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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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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소수자’를 발굴한 이유

65살 이상 고령 장애인 비중 절반 차지하는 등 소수자 정치 의제 부상은 피할 수 없어
등록 2022-05-12 14:46 수정 2022-05-13 01:20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정치권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을 포함해 장애인, 이주민 등 소수자 집단을 겨냥한 캠페인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22년 3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에 대해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시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을 연이어 쏟아내면서 불거진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중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2020년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20만 건 넘는 동의를 얻으며 수면 위로 올라온 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의 핵심 공약이 됐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젠더 갈등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은 제각각 남성 또는 여성 표를 바라고 움직였다.

소수자 집단과 관련된 정치 이슈가 성장한 것은 1차로는 보수 내부의 ‘혁신’ 시도와 관련 있다. 소수자들이 기회주의적으로 무임승차하고 공동체의 법과 질서를 어지럽혀, 근면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정치적 서사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우파 정치 슬로건과 전략을 벤치마킹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좀더 깊게 해당 이슈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른 개별 소수자 집단의 양적·질적 성장이 감지된다. 해당 집단과 관련된 정치 의제가 부상한 것은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고령자 2007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

최근 장애인 관련 논쟁이 놓치는 사실은, 급격한 고령화가 장애인 집단 내부 구성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등록장애인현황’에 따르면 65살 이상 고령 장애인 비중은 2007년 32.7%에서 2014년 41.4%를 거쳐 2021년 51.3%까지 늘었다. 중장년(50~64살) 장애인 비중은 2021년 28.4%로, 2007년 30.6%에서 소폭 줄어든 수준이다. 노인이 장애인의 절반을 넘었다.(표1)

노화로 장애인이 된 사람이 늘어난 것이 장애인의 고령화를 이끌고 있다. 2020년 새로 장애인으로 등록한 8만3300명 가운데 60살 이상은 5만4400명으로 3분의 2가량이다. 청각장애(47.8%)가 절반 가까이였고 그다음은 지체(15.2%), 뇌병변(15.2%), 신장(9.1%) 순이었다. 노화로 인한 청각 상실, 신장병, 뇌질환 등이 주된 원인이다. 공식적인 장애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 받을 정도로 신체 기능이 떨어진 이도 많다. 이종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2021년 서울 성북구 고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35.7%가 독립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수단적 일상생활 수행능력’(IADL)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등록인구 가운데 고령자는 2021년 22.3%로 2007년(11.6%)에 견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베이비부머의 상징인 ‘58년 개띠’는 2023년부터 고령자로 분류된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노인에게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이 된 셈이다. 장애인 이동권 이슈가 몇 년 뒤부터 노인 이동권과 긴밀하게 결합·확대될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돌봄, 주거, 생계유지 등의 문제도 장애 노인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39곳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외국인

제조업이나 농업에서 외국인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2020년 현재 전국 시군구 중 외국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충북 음성(14.6%)이다. 물류센터와 경공업 공장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인력을 외국인이 채운 결과다. 서울 영등포구(13.5%)·금천구(13.1%)·구로구(12.6%)나 경기도 안산시(13.1%)와 같이 잘 알려진 곳 못지않게 경기도 포천시(12.5%), 전남 영암(12.4%), 경기도 시흥시(11.7%), 충북 진천군(11.6%)에서 외국인이 많은 건 공장들이 누구를 써서 유지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농번기가 오면 지방 신문들이 외국인 노동자 수급 문제를 지적한 지 오래이기도 하다.

번듯한 대도시 바깥의 중소도시엔 예외 없이 산업단지 인근에 소규모 외국인 거주지가 형성돼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과 ‘주민등록인구’를 이용해 전국 3481개 읍면동(자료 통합이 안 된 일부 지역 제외)의 외국인 비율을 살폈다. 39개 지역(1.1%)에서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10~25%인 곳도 264곳(7.6%)이었다.(표2) 외국인 밀집 지역은 경기도 시흥·김포·화성, 경북 경주, 충북 충주, 경남 김해 등 전국 곳곳에 있었다.

경산고 교사 배주현씨가 경북 영천의 외국인을 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공식 집계보다 많은 노동자가 공장과 농가에서 일했고, 특정 아파트 단지 등에 몰려 살았다. 기업형 임대사업자 등 한국인의 외국인 상대 사업도 활발했다. 다문화가정 출신 청소년의 가파른 증가도 관찰된다. 초등학생의 외국인 비중은 2012년 1.1%에서 2021년 4.2%로 뛴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증가가 지방자치단체 정치와 행정의 주된 의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활로를 찾아 움직이던 보수의 발굴

젠더 이슈 비중이 커지는 배경 중 하나는 노동시장 내 여성 역할 확대다. 29~34살 여성 고용률은 2003년 57.5%에서 2021년 64.0%로 늘었다.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초임 상위 50%(사실상 대기업 취업자) 집단에서 여성 비중은 2008년(졸업연도 기준) 34.5%에서 2016년 41.8%로 늘었다. 여성의 보폭은 넓어지는데 노동시장 내 격차와 각종 차별이 남아 있으니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소수자 집단 문제는 정치가 외면하거나 슬며시 이들에 대한 반감에 편승해온 ‘파묻혀 있던 의제’에 가까워 보인다. 나머지 정치세력이 사회 변화에 둔감할 때 활로를 찾아 움직이는 보수가 갈등 요인을 주도적으로 발굴하고 구획화한 것이 지금의 논쟁 양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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