으로는 안 된다. 서울 사는 장애인은 서울 안에서만 돌아다니고 부산 사는 장애인은 부산 안에서만 돌아다닐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지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시외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도 추진해야 하고 기차나 항공, 선박 이용시 휠체어 편의를 위해 더 많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두 후보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장애인 탈시설 국가책임제에 온도차

장애인 탈시설과 관련해선, 두 후보 모두 탈시설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를 위한 세부 정책의 준비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먼저 이 후보는 2021년 8월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계승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탈시설지원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이 후보는 △주거와 지원서비스가 합쳐진 지원주택 도입 △자립 지원을 도울 수 있는 자립지원사 양성 △24시간 지원서비스 체계 구축 △장애 맞춤형 전문 활동지원사 양성 △장애인 활동지원사 행위별 차등 수가제 도입 △장애인 일자리 사업 확대 △장애인연금 확대 △건강주치의 제도 확대 △방문재활서비스 도입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윤 후보의 탈시설 정책은 좋게 말해 포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모호하다. “비단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돌봄 역시 탈시설, 지역사회 돌봄으로 가는 게 맞다”며 “‘지역사회 돌봄 기반 조성’이라는 방향성으로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재가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핵심 공약으로 밝혔던 ‘사회서비스 강화’에 중심을 두겠다는 것.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을 뒷받침할 구체적 공약으로는 △전국 광역시도 ‘장애인근로자 지원센터’ 설치 △건강주치의 제도 확대 등을 제시했다.

어쩌면 장애인 탈시설과 맥락을 같이할지 모르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와 관련해서도 두 후보는 온도차를 보였다.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는 못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를 완수하겠다”며 발달장애를 넘어 모든 유형의 장애인에 대한 국가책임제를 약속했다. 반면 윤 후보는 “장애인 사회서비스 확대 정책 속에 발달장애인 돌봄 지원도 포함돼 있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요구를 잘 청취해 전체 장애인 지원 정책, 돌봄 정책 속에서 적극 반영하겠다”며 ‘적극 반영’이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이 외에 앞에서 다루지 못한 두 후보의 장애 정책을 마저 살피면 다음과 같다. 이 후보는 △장애인 상시지원 서비스 체계 구축 △개인별 장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체계 구축 △의사소통 지원체계 구축 △교육권 보장 △문화예술 활동 지원 등의 공약을 제시했고 이 모든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통합·조정하기 위해 국무조정실의 구실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환경 조성 △유니버설 디자인 국가 투자 △정부 구매를 통한 안심도시 조성 △ICT(정보통신기술) 및 가상현실 기반의 체육활동 개발 △유니버설 체육환경 조성을 위한 산업·연구·교육 분야 유니버설 클러스터 조성 △모든 주택에 편의시설 등급제 실시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심상정 후보 장애인 지표가 OECD 평균 이상 되도록

사실 이번 칼럼을 쓰면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장애 정책도 함께 취재했으나 지면 한계로 당선 가능성 높은 두 후보의 공약만 소개했음을 밝힌다. 심 후보 캠프와 연락하면서 느낀 것은 장애 정책이 미리 준비돼 있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평소 장애인 삶에 관심을 갖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증거다.

심 후보는 “장애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2대 원칙과 7개 공약을 발표했다. 2대 원칙으로 심 후보는 탈시설과 자립에 힘을 실었고 모든 장애인 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상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7대 공약에선 획기적으로 느껴질 만한 정책도 눈에 띈다.

먼저 장애인등록제를 폐지해 등록장애인만이 아닌 지원이 필요한 누구라도 복지정책을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했다. 국가의 공적 서비스 책임 강화를 위해 국가장애인서비스공단을 설립하고,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공기업도 설립할 계획이다. 재원 조달을 위해 장애인권리보장특별기금을 설치하고 장애인지예산도 도입한다.

이 밖에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장애인복지법을 장애인서비스법으로 개정 △10년 내 완전 탈시설 이행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무장애 환경 구축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 등 세부 공약을 제시했다.

장애인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생활밀착형 심 후보의 공약을 보면서, 당선 가능성 높은 두 후보에게서 이런 부분이 부족함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이재명 후보의 경우 현 정부의 장애 정책을 보강하고 새로운 것을 추가로 덧입힌 느낌이라 어느 정도 생활밀착형 정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윤석열 후보는 아직 많은 게 두리뭉실한 느낌이었다. ‘잘 모르는구나, 장애나 장애인의 삶에 대해.’ 내가 받은 솔직한 느낌이다.

각 후보의 장애 정책 최종 답변을 받은 날은 이 후보가 12월17일, 윤 후보가 12월18일이다. 날짜를 밝히는 건 그동안 각 캠프의 장애 정책이 더 다듬어지고 추가돼 새로운 형태로 발표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의 장애 정책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 믿고 싶다.

장애가 삶에 들어온다는 것의 의미

이번 칼럼을 위해 12년 만에 취재를 다시 하면서 즐거웠다. 옛날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속에서 막 뜨거운 열정 같은 게 솟아나면서 정치부 기자로 질문하고 맞짱 뜨고 마감에 쫓기던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는 일.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직장에 온종일 나가 있으면 발달장애인 아들은 누가 키울꼬. 활동지원사 지원만으론 어림도 없다. 장애란 이런 것이다. 장애가 내 삶에 들어온다는 건 이런 의미다.

그래서 두 후보에게 바란다. 앞으로 여러분이 이끌게 될 차기 정부에선 누가 장애인 자식을 낳더라도, 누가 사고로 중도 장애인이 되더라도, 누가 노화로 신체 기능에 손상이 오더라도 기존에 영위하던 일상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장애가 사회적 장애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가 있는 삶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사회적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하고 필요한 지원체계를 넓히는 방향으로 장애 정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개인의 장애가 사회적 장애물이 되지 않는 삶. 그런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만들어줄 대통령을 나는 기다린다.

류승연 작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