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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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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세이프존’을 지원하라

독일에서 국제연대운동 앞장선 교민 활동가의 호소
등록 2021-09-14 09:07 수정 2021-09-16 01:37
클레어 함 재독 영화 PD·독일 앰네스티 활동가

클레어 함 재독 영화 PD·독일 앰네스티 활동가

[#Stand_with_Myanmar]
2021년 봄, 미얀마 국민은 군부독재 정권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의 글을 제1358호부터 미얀마어로 번역해 함께 싣습니다. #Stand_with_Myanmar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7개월. 2021년 9월7일 민족통합정부(NUG)가 ‘전국적 무장저항’을 선포하면서 미얀마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구촌 모두의 삶의 무게가 무거워진 만큼 독일 시민사회의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내가 국제연대활동을 해오던 국제앰네스티 소그룹도 활동을 잠시 멈췄고, 매주 열리던 ‘미래를 위한 금요일’ 기후집회도 대폭 축소됐다.

공감과 격려, 위로의 힘

그러나 미얀마의 인권 위기가 워낙 심각하다보니 독일에서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집회가 주요 도시 9곳에서 여러 차례 열렸고, 정당과 비영리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미얀마 군부에 트럭을 공급하는 중국 자동차업체 시노트럭의 대주주인 만콘체른(MAN-Konzern) 그룹을 포함해 미얀마 군부와 거래하는 독일 기업에도 시민사회의 압박이 가해졌다. 결국 미얀마 군부 통제 아래 있는 중앙은행과 거래하던 독일 화폐 인쇄업체 기제케&데브리엔(G&D)는 미얀마 군부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도 절박한 마음에 독일 녹색당과 사회민주당, 중국 영사관 앞 등에서 1인시위를 벌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각자 거주하는 곳에서 1인시위를 하자’고도 제안했다. 뜻밖에 많은 시민이 응원해줬다. 내가 미얀마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저는 아름다운 당신의 나라에 가본 적이 있어요. 쿠데타 소식이 안타깝지만 힘내세요”라고 격려하는 이도 있고, 1인시위를 하고 있으면 다가와 “뜻깊은 행동”이라고 응원도 해줬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은 ‘미얀마 상황이 안타깝지만 개인 차원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이런 무력감은 한국 시민들에게도 자주 보인다. 물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게 최상이겠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한다는 격려도 정신적 의지가 될 것이다. 내가 1인시위 소식을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는데 한 미얀마 시민의 댓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세상에 악만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세상에는 선이 존재하는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이런 작은 위로가 단 한 명의 미얀마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미얀마 국민은 한국의 민주주의 투쟁사에서 희망을 본다. 하지만 한국의 한 활동가에 따르면 ‘민족통합정부를 미얀마의 합법 정부로 인정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겼으나 정부는 모호한 표현으로 이를 회피했고, 여야 정치권의 공식 지지에도 7개월 동안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은 없었다. 위험에 노출된 미얀마 난민을 위해 난민촌을 짓자고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가 제안했던 ‘코리아 세이프존’ 프로젝트는 미얀마 현지 언론에 보도되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한국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이미 예산이 책정된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중 무상자금 165억원은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즉시 전용 가능한데도 말이다.

유엔총회 앞에 놓인 운명적 선택

미얀마 시민들과 연대하는 게 힘들다 느껴지면 잠시 휴식을 취하자. 하지만 다시 돌아와 더 힘차게 이들의 손을 잡자. 2021년 9월14일에는 군부와 민족통합정부 중에 미얀마의 공식 대표(유엔 주재 대사)를 정하는 유엔총회가 열린다. 민족통합정부로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지하운동세력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곧 미얀마 내전이 시작된다는 제보도 들린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 한국이 미얀마를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우리는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보자. 미얀마 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맬 시간이다.

클레어 함 재독 영화 PD·독일 앰네스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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