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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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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길을 타고 평화가 온다

남북 간 끊어진 길 연결로 본 반목과 화해의 역사…

올해 안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록 2018-09-22 08:25 수정 2020-05-02 19:29
2007년 5월17일 반세기 이상 끊겼던 남북의 철길이 이어졌다. 경의선 구간 시험운행에 나선 남쪽 열차가 도라산역을 지나 군사분계선 통문에 들어서자 남쪽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5월17일 반세기 이상 끊겼던 남북의 철길이 이어졌다. 경의선 구간 시험운행에 나선 남쪽 열차가 도라산역을 지나 군사분계선 통문에 들어서자 남쪽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과 북은 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의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나가기로 했다. 남과 북은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다.”(평양공동선언 제2조 1항)

평양 정상회담 첫날인 9월18일은 분단사에서 의미가 있는 날이다. 2000년 그날 경의선 철도 복원을 위한 남쪽 지역 착공식이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침목에 ‘평화와 번영의 시대’라는 친필 메시지를 남겼다. 2년 뒤인 2002년 그날엔 남과 북이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 동시 착공식을 열었다. 분단과 내전으로 얼룩진 지난 세월, 남과 북은 오랜 반목을 뚫고 다시 만날 때마다 유독 끊어진 길을 바라보며 애를 끓였다.

대화가 끊기면 길은 막히고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해,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이 공식 회담을 통해 철도·도로 연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3항)이 처음이다. 끊어진 길은 쉽게도 사라졌다. 멈춰선 철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상한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다. 남북이 다시 철도·도로 연결을 거론한 것은 1984~85년 이어진 경제회담에서다. 철도 실무자 간 접촉도 열기로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남북대화가 끊기면서, 길은 다시 막혔다.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한다.”

남북이 철도·도로 연결을 명문화한 것은 1991년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기본합의서) 제19조가 처음이다. 이듬해 9월17일 체결된 기본합의서 3장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3조에서 남과 북은 끊어진 길을 잇기 위한 방안을 8개항으로 나눠 적시했다.

“남과 북은 우선 인천항, 부산항, 포항항과 남포항, 원산항, 청진항 사이의 해로를 개설한다.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 규모가 커지고 군사적 대결 상태가 해소되는 데 따라 해로를 추가로 개설하고, 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를 비롯한 육로를 연결하며, 김포공항과 순안비행장 사이의 항로를 개설한다. 교통로가 개설되기 이전에 진행되는 인원 왕래와 물자 교류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쌍방이 합의하여 임시 교통로를 개설할 수 있으며….”

소비에트 몰락과 사회주의권 붕괴, 독일 통일로 지구촌이 열기에 휩싸인 때였다.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걷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그해,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길을 이을 기회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른바 ‘북핵 위기’는 그 무렵 싹텄다.

2000년 6·15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다시 화해의 훈풍이 불었다. 남과 북은 한 달 뒤 열린 제1차 장관급 회담 때 끊어진 길을 잇기로 합의했다. 20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담과 13차례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이어졌다. 철도 연결을 위한 실무 대화도 장기간 이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당시 철도 실무 대화를 이끈 책임자였다.

길을 이으려면 싸움을 멈추고

끊어진 길을 잇는 건 어떤 의미일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8월 방북한 남쪽 언론사 사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이 먼저 착공하세요. 그러면 즉시 우리도 착공하겠습니다. 상급(장관급) 회담에서 착공 날짜를 빨리 합의하시오. 내가 대통령과 임동원 국정원장에게도 말했는데, 날짜가 합의만 되면 우리는 38 분계선 2개 사단 3만5천 명을 빼내서 즉시 착공하겠습니다.” 길을 이으려면, 먼저 싸움을 멈춰야 한다.

우여곡절은 이어졌다. 2006년 5월 열기로 했던 경의선 열차 시험운행은 급박한 정세에서 하루 전에 취소됐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2006년 7월)와 제1차 핵실험(2006년 10월)이 꼬리를 물었다. 이듬해 2월13일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2·13 합의)의 합의가 이뤄진 뒤에야, 남과 북은 다시 끊어진 길을 바라봤다.

2007년 5월17일 오전 11시28분께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에 다섯 빛깔 폭죽이 피어올랐다. 경의선 새마을호 7435호(기관사 신장철)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녘땅에 진입하는 데는 50분이면 충분했다. 북쪽 금강산역을 출발한 동해선 내연 602호 기관차(기관사 로근찬)도 낮 12시21분께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남녘땅에 진입했다. 1951년 운행 중단된 경의선은 56년 만에, 동해선은 1950년 이후 57년 만에 긴 잠에서 깨어난 순간이다.

잠시였다. 그해 말 정권이 바뀌고, 길은 다시 막혔다. 9년여를 속절없이 보내고 맞닥뜨린 건 터무니없게도 ‘전쟁 위기’였다. 길을 다시 이을 수 있을까? 끊어진 것은 평화로 가는 길이었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평창겨울올림픽이 만들어낸 꿈 같은 기회를 부여잡은 남북이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남과 북의 두 지도자는 다시 ‘길’을 떠올렸다. 남북은 판문점선언 제1조 6항에서 이렇게 합의했다.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

길이 이어지면 냉전이 간다

길이 이어지면, 한반도는 더 이상 ‘냉전의 섬’이 아니다. 경의선은 평양을 거쳐 중국횡단철도(TCR)로 연결된다. 동해선은 나진을 지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만난다. 기차 타고 유럽 가는 감격에 그칠까? 대륙과 연결된 철도는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와 러시아의 하산~나진 프로젝트(북-러 철도와 가스관 연결 사업)와 만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통해 ‘평화가 경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어진 길을 타고 평화가 온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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