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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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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홈리스 쉼터…불평등 바이러스가 퍼지는 접촉지대

‘집콕 시대’에도 쫓겨나는 홈리스들과
홈리스 주거시설 반대한 코리아타운 이민자들 사이의 비균질적 경험
등록 2021-04-03 05:24 수정 2021-04-04 12:21
2021년 3월1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아시아인 혐오 반대’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 REUTERS 연합뉴스

2021년 3월1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아시아인 혐오 반대’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 REUTERS 연합뉴스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코로나19 참상이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하나는 이 팬데믹이 오랫동안 존재해온 불공정과 불평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필자가 사는 로스앤젤레스와 미국 전역에서도 파괴적인 손실과 높은 실업률이 이어지고 있다.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와 비백인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노숙인이 늘고, 특히 세입자들은 심각한 주거 불안에 허덕이고 있다. 팬데믹을 둘러싼 비균질적인 지형은 근본적으로 원주민에 대한 정착민의 식민지적 강탈, 처벌받지 않은 채 지속되는 체계적인 반(反)흑인 인종주의, 국경과 지역사회에서 이민자와 난민에게 벌어지는 비인간화와 폭력에 의해 형성된다.

접경에만 국한되지 않는 ‘접촉지대’

최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마사지·스파 업소 종사자들에 대한 총격 살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젠더·인종·연령·계급 사이 상호교차성은 취약함을 초래하고 또 증폭한다. 조지아가 견고한 백인우월주의와 비백인 유권자에 대한 지속적인 투표 방해의 현장이자, 치열한 인종횡단적인 정치 조직화와 이민자 권리 획득에 대단히 중요한 현장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희생자 대다수인 중국과 한국 이민 여성은 이런 지형적 위치로 인해 특별히 표적이 됐다.

접경의 시공간을 주제로 하는 이 연재는 ‘접촉지대’(Contact Zones)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용어는 1991년 문학 연구자 메리 루이스 프랫이 처음 창안했다. 1992년에 나온 그의 책 <제국의 시선>(Imperial Eyes)에 자세히 설명됐다. 프랫의 책과 페미니즘 문화연구 책에서 접촉지대는 단순히 제국의 눈에 비친 식민지의 프런티어(Frontier·변경)가 아니라, 권력이 넘쳐흐르고 치열하게 경합하는 문화 충돌의 공간을 말한다. 접촉지대는 국가 사이의 지역이나 서로 물리적으로 인접한 경계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랫은 접촉지대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지리적, 역사적으로 나뉜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확립하는 공간으로, 대개 강요, 극도의 불평등, 꼬여버린 갈등의 조건들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즉, 접촉지대는 항상 투쟁을 동반하는 상호작용과 연결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코리아타운이나 차이나타운과 같은 이민자 집단거주 지역도, 이주민을 조직하는 사회단체 또는 홈리스(노숙인)로 불리는 집 없는 사람들의 보호 쉼터도 접촉지대로 분석할 수 있다. 조어된 지 30년이 흐른 뒤에도, 코로나19로 인한 비균질적인 경험, 가까움과 친밀함의 모순적인 접촉을 포착하는 데 이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2020년 8월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국제공항에서 실직한 공항 노동자들이 자신을 해고한 델타항공이 ‘코로나19 원조·구호·경제안정법’(CARES Act)에 따른 정부 자금을 지원받았다며 재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0년 8월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국제공항에서 실직한 공항 노동자들이 자신을 해고한 델타항공이 ‘코로나19 원조·구호·경제안정법’(CARES Act)에 따른 정부 자금을 지원받았다며 재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취약층 더 비참하게 하는 ‘불평등 바이러스’

코로나19를 ‘불평등 바이러스’라고 명명한 것은 빈민구호 단체 옥스팜이었다. 팬데믹의 사회경제적 여파가 저임금·비백인 노동계급이 주로 고용된 숙박·접대와 여가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특히 적시에 적절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와 저소득층, 원주민 커뮤니티에서 비참한 결과를 낳고 있다. 흑인과 라틴계, 그리고 하와이 원주민 등 퍼시픽 아일랜드계는 코로나19로 사망할 가능성이 백인보다 거의 세 배 더 높다.

매일 수천 명이 감염되고 수백 명이 죽어가던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도,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를 단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 차이에는 거의 항상 인종과 계급, 거주 형태에 따른 건강 수준이 작용한다. 심지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재난을 경험하더라도 고통받는 방식은 놀랍도록 비균질적이다.

특히 집이 없어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은 비참한 접촉지대의 ‘핫스폿’을 이루고 있다. 2020년 로스앤젤레스에서만 4만1290명이 노숙을 경험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2019년 대비 14%, 2015년과 비교하면 61%나 늘어난 수치다. 높은 임대료와 저렴한 주택 부족에 더해, 기록적으로 높은 실업률(2020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 실업률은 몇 개월 동안 20% 이상 올랐다)까지 가세해, 노숙 문제는 당장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아직 알지 못하는 2020년과 2021년의 수치는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종종 홈리스는 범죄를 저지르고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비난받지만, 범죄에 가장 취약한 것은 바로 홈리스다. 그들은 공중보건 측면에서 어느 계층보다 더 취약하며,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훨씬 높은 사망률에 직면한다. 원래 갈 곳이 없는데다, 이 ‘집콕 시대’에도 여전히 쫓겨나기를 거듭한다. 2021년 3월27일 로스앤젤레스시는 에코파크 인근에 세워졌던 집단 텐트촌을 강제 철거하고 주민들을 쫓아내면서 이에 저항하던 182명을 체포했다. 시장은 너무나 진지한 어투로 이번 강제 철거를 “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주거 제공을 위한 이전”이라고 자축하며, 이 모델이 시의 다른 지역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잠잠했던 홈리스 단속이 다시 시작될 듯하다.

이동하지 않을 자유와 자택 격리도 ‘특권’

팬데믹은 새로운 역동성을 초래하고 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권력과 이동성, 격리와 위험성 등 모든 것은 이 팬데믹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재고돼야 한다. 전반적으로 ‘이동의 자유’와 ‘이동할 수 있는 삶’이 긍정적으로 평가돼왔다면, 이제는 ‘이동하지 않아도 될 자유’와 ‘자택 격리’도 일종의 특권이 됐다. 팬데믹 시기에 움직일 필요 없이 집에 머물며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는 안전을 누린 것은 부유층과 권력층이었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아예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가까움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특권이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세상과 마주해 감염 위험을 감수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결코 허용되지 않는 사치였다.

물론 팬데믹에서의 ‘사회통제’와 ‘집에 머물기’ 명령은 감옥이나 유사한 기관들에서의 감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제 수감된 사람들에게 구금과 부동 상태는 취약성을 배가했다. 미국 교도소 850여 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 일반인보다 감염률이 3배 이상 높고 사망률은 2배나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동과 부동의 절대적 차이라기보다 거기서 생산되는 공간의 질과 권력이다.

가까움과 관련된 위험이 너무 커 의료 종사자들은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최전선의 근무자’(Frontline Worker)로 불렸다. 간호사와 의사, 병원 직원과 구급대원은 모두 최전선의 근무자로, 마치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는 병사들처럼 치명적인 감염병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저녁 7시나 8시, 혹은 다른 시점에 최전선의 직장인들에게 감사와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창문을 열거나 잠시 밖으로 나와 솥이나 냄비를 두드려 소리를 내는 행사가 종종 있었다.

뉴욕에서는 #ClapBecauseWeCare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주민들이 슈퍼마켓 직원, 배달노동자, 직장과의 근접성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필수 인력에게 잠시 박수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선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가 이웃과 함께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최전선에 선 필수 노동자들을 위한 행동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먼 곳에서도 들리는 이웃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우리는 잠시나마 ‘닫힌 문 뒤에서’(behind closed doors)의 삶을 벗어나 서로의 연결성을 확인했던 것 같다.

많은 한인이 심리적 소유감과 친밀성을 표시하는 코리아타운을 통해 글을 맺고자 한다. 내가 잘 아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졸업생이 지금은 코리아타운에 거주지가 있지만 한동안 집이 없어 떠돈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대학생이라면 부유하고 전문직에 대한 야망을 가진 인구라는 고정관념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많은 대학생은 극심한 주거 불안, 굶주림 등 다양한 종류의 곤란을 겪고 있다.

부모가 감옥에 있는 학생도 있고, 가족이 추방돼 혼자 생활하는 이민자 학생도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학교 근처 주차된 차에서 잠자던 학생도 있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 아침에 샤워하기 위해 캠퍼스 체육관이나 기숙사를 이용하던 학생도 있다. 그나마 학생들을 위해 푸드뱅크를 설치해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시설을 갖춘 학교들이 있어 다행이다. 팬데믹으로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2020년 3월 캠퍼스가 폐쇄됐을 때, 교습만 지리적으로 멀어졌던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대면수업을 들을 수 없었을 때, 캠퍼스 시설과 생명줄이던 지원 네트워크와 멀어진 학생이 수없이 많았다.

어떤 학생은 로스앤젤레스를 횡단하는 24시간 버스에서 잠을 자며 밤에 피난처를 찾았던 적이 있다고 나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720번 버스는 로스앤젤레스 시내, 코리아타운, 베벌리힐스, UCLA를 지나 동에서 서로 운행한 뒤 샌타모니카와 태평양 연안에 도착한다. 적어도 그 버스는 따뜻했고 다른 곳보다 안전했으며 자기가 잘 아는 학교 동네와 코리아타운을 지나는 친밀한 경로라서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2021년 3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인 주거 지역에서 한 여성 노숙인이 자신의 텐트 앞에서 식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1년 3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인 주거 지역에서 한 여성 노숙인이 자신의 텐트 앞에서 식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LA 대학생들, 집 없어 차에서 잠자기도

720번 버스의 정류장 중 하나는 코리아타운 중심에 있는, 북적거리는 교차로인 윌셔와 버몬트 모퉁이에 있다. 거기에는 지하철역도 있는데, 아직 공사 중인 지하철 노선의 총 8개밖에 안 되는 정류장 중 하나다. 2018년 5월, 로스앤젤레스 시장과 정치인들은 그곳에 홈리스를 위한 임시 주거공간을 지을 것이라고 야심차게 발표했다. 도시 전역 캠페인의 하나로 공터에 65개 침상을 갖춘 시설을 건축할 것이며, 이는 작지만 중요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는 캘리포니아주 유권자가 2016년 주택 위기 해결을 위해 2억7500만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홈리스 감축과 예방, 주택 및 시설 채권’(HHH) 조처에 찬성표를 던진 결과였고, 로스앤젤레스시는 마침내 의미 있는 임시 주택 정책을 실현하는 듯했다.

그런데 코리아타운에 홈리스를 위한 임시 주거시설이 마련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항의 시위가 일기 시작했다. 코리아타운 사업주들과 이른바 지도자들은 예고 없이 알려진 결정에 놀랐다고 주장했고, 홈리스 주거시설을 반대하는 세력을 동원했다. 코리아타운에 홈리스 시설을 지으면 다른 곳에서도 홈리스가 몰려올 텐데 ‘왜 하필 여기냐’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로스앤젤레스 정치인들이 한인 사회 지도층과 상의도 없이 결정한 것은 한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의 수사에는 종종 임시 주거시설이 ‘노숙인 텐트촌’으로 묘사됐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그러나 유명 부동산 중개업소는 집회를 위해 수천 개의 포스터와 펼침막, 맞춤옷까지 지원했다. 주류 한인 커뮤니티 뉴스는 코리아타운이 외부의 위해로부터 보호돼야 하는 영토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 모든 것을 무정한 ‘님비’(NIMBY)의 전형으로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 역사상 가장 심각한 주택 불안과 홈리스 위기 속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코리아타운이 망할 것이라는 공포와 분노를 한국어 매체를 통해 확산했던 이들이 사업자와 부동산 이해관계자였음은 사실이다. 홈리스 주거시설 확충을 지지하는 외침은 한인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코리아타운의 한 카페 벽에 밝은 노란색 포스터가 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큰 글씨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어, 처음에는 세월호 관련 포스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홈리스 주거시설 반대 그룹이 제작한 ‘공청회 반대, 셸터 반대’라는 포스터였다.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된 지 1년 뒤인 2018년 5월의 일이었다. 그래서 한인 사회는 자연스럽게 대규모 시위 구호를 이렇게 사용할 수 있었을까? 시 당국은 결국 양보하고 코리아타운 경계를 넘어 동쪽으로 0.8㎞ 떨어진 곳으로 임시 주거시설 위치를 옮겼다.

팬데믹 이후, 누구를 위해 재건해야 할까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코리아타운을 포함해 로스앤젤레스의 업소들이 영업을 재개하는 지금, 나는 엄청난 불평등의 장소가 된 이 접촉지대의 비균질적이고 중첩되는 역사와 지리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리아타운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한인 슈퍼에서 제품을 정리하고 수많은 바와 식당의 복잡한 주차장에서 능숙하게 고객 차를 주차하며 고객을 대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이 팬데믹 속에 다들 잘 계실까. 거리에서 생활하는 남녀노소의 홈리스들, 3년 전 홈리스 주거시설을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지금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 고투를 벌여야 하는 중소상업인, 그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코리아타운에 사는 수많은 이민자를 위해 만든 긴급 대응 네트워크가 있다. 이민세관단속청(ICE) 경찰들이 나타나면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급히 알려 서류 미비자, 무등록 이민자가 현관문을 잠그고 ‘닫힌 문 뒤에’ 숨을 수 있도록 하는 급진적 연대 시스템이다. 팬데믹 사태에 한동안 동면 상태였지만 다시 가동될 수 있을까. 다시 안전하게 모여 우리가 상실한 모든 것을 헤아려볼 때,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재건하는 선택을 할 것인가.

한주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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