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넌 소확행? 난 혼확행!

소득 높은 30~40대 1인가구 몰린 역삼1동…

주말엔 직접 요리하고 혼자 여행 다니며 당당히 즐기는 싱글
등록 2018-10-06 09:00 수정 2020-05-02 19:29
서울 강남구 역삼1동 원룸에 사는 ‘1인가구’ 황진중(35)씨가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1동 원룸에 사는 ‘1인가구’ 황진중(35)씨가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역삼역을 각각 가로지르는 서울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는 서울을 넘어 한국 근대화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강남구 신사동 한남대교 남단에서 서초동, 양재동까지 약 7㎞를 쭉 뻗은 왕복 10차선의 도로 양옆에는 고층 건물과 각종 상업시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1990년대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을 자랑하기도 했다. 2000년대 전후에는 ‘벤처 붐’ 열풍으로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4㎞가량 뻗은 ‘테헤란로’ 주변에 정보기술(IT) 기업과 대기업이 속속 들어섰다. 대형 어학원과 유학원들도 곳곳에 자리잡았다. 경제성장과 함께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는 서울 중심지로 진입하는 상징적인 입구로 자리매김해왔다. 영향력이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지역은 10여 년 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내린 정의와 닮아 있다. “강남은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온몸으로 드라마틱하게 웅변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강준만, 2006)

휴일 낮 식당에는 ‘혼밥’하는 이들 가득
원룸 싱크대 한켠을 차지한 라면과 파스타 면, 스파케티 소스.

원룸 싱크대 한켠을 차지한 라면과 파스타 면, 스파케티 소스.

고층 건물과 화려한 상업시설과 거리마다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유행가 소리가 이곳의 이미지를 지배하지만,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주변 이면도로로 발길을 돌리면 조용한 편이다. ‘○○빌’ ‘△△고시텔’ 등의 이름을 가진 오피스텔, 빌라 등의 다세대주택과 고시원이 조밀하게 들어선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사각형 모양의 강남구 역삼동(면적 3.9㎢)은 몇몇 아파트 사이로 33㎡(10평) 안팎, 전세 보증금 1억~3억원의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모양새다. 골목마다 있는 공인중개사무소 대형 유리창마다 ‘원룸 전세’ ‘바로 입주 가능’ ‘에어컨·냉장고 설치’ ‘풀 옵션’ ‘단순 방구경 불가’ ‘반려동물 가능’ 등이 적힌 종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등록된 강남구의 개업 공인중개사무소 현황을 보면, 역삼동에서는 650여 사무소가 영업 중이라 한다. 100~250곳인 강남구 다른 동의 3배나 되는 수다. 24시간 코인 빨래방, 편의점 등도 곳곳에서 마주친다. 휴일인 개천절(10월3일) 낮 이곳을 둘러보니 문을 연 식당에는 ‘혼밥’하는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모두 주변 회사나 상업시설로 출퇴근하는 30~40대 직장인들이 이곳을 거주지 삼아 1인가구를 형성하며 펼쳐진 풍경이다. 역삼1동은 1인세대(통계청 ‘1인가구’ 통계와 차이가 있음)가 1만6203세대로(행전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2018년 9월) 역삼1동 전체 세대(2만3095세대)의 약 70%를 차지한다. 강남구 22개 동 가운데 1인세대가 가장 많다. 연령대를 보면 역삼1동 전체 인구(3만4426명) 가운데 30~39살이 약 30%(10만11명)를 차지한다. 강남구 22개 동 중 가장 높은 수치다. 통계청의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봐도 강남은 서울에서 30대 1인가구 비율이 유일하게 3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세대주택도 5710호(2015년 기준)로 강남구에서 가장 많다.

역삼1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크고 작은 회사가 많아 젊은 1인가구가 많이 산다. 또 서울로 와서 임시로 살 수 있는 고시원도 많다. 그렇다보니 전입·전출도 잦은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테헤란로에 있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다니는 황진중(35)씨도 역삼1동의 수많은 1인가구 중 하나다. “혼자 살다보니 깨끗하지는 않아요.” 10월3일 그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30㎡(9평) 원룸 문을 열어줬다. 그가 처음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다.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 부모와 같이 살며 대학을 마친 그는 취업을 위해 서울로 눈을 돌렸다. 게임 매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9년 경기도 안양에 있는 친누나 집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내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주변에 있는 회사로 날마다 출퇴근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1년 뒤 자신이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쪽에 20㎡(5평)짜리 원룸을 보증금 5천만~6천만원에 구했다. 그가 집을 구할 때 살펴본 기준은 출퇴근 거리와 가격이었다. “게임이나 IT 회사가 주로 강남과 경기도 판교에 있어 저도 그렇고 비슷한 분야에 일하시는 분들은 주로 2호선 라인에 집을 구할 수밖에 없어요. 왜 낙성대냐. 사당역 넘어가는 순간 집값이 엄청 비싸지거든요. 지하철 몇 정거장 차이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1인가구(만 25~59살) 2천여 명에게 조사해 최근 발표한 ‘2018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도 주택 선택 사유 1순위는 ‘가격’이고, 주거 환경 선택 사유 1순위는 ‘학교·직장과의 거리’라고 나타난다.

원룸 생활자들끼리 ‘잇템’ 공유하기도
황진중씨가 휴일(10월3일)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황진중씨가 휴일(10월3일)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황씨는 게임·IT 업계 특성상 이직이 잦다보니 판교로 회사를 옮기며 출퇴근을 위해 양재동 오피스텔형 원룸으로 옮겼다가, 올해 초 이직을 앞두고 역삼1동으로 이사 왔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에 대출과 부모님 도움을 일부 받아 낙성대 집의 3배나 되는 보증금을 마련했다. “10년 동안 보증금을 3배 넘게 올리며 집을 구했는데, 평수는 3~4평이 늘었네요.” 흔히 30~40대 남성 1인가구를 떠올리면 어지러운 방과, 퀴퀴한 냄새 등으로 대표되는 ‘짠내 나는’(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짠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1인가구 10년차인 베테랑 황씨는 원룸에서 쓰는 가전제품과 가구를 일일이 고르고, 주말에는 요리를 해먹는 등 ‘깨알같이’ 1인가구 생활을 즐기고 있다. 최근에는 혼자 쿠바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혼자 오래 살다보니 이제는 풀 옵션 집을 구하지 않아요. 제가 마음에 드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살 수 없잖아요.” 물론 ‘가성비 세대’답게 원룸 인테리어 애플리케이션 등을 참고해 이케아나 소프시스 등 중저가형 브랜드 제품을 샀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고, 지금 사는 집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이들에게 비싸고 좋은 가구는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구는 이사 등을 고려해 분해 여부를 따져보고 사야 한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중고일 경우 수리비가 부담될 수 있으니 차라리 가성비 좋은 새 제품을 사는 게 낫다”고 오랜 1인가구 생활에서 나온 ‘연륜’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룸 생활하는 이들끼리 앱이나 커뮤니티에서 ‘잇템’(필수 제품)을 공유한다”며 그는 최근에 산 잇템인 벌레퇴치기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기도 했다.

결혼이 굴레가 되는 건 싫다

배달 음식에 질린 그는 주말에는 볶음밥이나 카레 등 간단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최근 종류도 다양해지고 질도 높아진 레토르트 식품도 냉장고와 싱크대 곳곳에 채워놓았다. 조리기구인 에어프라이어(전기튀김기)도 갖고 있다.

황씨를 비롯해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주거 문제를 해결한 30~40대 1인가구는 성별에 상관없이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비혼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결혼 역시 “할 수 있으면 한다”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생각한다. ‘한국 1인가구 보고서’는 1인가구 10명 중 7명이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하고, 결혼은 절반가량이 유보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밝혔다. 30대 남성은 53.0%, 여성은 31.7%가 “언젠가 결혼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대는 남성·여성 모두 이 비율이 낮아진다. 황씨는 “IT 업계에선 지금 나이가 경력에 중요하다. 지금 경력을 제대로 쌓지 않으면 40대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언젠가 결혼하겠지만 현재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은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을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 확률이 낮다. 결혼이 굴레가 되는 건 싫다’고 말해요.”

마포구의 한 빌라에서 혼자 사는 30살 여성 최아영(가명)씨는 취업 뒤 부모의 우려를 누르고 독립을 택했다. “저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만족도가 높아요. 가족과 살지 않는 것도 정말 좋고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은, 하면 하고 아니면 만다 이런 생각이에요.” 그는 주거비용을 제외하고 요가와 공연, 책 구매에 가장 돈을 많이 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혼이나 내 집 마련보다, 마음에 드는 집에서 안정되게 사는 것이었다. 황진중씨의 현재 꿈은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금보다 조금은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이다. 최아영씨도 “평수 상관없이 내 마음에 드는 집에 살고 싶다. 그런데 지금처럼 혼자 살면 가능할지 의문이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도 동반자법이 입법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된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은 혼인이나 혈연이 아닌 관계에도 그에 준하는 제도적 혜택을 주자는 내용의 법이다. 두 사람 모두 주변의 권유에 청약이나 분양 등을 알아봤지만 혼자 사는 가구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는 알아보지 않았다.

“외로움만 아니면 불편한 건 없어요”

고소득 전문직 남성인 이영삼(42·가명)씨는 20살에 서울로 와 23년째 혼자 산다. 서울의 전세·반전세 원룸 등을 거쳐 현재는 송파구 문정동 원룸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외로움만 아니면 불편한 건 없어요. 확실히 예전보다 혼자 살기에 주변 환경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결혼도 주변 친구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것 같아’ 무조건 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하지만 최근 “주거가 안정되지 않으면 노후에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집주인이 갑자기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달라고 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부동산을 공부해보니 미혼이고 나이가 많고, 연봉도 비교적 높은 나는 정부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더라. 자력갱생할 수밖에 없겠더라”고 했다. “아쉽거나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택 관련해서 알아보니 이런 생각은 들더라. 결혼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제도를 이제는 전방위로 손봐야 하지 않을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