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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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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죽고 싶었지만 퇴사 생각을 못했다

⑦ 뮤직비디오 제작팀 편―마지막 회
저임금·고강도 노동환경 알면서도 뮤직비디오가 좋아서 선택한 제작사 인턴, 직장 내 괴롭힘에 꿈은 악몽으로
등록 2023-11-25 05:10 수정 2023-11-28 06:06
인턴 시절 새벽 출근 시간을 찍은 버스 정류장 사진. 은서 제공

인턴 시절 새벽 출근 시간을 찍은 버스 정류장 사진. 은서 제공

뮤직비디오를 찍는 프로덕션(영상제작사)의 인턴 노동자였던 은서(가명)씨. 처음부터 각오는 돼 있었다. 영상 제작 현장, 그것도 뮤직비디오 파트는 성차별과 저임금·고강도 노동으로 악명이 높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커피 타기, 컵 씻기, 사무실 청소는 으레 막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 불만이 없었다. 5~6명이 일하는 좁은 업무 공간에서 상급자들이 담배를 피워 어쩔 수 없이 간접흡연자가 됐지만, ‘뮤비 촬영장에서도 실내 흡연을 많이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수의 개인 심부름도 도맡아야 했다. 이 모든 불합리한 일을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꿈꾸던 일이니까.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심해지며 자살 충동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남아 있던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은서씨는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뒀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는 말이 더욱 쓸쓸하게 들려온 2023년 10월 초, 그를 만났다.

뮤직비디오 형식에 매력 느껴 선택한 일

학창 시절부터 아이돌 팬이었던 은서씨는 그중에서도 뮤직비디오에 매료됐다. 3분 남짓의 노래를 짧은 영상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는 일은 그 자체로 멋있어 보였다. 그런 은서씨한테 기회가 왔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인턴 채용 공고가 떴고 정직원 제안을 받으며 합류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점에서 은서씨는 행운아였다.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은 꿈꿔온 그대로였다. 감독 지시에 따라 현장을 통제하고 카메라·조명 등 각 팀에서 요청한 것을 챙겨주고…. 학교에서 영상 공부를 한 덕에 전문성을 살려 편집일도 도왔다. 그렇게 일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하지만 달콤한 꿈은 한순간이었고 이내 악몽으로 바뀌었다. 말로만 듣던 직장 내 괴롭힘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리라 은서씨는 추호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수와는 첫 만남부터 어그러졌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최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님”으로 불렀는데, “~감독으로 불러”라는 말과 고성이 쏟아졌다. 다짜고짜였다.

사수와 엮이면 모든 것이 꼬였다. 은서씨는 ‘업무를 수행할 때 이게 필요하다’고 정확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사수는 “왜 말을 안 했어?”라고 은서씨한테 책임을 물었다. 둘이 있을 때만이 아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면박을 주고, 소리 지르며 그 공간을 험악하게 만들었다. 은서씨를 ‘무시해도 되는 사람’인 양 만들곤 했다. 주눅이 들어 점점 목소리에 힘이 빠진 때였다. 그러자 사수는 “큰 소리로 말해”라고 짜증 냈다.

이곳이 직장의 ‘평균’일까, 버틸 생각만 했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는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 날은 휴대전화 걸음수 측정 애플리케이션에 3만~4만 보는 기본으로 찍힌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데도 사수는 은서씨가 걷는 모습만 보이면 “계속 뛰어다녀라, 걸어다니다 들키면 뒈진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조명감독이 ‘나와 대화하는 척하며 걸으라’고 배려해주기도 했다. 은서씨는 여전히 스스로 질문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사수를 만족시킬 수 있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제3자에게 고충을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은서씨는 “다른 분께 사수와 잘 안 맞는 거 같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상담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수에게 잘못 전달되면서 괴롭힘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사수는 “나 없는 자리에서 그만둔다고 하질 않나, 어린 티가 난다, 그딴 식으로 행동하지 마라” 하며 화냈다. 그 뒤, 사수는 은서씨를 볼 때마다 “퇴사 안 해?” “그만둬~, 그만두고 싶다며?”라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몇 번은 옥상으로 불려갔다. 그곳에서 은서씨가 들은 말은 이랬다. “네가 잘못한 거 1부터 10까지 말해봐.”

은서씨 마음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는 “매일 유서를 적는 게 일상이었어요. 한강대교를 건너다 ‘뛰어내릴까’ 생각했고, 실제 자살 시도도 했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화하다가도 그리고 잠자다가도 소리를 지르고, 공공장소에서 맨발로 뛰쳐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그때 은서씨는 생각했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만일 은서씨의 옆에 “그런 회사 빨리 그만둬, 너 그러다 정말 죽는다”고 말해준 친구들마저 없었다면…. 아찔한 생각이 스친다. 은서씨는 말했다. “이상하게 그 상황에서는 ‘그만두라’는 조언이 잘 안 들려요. 내가 다닌 곳이 직장의 평균이라 생각됐고, 그래서 버텨야 한다고만 생각했죠.” ‘차라리 퇴사’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한테 닿기에는 너무 멀다.

병원비로 쓰려고 적금 해지하던 날

은서씨는 퇴사했지만, 마음의 응어리까지 풀어진 건 아니다. 그는 “퇴사하고 ‘불 지를까?’ 생각했어요. 방화범의 실형이 어느 정도인지 찾아보고, 부모님께 ‘나 감옥 가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보기도 했거든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수는 끝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자신이 사수의 눈을 피하지 않았던 기억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사회 초년생 은서씨는 일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쉬는 동안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대느라 결국 ‘청년희망적금’을 해지해야 했다. 그때 정말 속상했다는 은서씨. 그래도 이제 마음은 많이 안정돼 재취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에 안심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은 제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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