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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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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양심’ 팔아 버티는 판사들

사법 농단 핵심 피의자들 ‘잡아떼기’에 윗선 개입 규명 난항…

이대로 가면 ‘용두사미’ 수사 될 판
등록 2018-10-20 08:15 수정 2020-05-02 19:29
8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양승태 대법 재판거래 규탄 및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소송 전원합의체 심리재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8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양승태 대법 재판거래 규탄 및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소송 전원합의체 심리재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대로 가다간 ‘용두사미’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일부 고위 법관과 ‘사법 농단’ 피의자들이 원하는 대로요. 한데 그때는 누가 책임지죠?”(서울 지역 한 법원의 부장판사)

요즘 소장 판사들 사이에선 사법 농단 수사의 ‘끝’과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검찰의 강제 수사가 꽉 막힌 가운데 핵심 피의자들까지 ‘잡아떼기’에 나서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 개입 규명이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의혹 밝혔지만 난관에 부닥친 수사

사법 농단 수사는 대법원 자체조사단이 조사했지만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을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강제징용 재판 거래, 고용노동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상대 소송서류 대필 의혹,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등이 대표적이다.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전모가 밝혀진 사안도 있다. 법조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재판 연장 지시, 판사 비리 수사 저지 목적으로 영장 지침 하달, 대법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아온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단순위헌 취지로 번복하는 등 여러 건이다.

압수수색을 통한 ‘고속도로’가 막힌 검찰은, 여러 진술과 간접증거를 수집하는 ‘우회로’를 통해 의혹의 상당 부분을 밝혀냈다. 이제는 상당수 사안에서 ‘마지막 퍼즐’만 남겨두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계획이 실제 재판부에 전달돼 그대로 실현됐는지다. 그런데 해당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 가운데 일부는 검찰에서 “행정처 주문과 무관하게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했다”고 주장한다. 행정처의 권한 남용으로 재판권을 방해받지 않았다거나 강요 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해 직권남용죄나 강요죄를 피해가고, 판사로서의 자존심도 지키겠다는 셈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행정처 계획과 실제 재판 내용·결과가 맞아떨어집니다. 이 모든 걸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죠. ‘법과 양심’은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변명에 가깝죠. 이 판사들도 막상 법정에선 비슷한 논리를 내세우는 피고인 주장을 배척할 거예요.”(서울 지역의 한 단독판사)

양승태 등 윗선 포토라인 세울까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윗선’을 포토라인에 세울지도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최근 법원이 직권남용죄의 ‘직권’ 범위를 좁히고 있지만,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원조직법상 처장과 차장은 대법원장 등에게 위임받은 권한만 갖지만,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수장으로서 법원의 대부분 활동에 사법행정 권한이 있다. 행정처의 재판 개입 역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행사를 ‘빌미’로 한 권한남용 행위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검찰은 헌법재판소 무력화 방안, 한정위헌제청 결정 번복, 강제징용 재판 거래, 법원 공보관실 운영 비자금 조성 등에 양 전 대법원장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상태다.

윗선을 향한 ‘길목’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버티기’에 나선 점은 난관이다. 임 전 차장이 입을 열어줘야 사법 농단의 최정점인 처장-대법원장의 개입 여부가 말끔히 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부분에선 “하급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대목에 이르면 “기억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를 고수한다고 한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을 몇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 처리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그의 이름이 2017년 3월 처음 나온 이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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