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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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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막을 생각 없는 ‘저출산 정책’…가사노동 해결하라

핵심은 결혼과 가사노동에 대한 세대·성별 간 인식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등록 2023-10-13 10:05 수정 2023-10-19 12:31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가 2023년 3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려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가 2023년 3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려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방소멸과 저출생은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여러 경로 중에서 가장 확실한 연결고리다. 지방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서울로 몰려들고, 서울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소진한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아이는 비현실적인 미래이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말, 한국 청년들이 처한 이런 상황을 알려주는 두 개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하나는 8월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및 2분기 인구동향’이다. 이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기준으로 전국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합계출산율 1.0을 넘긴 지방자치단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세종시 0.94, 더 이상 세울 대책이 없다

서울이 단연 0.53으로 가장 낮았다. 서울은 이미 2022년 4분기에 0.54를 기록해서 0.6의 벽이 무너진 바 있다. 그에 비해 1.0의 마지노선을 꿋꿋이 지켜온 곳이 있었다. 세종시다. 거주자 가운데 맞벌이 공무원이라는 안정적 직업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학교와 도서관, 공원 등 신도시의 인프라가 아이 키우기에 가장 좋다고 정평이 난 곳이다. 그래서인지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은 1.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3년 2분기에 기어이 0.94를 기록했다. 세종시조차 1.0을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세종시의 수치는 그저 출생률이 전국적으로 하락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세종시의 0.94는 이제 한국에서 일자리와 보육, 교육, 주거 등 어떤 방식의 전통적 출산장려 정책도 현재의 저출생 추세를 막을 수 없다는 징표다. 합계출산율이 계속 떨어진다는 추세가 아니라, 더 이상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이 인구동향 통계 발표 직전인 8월28일, 역시 통계청이 발표한 의미심장한 조사 결과가 있었다.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 변화’다. 이에 따르면 19~34살(청년기본법 기준으로 ‘청년’에 해당)에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2022년에 36.4%였다. 10년 전인 2012년의 56.5%보다 무려 20.1%포인트 떨어졌다. 2010년대야말로 우리가 저출생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많은 지원책을 양산했던 시기임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한 결과다.

주목할 만한 점은 남녀 간 차이다. 남성은 43.8%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지만, 여성은 28.0%에 그쳤다. 그렇다고 남성의 결혼 긍정률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2012년 남녀의 결혼 긍정 답변 비율은 각각 66.1%, 46.9%였다. 남성과 여성 모두 22.3%포인트, 18.9%포인트 줄었다. 더 심각한 점은 ‘결혼 뒤 자녀 출산’에 대한 생각이다. 이 조사에서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청년은 53.5%로 절반이 넘었다. 여기서도 남녀 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남성은 43.3%가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답했지만, 여성은 65.0%에 이르렀다. 20% 넘는 차이가 났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19~34살 여성 가운데 3명 중 1명도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3명 중 2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합계출산율이 0.6이라도 유지되는 게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여성 취업은 모든 세대가 좋게 생각, 가사 분담은?

일단 합계출산율이 왜 이렇게 낮은지는 이해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것 같다. 먼저 ‘여성 취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육아 부담’이라고 답한 비율은 46.3%다. 흥미롭게도 여기서는 여성 48.5%, 남성 44.3%로 남녀 간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두 성별이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10년 전과의 차이다. 여성의 취업 걸림돌이 육아 부담이라고 한 응답은 2011년에 46.2%였다. 지난 10년 동안 이 비율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2022년에 ‘일과 가정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청년은 45.4%, ‘가정이 우선’이라고 답한 청년도 20.9%에 이르렀다. ‘일이 우선’이라고 답한 청년은 33.7%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추이의 급격한 변화다. 2011년에 ‘일 우선/ 균형/ 가정 우선’의 비율은 각각 59.7%, 29.1%, 11.3%인데 2021년에는 ‘33.7%, 45.4%, 20.9%’로 순서가 바뀌었다. 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났지만, 역전은 2019년과 2021년 사이에 극적으로 일어났다. ‘가정이 우선’이라는 비율은 2011년 11.3%에서 격년 단위로 1%씩 꾸준히 상승하다가, 2019~2021년 15.5%에서 20.9%로 급격히 상승했다. 코로나19로 학교와 보육시설이 폐쇄되는 육아 한계 상황을 마주하면서, 젊은 부부들의 인식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가사 분담을 부부가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응답은 국민 전체에서 10년 동안 45.3%에서 64.7%로 증가했지만, 청년세대에서는 59.7%에서 84.4%로 더 많이 올랐다. 2012년에는 국민 평균과 청년의 격차가 19.4%포인트였는데, 2022년에는 24.7%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가사 분담에 대한 세대 간 견해 차이가 오히려 더 커진 것이다. 세대 간 격차는 확실히 문제가 된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일까? 청년세대가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국민 가운데 35.3%, 곧 3명 중 1명 이상이 2022년에도 ‘특정 성별이 가사 분담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까?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것은 ‘여성이 취업하는 것이 좋다’에 대한 세대별 견해다. 좋다는 의견은 청년세대에서 85.2%인데, 국민 전체에서도 87.4%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요컨대, 여성이 일하는 것을 모든 세대가 압도적으로 좋게 생각하지만 가사 분담에 대해서는 세대에 따라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주된 이유’에서 남녀 간 응답이 상이하게 나온 것이 흥미롭다. 여성은 ‘결혼 자금 부족’과 ‘필요성 못 느낌’이 각각 26.4%와 23.7%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성은 각각 40.9%와 13.3%로 큰 차이가 났다. 조금 단순화해 말하면, 남성은 ‘필요하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결혼을 못하지만, 여성은 ‘결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2019년 5월11일 세종시 종합복지센터 행복맘터 조리실습실에서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두른 아빠와 아이들이 ‘커리두부스테이크’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한겨레 정은주 기자

2019년 5월11일 세종시 종합복지센터 행복맘터 조리실습실에서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두른 아빠와 아이들이 ‘커리두부스테이크’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한겨레 정은주 기자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기간 가장 길지만…

이런 결과를 종합해서 보면, 세대·성별 간의 결혼과 출산, 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지난 10년 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모두가 여성이 일하기를 원하지만, 육아 때문에 그것이 힘들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부모 세대와 남성은 이 부담을 고스란히 여성이 맡기를 원한다.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육아와 가사에 대한 생각의 세대·성별 간 차이 때문이고, 필요한 것은 여성이 출산 뒤에도 일할 수 있는 사회인식과 구조의 변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부가 뭘 안 한 것은 아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생 대책에 무려 280조원을 투입했다. 보육 인프라도 구축하고, 출산장려금도 주고, 산후조리원 이용도 지원하고, 다자녀 혜택도 여럿 줬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동안 합계출산율은 1.13에서 0.81로 떨어졌다. 헛돈을 쓴 것이다. 당연하다. 지난 20년 가까이 정부가 해온 일은, 이를테면 화장실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로 가는 길을 만들고, 표지판을 만들고, 휴게소를 만들고, 화장실을 대리석과 보석으로 꾸미고, 그 앞에서 일 보고 나온 사람들을 위해 박수부대를 준비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동안 헛돈을 썼다는 데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예산 지출 방향이 멈추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만약 문제를 잘 몰랐다면, 이런 조사를 통해 방향을 새롭게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연 이런 상황을 전혀 몰라서 예산이 잘못 쓰였을까? 아니면 어느 정도 알지만 그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해서 다른 곳에 적당히 예산을 뿌리고 만 것일까?

핵심은 결혼과 가사노동에 대한 세대·성별 간 인식 차이를 어떻게 줄일지에 있을 것이다. 여성의 역량에 대한 관점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에서 ‘일도 살림도 모두 잘하는 여자’로 변화한 지 오래다. 문제는 여전히 사회인식의 상당수가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육아휴직 수당은 최고상한액이 여전히 150만원이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에서 남성 비율은 2022년 기준으로 여전히 17.7%에 불과하다. 육아휴직자 차별이 가장 적다는 공공기관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육아휴직 비율은 여전히 6:1이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웨덴, 룩셈부르크에서는 육아휴직자의 45% 이상이 남성이다. 모두 출생률이 높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성적표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법으로 보장된 아빠의 육아휴직 기간(1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그러나 실천되지 않는다. 국가도 사회도 기업도 저출생이 걱정이라며 예산을 써대지만, 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많은 저출산 대책은 임신·출산 지원, 양육 지원, 가족 지원, 미래세대 육성 등에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예산은 양육 지원에 투입되고, 수혜 대상은 주로 저소득층이다. 보편적인 ‘일-가정’ 양립에는 별 대책이 없다.

저출생 걱정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위해…

이 상황에서 과연 젊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가와 사회가 여성의 일과 육아에 대해 근본 인식을 바꿀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결혼을 장려하고 아이를 낳으라는 정책을 펴는 어리석은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떤가? ‘우리는 저출생에 대해 걱정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이지, 실제로 저출생을 막을 생각은 없다’고.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소멸 직전의 정치: 2024년 4월10일 총선일을 디데이 삼아, 한국 정치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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