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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 두 개 정부…‘일촉즉발’ 내전 위기

등록 2021-04-02 18:02 수정 2021-04-03 07:08
미얀마 14살 소년 툰툰 아웅(누운 이)의 유족이 2021년 3월23일 만달레이 묘지에서 아웅을 안장하기에 앞서 오열하고 있다. 아웅은 22일 자신의 집 앞에서 반쿠데타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의 총을 가슴에 맞아 숨졌다. AFP 연합뉴스

미얀마 14살 소년 툰툰 아웅(누운 이)의 유족이 2021년 3월23일 만달레이 묘지에서 아웅을 안장하기에 앞서 오열하고 있다. 아웅은 22일 자신의 집 앞에서 반쿠데타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의 총을 가슴에 맞아 숨졌다. AFP 연합뉴스

미얀마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군부 쿠데타 이후 꼭 두 달 만인 2021년 3월30일까지 군인들의 무차별 총격과 폭력에 숨진 민간인이 확인된 집계로만 520명을 넘어섰다. 희생자에는 어린이도 다수 포함됐다. 이에 맞선 민주화 진영은 4월1일 소수민족까지 아우른 ‘국민통합정부’ 구성을 선포하고 군부가 만든 현행 헌법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또 ‘연방군’을 창설해 정부군과 맞설 태세다.

식민지 63년, 군부독재 53년

미얀마 현대사는 압제와 저항의 역사다. 1885년 옛 버마 왕국이 영국의 침략전쟁에 패배해 식민지로 전락했다. 1948년 독립해 민주공화국 ‘버마연방’을 수립하기까지 63년 동안 영국과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미얀마는 버마족이 68%로 다수이지만 샨족, 카렌족, 라카인족, 카친족, 한족 등 공인된 소수민족만도 135개나 된다.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이 주도한 반파시스트인민자유동맹(AFPFL)은 1948년 독립국가 수립 이후 제헌의회 선거를 비롯해 1960년까지 모두 네 차례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투쟁, 민간정부와 군부의 갈등, 세계적 냉전체제의 지정학적 환경 등은 안정적 근대국가 건설 여정의 발목을 잡았다. 1962년 독립운동가 출신 군인인 네 윈이 쿠데타로 전권을 장악했다.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질 군부통치 체제의 시작이었다.

미얀마 정치사 연구자 장준영은 2017년 저서 <하프와 공작새>에서, 미얀마 현대사를 결정짓는 3개의 열쇳말로 군부, 이데올로기(버마식 사회주의), 종교(불교)를 꼽았다. 군부를 대체할 대안 사회세력이 없는 가운데, 군부가 명목상 사회주의 이념과 종교 민족주의를 동원해 정통성을 포장하고 바깥세계와 단절한 채 지배권력을 공고화했다는 것이다. 첫 쿠데타 직후 서방은 미얀마 군부정권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발동했다. 이는 미얀마 군정이 접경국인 중국과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폐쇄적 특권집단 군부… “세뇌당한 현대판 노예”

3월28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미얀마의 전·현직 군인 4명을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 아카데미 출신의 한 현역 대위는 “군인 대다수가 세뇌당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시위대를 범죄자로 본다. 대다수 군인은 평생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앞서 3월 초 소속 부대를 탈영한 툰 미야트 아웅 대위는 자기와 똑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동료 시민들을 죽인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그는 “동료 군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라와 군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나라를 선택하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인들은 끊임없이 ‘조국과 종교(불교)의 수호자’라는 의식을 주입받으며, 외부와 단절된 그들만의 기득권 집단 속에 각종 특권을 누리며 산다. 상관은 부하의 모든 언행을 감시한다. 이는 군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민간인에 대한 우월 의식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탈영 장교는 “우리는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정당한지 부당한지 질문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은 ‘현대판 노예제’”라고 말했다. ‘미얀마군의 날’인 3월27일,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등 군 수뇌부는 화려한 기념 파티를 열고 불꽃놀이를 즐겼다. 이날 미얀마 전역에선 군경의 무차별 총질로 최소 1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얀마 군부의 권력은 군부가 소유한 국영 대기업 미얀마경제홀딩스(MEHL)와 미얀마경제공사(MEC)가 제조업, 금융, 유통까지 주요 산업을 장악한 돈줄로 뒷받침된다. 미얀마 독립언론 <이라와디> 보도를 보면, 군은 국가 예산에서 줄곧 최대 몫(약 14%)을 차지했다.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민간정부 시절이던 2019~2020 회계연도에도 국방 예산은 3조3859억차트(약 2조717억원)로 기획재정부에 이어 2위였다.

민주 진영 “국민통합정부와 연방군 창설”

미얀마 군정은 1990년대까지도 고립주의를 고수하며 정치·경제적 실권을 장악한 막강한 이익집단이 됐다. 반면 미얀마 민중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1988년 8월8일 시작된 ‘8888 민주화투쟁’이 수천 명이 숨지는 학살극으로 끝나고 만 것도 비극이었다. 그러나 이 저항으로 흘린 피는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한 범민주화운동 진영인 NLD를 싹틔운 거름이 됐다. 군부가 2000년대 들어 ‘민주화 로드맵 7단계’를 발표하고 부분적 개방과 형식적 민주화를 표방한 것도 시민사회의 끈질긴 저항 덕분이었다.

마침내 2015년, 반세기 만에 민주선거로 치른 총선에서 NLD가 압승했다. 1962년 쿠데타 이후 처음 민간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군부의 입김은 여전히 막강했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또다시 NLD가 선출직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압승을 거두자, 군부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쿠데타로 응수했다.

2021년 3월30일 현지 독립언론 <미얀마 나우>는 “군부의 민간인 학살이 지속되자 일부 시민이 이제는 무장을 결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군부독재에 맞선 저항이 두 달 가까이 되면서 다음 단계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대학을 마치고 부모의 가업을 돕던 코사웅(24)은 “단순히 시위하고 화염병만 던지고 있을 순 없다”며 국경 지역에서 수십 년째 군정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이는 소수민족 반군 그룹에 합류했다. <미얀마 나우>는 “압제자들과 싸우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도시를 떠난 청년이 수백 명”이라고 전했다.

NLD가 주축인 임시정부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도 군정의 학살에 맞서려 소수민족과의 ‘협력’을 천명했다. CRPH는 군부 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 298명이 구성한 비상기구다. 이들은 4월1일 소수민족까지 참여하는 ‘국민통합정부’ 구성을 선포하고, 군부의 종신집권을 보장한 현행 헌법을 대체할 과도헌법 성격의 ‘연방민주주의헌장’을 발표했다. 조만간 ‘연방군’을 창설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2개의 정부가 양립하면서 내전 발발 위기도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다.

미얀마 시민사회는 유엔이 ‘보호책임’(R2P)을 발동해줄 것을 희망한다. 보호책임이란 어느 국가가 자국민에게 심각한 반인도주의 범죄나 대량학살을 저지를 때 국제사회가 개입해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2005년 9월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R2P는 ‘인권 보호’와 ‘주권국가의 내정 불간섭’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자의적 판단과 부당한 내정 개입 위험이 상존한다. 나아가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될 경우 무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결과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유엔이 도와달라”… R2P는 양날의 칼

얀 나잉 툰 NLD 한국지부장은 3월31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미얀마 시민은 (평화적인) 시위만 하는데도 군사독재가 총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며 “미얀마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고 했다. △군인 정권으로 되돌아가는 것 △유엔이 R2P를 발동해 개입하는 것 △무장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툰 지부장은 “미얀마 사람들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빨리 R2P를 적용해 미얀마에 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며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유엔 R2P 지원이 안 되는 것에도 준비하고 있다. 연방군을 만들고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3월3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비공개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으나, 미얀마 군부를 제재할 실효성 있는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이 회의에서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군부가 대화에 나서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현지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피의 학살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고 통신이 전했다. 부르게너 특사는 “미얀마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고 다차원적인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한 집단행동에 모든 가능한 수단을 검토해줄 것을 이 자리에서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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