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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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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녹색섬’ 남산에 다시 겨울이 온다

개발 고통받다 1990년대부터 보전 노력했는데
오세훈표 곤돌라로 다시 파괴 위기
등록 2024-04-12 08:35 수정 2024-04-17 07:31
오세훈 시장이 2023년 3월13일(현지시간) 런던 노스그리니치 인근에 있는 IFS 클라우드 케이블카를 방문해 관계자에게서 케이블카 운영현황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시장이 2023년 3월13일(현지시간) 런던 노스그리니치 인근에 있는 IFS 클라우드 케이블카를 방문해 관계자에게서 케이블카 운영현황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 봄이 왔다. 2024년 4월9일 남산 전망대에서 북쪽 비탈 능선을 따라 명동 방향으로 숲길을 걸었다. 20여m의 키 큰 신갈나무(참나무류) 무리가 아기자기한 새잎을 냈다. 꼬리처럼 조롱조롱 노란 꽃들이 피었다. 도토리는 올해 얼마나 열릴까. 2008년부터 참나무시들음병 창궐로 6년간 6천여 그루가 베어졌다. 기후위기 탓으로 의심됐지만, 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쓰러진 나무는 곤충과 곰팡이 같은 미생들의 소중한 식량과 집이 된다. 그래서 새들도 배를 곯지 않는다. 딱따구리가 애벌레를 찾아 거칠게 뚫어 속살을 드러낸 고사목들이 곳곳에 보였다.

남산이 이렇게 회복되고 있었다. 어른 나무가 쓰러진 빈터엔 손목 굵기 남짓 어린 신갈나무들이 성큼 컸다. 산초 가시가 옷깃을 잡아끌었다. 단풍나무·팥배나무·음나무 무리도 함께 자랐다. 털이 보송보송한 단풍나무 새순이 불그스름한 비늘잎 밖으로 나왔다. 중턱을 지나니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군데군데 산벚나무가 하얗게, 진달래가 붉게 꽃을 피웠다. 이 길을 따라 곤돌라가 놓인다. 2021년 중앙정보부(6국)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있는 예장공원에서 남산 전망대까지 로프웨이(삭도) 길이 804m짜리다. 모든 구간이 ‘비오톱 유형평가 1등급’ 지역, 일부 구간은 생태경관보전지역(생태지역)을 지난다.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케이블카.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케이블카. 김양진 기자


생태보존 지역 ‘위’를 지나가면 문제없나

이날 함께한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이 말했다. “곤돌라 지주대가 2곳 설치될 예정인데 모두 서울시가 2006년 신갈나무 숲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생태지역 을 살짝 비켜서 설치됩니다. 로프가 그 ‘위’를 지나가는데, 서울시는 ‘위’라서 별일 아니라는 식이에요.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심의를 받으라 해도 그럴 의무가 없다면서 피하는데…. 독단적으로 추진한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강행하겠다는 거죠.” 최 위원은 녹색서울시민위원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남산 북쪽 비탈에 곤돌라를, 남쪽 비탈에 스카이워크(남산도서관∼남산야외식물원)를 설치하겠다고 공식화한 건 2023년 6월이다. 당시 나온 ‘남산 프로젝트’ 보도자료를 보면, 서울시는 “이동 약자나 관광객들의 불편이 증가해 ‘친환경’ 곤돌라와 스카이워크(데크길)를 설치해 숲·도심을 조망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녹색서울시민위의 사전 심의 없이 곤돌라 설치를 결정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시는 남산 개발 사업을 속도전으로 추진해도 환경훼손 문제는 나중에 얼마든지 챙길 수 있다는 태도다. 서울시 도시정비 파트 담당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현재 계획상 우리가 봤을 때는 조례(서울특별시 자연환경보전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조례)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굳이 심의로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이어 “곤돌라로 나온 수익은 남산 생태 보존을 위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서울시 자연생태 파트 담당자는 “환경단체 출신인 오세훈 시장이 생태훼손 문제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계획 발표 1년5개월 만인 2024년 11월 곤돌라 설치 공사에 착수해 2025년 11월 개통할 계획이다. 스카이워크 설치 공사 계획은 조만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생태지역은 적정 (이용객) 유입량을 통제해야 관리가 가능한데, 서울시는 곤돌라로 인한 신규 수요 발생 가능성은 외면하려 해요. 곤돌라 수익금을 남산 생태보전에 쓴다는 것도 기존 예산으로 편성하는 것 외에 추가로 투입한다는 건지, 기존 예산을 대체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았어요. 곤돌라 설치로 인한 교통체증 등 예상 가능한 문제들에 대해선 사후대책 형태로 접근합니다. 매번 하고 싶은 신규 사업을 하고 대책은 나중에 고민하는 식입니다. 그러니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교통량이 발생하고 교통비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의 지적이다.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의 고사목. 딱따구리가 애벌레를 파먹은 흔적이 남아 있다.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의 고사목. 딱따구리가 애벌레를 파먹은 흔적이 남아 있다. 김양진 기자


새매·소쩍새·솔부엉이는 어떻게 될까

이날 숲길에서 최 위원이 물었다. “능선 서쪽이 서울시가 2006~2007년 신갈나무·소나무 숲을 지키기 위해 각각 설정한 생태지역이고 동쪽이 그 밖입니다. (식생의) 차이가 있나요?” 생태지역 안과 밖은 지적도 위에서만 구분된다. 현실 세계에선 이쪽저쪽 모두 봄볕에 환한 새잎이 부지런히 돋아나고 있었다. 이어 말했다. “조례를 엄밀하게 따지면 녹색시민위 심사를 안 받을 수도 있겠죠. 서울시 말대로 곤돌라를 설치하면서 ‘생태·경관 보존지역’에서만은 생태훼손이 거의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시간당 1천 명 넘는 관광객이 남산 꼭대기로 곤돌라를 이용해 올라옵니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생태 영향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어요. 더욱이 생태·경관 보전지역 바깥 지역에는 지주대를 설치하려고 나무를 베면서 공사가 이뤄질 겁니다. 서울시가 홍보해왔던, 남산 일대를 서식처로 번식하는 멸종위기 조류인 새매·소쩍새·솔부엉이 등은 어떻게 될까요? 친환경 곤돌라는 불가능합니다.”



2016년 6월 서울시는 새매(멸종위기 2급)가 서울 인근 지역에선 처음으로 남산에서 번식한 사실을 확인해 알렸다. 2023년 9월에도 남산에 천연기념물 솔부엉이·소쩍새 등이 서식한다며 적극 홍보했다. 또 다른 녹색서울시민위원인 오충현 동국대 교수(바이오환경과학)도 “(곤돌라 설치는) 명확하게 생태훼손으로 보이는데, 거버넌스 조직인 녹색서울시민위가 심의조차 못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1978년 (남산) 조사를 나왔을 때는 북쪽 사면에는 개울이 졸졸 흘렀다.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을 듣노라면 마치 강원도 심산유곡을 걷는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원로 조경학자인 이경재(2024년 3월 작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2019년 1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전문가·시민사회는 서울시의 ‘남산 프로젝트’로 인해 1990년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 이후 보전 쪽으로 방향을 틀어 30여 년째 이어져온 남산 관리 방향이 다시 개발 쪽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남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벌목이 엄격하게 금해진 신령스러운 산이었다. 지금도 남산엔 묘지 하나 없다. 일제강점기에 상황이 달라졌다. 신사와 조선통감부 관저, 군인관사 등으로 남산은 무분별한 개발에 노출됐다. 한번 시작된 막개발은 또 다른 개발 욕망을 자극했다. 남산 하면 떠오르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1961년 설치됐다. 이듬해 수도방위사령부가 남산으로 옮겨왔고, 영구 독점 특혜를 받은 민간 사업자에 의해 케이블카가 놓였다. 남산 아래로는 1970년 남산1호터널(1989∼1994년 확장 공사)과 2호터널이, 1978년 3호터널이 뚫렸다. 1972년에는 외인아파트(주한미군 등 외국인 전용 아파트), 1975년에는 남산타워(현 서울타워)가 세워졌다. 남산 남쪽 비탈엔 소나무와 함께 메타세쿼이아·전나무·벚나무·편백 등 자연상태에선 만나기 힘든 수종들이 어색하게 뒤섞여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힘 조금 쓴다는 권력자들이 남산에 힘자랑해온(마음에 드는 나무를 심어온) 결과다. 경사가 가파른데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의 존재로 사람 접근이 차단된 덕에 북쪽 비탈은 자연적인 식생이 보전돼 있다. 이 때문에 북쪽 비탈의 큰 나무들의 수령은 대체로 70살 정도로 조사됐다.

최진우 위원이 설명했다. “남산에는 원래 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1970년대만 해도 뱀이 많아 조심해야 했다고 해요. 뱀은 물이 풍부한 곳에 살거든요. 그런데 터널을 뚫으면서 수맥을 건드려 지하수가 새버렸고, 계곡마다 사방공사로 콘크리트를 발라 물이 싹 쓸려 내려가도록 해놓았죠. 메마른 산이 돼버렸어요.”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남쪽 비탈 순환로.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남쪽 비탈 순환로. 김양진 기자


곤돌라 도입에 관한 상반된 설문조사

1994년 11월20일 남산 경관을 가리는 외인아파트를 폭파한 일은 1990년 ‘남산 제 모습 찾기 100인 시민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한 남산 보전 노력을 상징한다. 2005년부터 남산에서 자취를 감췄던 큰산개구리·도롱뇽 등 양서류들을 남쪽 비탈에 방사했다. 2006~2007년엔 남산 전체 면적 297만㎡ 중 70만㎡를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2009년부터는 매년 4∼11월 빗물을 끌어다 남산을 적시고 있다. 지금은 이 양서류들이 북쪽 비탈까지 넘어와 남산 전역에 살고 있다. 또 2021년 6월엔 중앙정보부 건물을 철거해 예장공원을 조성했고, 8월엔 경유 관광버스의 남산 진입을 전면 제한했다.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남쪽 비탈 순환로의 도롱뇽알과 올챙이.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남쪽 비탈 순환로의 도롱뇽알과 올챙이. 김양진 기자


남산 연구자인 김지석 한백생태연구소장은 설명했다. “외인아파트를 없애고 그 자리에 야외식물원을 만든 건 앞으로 개발보다는 보전 노력을 한다는 메시지였어요. 그런 노력으로 남산은, 최상위 포식자로 작은 새들을 먹이로 삼는 새매가 번식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생태 공간이 된 거죠. 또 큰 나무의 구멍을 둥지로 쓰는 솔부엉이나 소쩍새가 산다는 건 그만큼 나무들도 훼손되지 않고 커졌다는 의미이고요. 지금 서울시가 계획한 변화(곤돌라·스카이워크 설치)는 대단히 큰 것입니다. 길을 더 내면 일단 훼손될 수밖에 없고, 그 길이 정말 필요한가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장애인 차량은 남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 식의 (기존 길을 활용하는) 방법을 더 강하게 해주는 게 필요하죠. 오히려 지금의 생태지역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어요. 생물다양성협약을 통해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육지·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요. 확대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런 생각은 않죠.”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우리나라 등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전 지구 육지와 해안,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정해 관리한다’는 ‘30×30 목표’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시민들은 곤돌라 도입을 어떻게 바라볼까. 서울시와 환경단체 조사 결과가 엇갈린다. 2023년 12월 서울시 설문조사(1천 명 대상)에선 도입 찬성이 80.7%로 나타났다. 다만 편파적인 질문으로 논란이 됐다. 서울시는 ‘누구나 이용하기 편안한 남산을 조성하고, 남산의 생태환경 복원을 위한 공공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공 곤돌라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동의하는가’라고 물었다. 2024년 3월 (재)숲과나눔의 설문조사 결과(500명 대상)는 서울시 조사 결과와 달랐다. ‘남산 곤돌라·스카이워크 설치에 얼마나 동의하나요?’라고 물었고, 반대가 50.6%로 나타났다. 특히 ‘시민 여가활동을 위해 남산에서 해야 할 사업’을 묻는 말에 49.6% 응답자가 ‘생태경관 보전관리’라고 답했고, ‘곤돌라·스카이워크 설치’는 4.0%에 그쳤다.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의 신갈나무 고목. 새잎이 나고 있다.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의 신갈나무 고목. 새잎이 나고 있다. 김양진 기자


“남산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하면서 정치적 성과로 돋보일 수 있는 상품인 것 같아요. 서울시는 최대한 생태영향을 줄이겠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지금도 이렇게 길이 많은데 길을 더 낸다는 것엔 변함없어요. 서울시는 기존 버스 운행을 중단하고 포장도로를 복원하겠다는 등 여러 약속을 합니다. 뜯어보면 언제 하겠다는 건 없어요. 남산 곤돌라 수익금도 거버넌스를 통해 관리하고 생태복원이 제대로 구현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와 충분히 토론하면서 입장 차이와 갈등을 좁히지 않았던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전혀 신뢰할 수 없죠.” 최진우 위원이 지적했다.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 순환로.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 순환로. 김양진 기자


사람이 조금씩 물러나자

‘회색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버텨준 ‘녹색섬’ 남산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일단 서울 한복판에 있는 탓에 생태회복과 교란, 치적과 시민 이용이 교차하여 혼재된 남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죠. 그리고 앞으로는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물러나는 수밖에 없죠. 더는 파괴되지 않도록 샛길을 차단하고 공중과 지하에 길을 더 내지 않는 거죠. 그렇게 조금씩 좋아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최 위원이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의 졸참나무 고목의 둥치.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의 졸참나무 고목의 둥치.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에서 바라본 서울타워. 김양진 기자

2024년 4월9일 오전 서울 남산 북쪽 비탈에서 바라본 서울타워.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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