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로 12년간 투병생활을 해온 배구선수 안은주씨가 끝내 숨을 거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운데 1774번째 죽음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22년 5월3일 안씨가 5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폐가 굳어,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 폐 이식 수술을 받은 뒤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목을 절개해 산소발생기를 착용했고 하반신 마비와 욕창, 시력·청력 저하에도 시달렸다.
안씨가 쓰러진 때는 배구선수에서 은퇴한 뒤 경남 밀양의 한 초등학교와 실업팀에서 코치·심판으로 일하던 2011년이었다. 건강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선 ‘원인미상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 가습기당번’을 사용하고 있었다.
같은 해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도 원인미상의 폐질환으로 산모 4명이 숨졌다. 정부는 4개월간 역학조사 끝에 산모들의 폐 손상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했다. 제품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폐질환의 인과관계가 확인됐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11년이 지났지만 안씨는 옥시 쪽에서 어떤 배·보상도 받지 못했다. 2022년 3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피해자 7천여 명에게 9개 기업이 최대 9240억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내놨지만, 이 역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옥시와 애경은 다른 기업들에 견줘 피해보상금 분담 비율이 크다는 이유 등으로 조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안씨 가족은 병원비를 감당하면서 5억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안은주씨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남편과 남동생, 부모님이 사시는 집을 담보로 농협 1억5천만원, 수협 1억5천만원의 빚을 내 폐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화학물질 독성으로 숨진 부모가 남긴 빚으로 왜 아이들이 불행한 삶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살아가야 합니까.”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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