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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 교육은 모르겠고 노동은 확실한

고교생들 죽음으로 몰고 간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 학교 전담 노무사에게 듣다
등록 2021-12-30 06:33 수정 2022-01-26 07:45
2021년 10월12일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서울지부가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 중에 숨진 홍정운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안전한 노동실습 환경을 요구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21년 10월12일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서울지부가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 중에 숨진 홍정운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안전한 노동실습 환경을 요구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21년 10월 전남 여수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 홍정운 학생이 요트의 따개비를 제거하러 들어간 바다에서 숨졌다. 2017년 이민호 학생은 생수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2017년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수연 학생은 실적을 채우지 못해 괴로워하다 숨졌다. 2014년 김동준 학생은 대기업 식품공장에서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이전에도 밤샘노동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학생이 있고, 항만공사 현장에서 바다에 빠져 실종된 학생이 있었다. 모두 현장실습생이었다.

실습제도 기업 기준 있으나 마나

홍정운 학생은 배의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야 했다. 지난 십수 년간 정부는 현장실습 학생들이 부리기 쉬운 노동자로 혹사당해서 사회적 지탄을 받으면 ‘노동자와 같이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했다. 그러다가 숨지고 다치는 학생이 나오니 ‘노동자가 아니’라며 ‘실습을 폐지하고 학습을 중심으로 하겠다’고 했다. 현재 실습제도는 기업 규모 등을 낮춘 일정 선정 기준을 통과한 ‘선도기업’에 취업하도록 하고, 선도기업 기준에 들지 못하는 곳에는 교육청의 승인이 필수적이지 않은 ‘참여기업’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결국 아무 데나 취업할 수 있게 해둔 것이다. 학생들은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법을 적용받지 않지만, 일하기에 산재보험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정부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교육은 기업에 외주를 주고 안전과 산재 교육은 노무사들에게 외주를 줬다. 교육부는 2019년부터 ‘직업계고 현장실습 학교전담 노무사제도’를 도입했다. 각 교육청이 관할지역 고등학교의 실습학생, 실습참여 기업, 전담 노무사가 연계되는 이 제도를 관리한다. 공인노무사회가 직업계 고등학교와 노무사를 짝짓고, 짝지어진 노무사는 학생 교육, 현장실습 중인 기업 방문, 학생 면담 등을 한다. 학교에 현장실습 운영위원회가 열리면 참석하기도 한다.

김영(가명) 학교전담 노무사를 2021년 12월17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나,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을 물었다.

학교전담 노무사들에게 가장 큰 일은 학생들이 산업재해가 일어날 만한 환경에 놓인 것은 아닌지 찾아내고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현장실습 ‘체크리스트’대로 물어보는 거예요. ‘위험한 일을 시키지는 않나요?’ ‘폭력이나 성희롱은요?’” 학생들은 거의 ‘없다’고 대답한다. “다 문제처럼 보여요. 인권, 노동법 교육 없이 주먹구구거든요. 학교 역량에 따라서 학생들이 가는 기업이 달라지고.”

직업계 고등학교의 현장실습은 3학년 2학기에 3개월가량 이뤄진다. 학생의 권리를 중시하는 노무사와, 행정을 중시하는 교사 사이에 의견 충돌이 벌어지곤 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학교로 돌아오지 마라, 행정 복잡해진다’고 말하면 저는 따로 학생에게 ‘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바로 돌아올 수 있어’라고 말해줘요. 그렇지만 학생이 누구 말을 듣겠어요?“

2017년 11월 현장실습 도중 목숨을 잃은 이민호씨의 영구차가 학교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17년 11월 현장실습 도중 목숨을 잃은 이민호씨의 영구차가 학교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노동을 모르는데 산재를 알까

노무사는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기 전에 산재를 교육해야 한다. 노동권·인권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어야 산재를 가르칠 수 있는데 학생들은 그것에 대해서 모른다. “산재에 대해 이야기해도 아예 질문이 없어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필요해서) 하다보니 노동법 교육 절반, 산재 교육 절반을 하고 나오게 돼요.”

교육은 학생 100~200명이 앉아 있는 강당에서 50분 수업으로 이뤄진다. 이 수업으로 현장실습을 나가 자신이 맞닥뜨릴 공간에서 물리적 안전을 보는 눈을 틔우고,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같은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반도체 회사에 실습을 나간 학생이 실습 끝나자마자 4조 3교대로 일하는 계약서를 썼어요. 취업에 성공한 거죠. 그런데 (계약서를 쓰기 전에) 반도체 공장이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는 알 길이 없어요. 또 미용실에 취업한 학생이 여럿 있어요. 어마어마하게 큰 기업형 미용실이더군요. 손님 안내, 손님과 대화하기, 샴푸하기를 배워요. 샴푸하느라 학생 손에 피부병이 났어요. 제일 힘든 건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서 있는 거, 바로 손님을 안내할 수 있게 서 있어야 하는 거래요.”

현장실습은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서 시작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말 잘 듣는 노동자가 필요하던 시대의 프레임으로 2021년의 직업교육을 한다. “학생들이 실습은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도 많이 가요. 학생들에게 단순조립, 제품 포장 등을 시키죠. 기업에서는 ‘회사 돌아가는 걸 알려면 밑바닥부터 해야지’ 이러죠. 단순한 일을 하는 학생들은 만족도가 낮아요.” 김 노무사는 실사를 같이 나간 교육청 장학사에게 학생들의 전공과 해당 기업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서류만 있으면 돼” “손가락만 안 잘리면 돼”라는 답을 들었다.

“한 학생이 특허기술이 있다는 가전제품 공장으로 실습을 나갔다고 해서 면담을 갔더니 온통 이주노동자만 있는 거예요. 얼마나 열악한 걸까, 이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현장실습은 교육도 아니고 노동도 아니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동인 것은 확실하다. 실습제도에서는 기업이 ‘갑’이다. 학교는 학생들을 받아줄 곳을 찾아야 한다. 실습학생을 받는 기업에 각종 지원금, 세제혜택이 제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가 ‘을’이다. 을이 보낸 학생들은 자신이 겪는 위험이나 불안한 상황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기업이 ‘갑’ 학교가 ‘을’인 현장에서

“실사를 나가도 학생이 일하는 현장을 안 보여줘요. 사장실에 앉아서 ‘안전하게 일하고 있냐’ 회사 쪽에 물어보고 서류에 체크하고 나와요. 현장을 보여달라고 하면 같이 간 교사가 ‘기업이 귀찮아할 일은 만들지 말라’고 해요.” 김 노무사는 교사들이 ‘우리 학생이 나간 곳은 사무직이라서 위험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걸 몇 차례 들었다. 교사들은 학생에게는 “방긋방긋 웃고 다니라”고 말한다.

홍정운 학생이 숨진 지 2개월이 지났다. 세상은 잠깐 홍정운의 죽음에 멈칫하고는 팬데믹과 대통령선거의 스펙터클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최저임금보다 더 최저를 줘도 감사히 받고, 노동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도 기꺼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대선 후보가 됐다. 정부는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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