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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뒤 모든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카인럼 마을 학살, 청원 운동 통해 처음 확인돼
등록 2019-03-30 02:13 수정 2020-05-02 19:29

베트남의 대동맥인 1번 국도 허리쯤,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이 도로변에 꼭 붙어 있습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차로 20분쯤 달리면 하미 마을이, 서쪽으로 15분쯤 달리면 투이보 마을이 나옵니다. 꽝남성을 떠나 차를 타고 3시간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꽝응아이성의 안프억·꺼우·지엔니엔·프억빈·토떠이 마을이 국도를 끼고 동서로 15분 거리에 퍼져 있습니다. 반꾸엇·선비엔·투언찌·짱쩜·5촌·라토·하떠이·카인럼·떠이선떠이 마을 역시 1번 국도를 두고 동서로 1시간 거리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17개 마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번 국도 주변의 너른 평야 지대거나 낮은 산자락을 낀 평범한 농촌 마을로 오래전부터 많은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극이 되었습니다. 1966~72년 한국에서 파병된 전투부대인 청룡부대는 남쪽 꽝응아이성에서 북쪽 꽝남성으로 이동하며 마을을 차례로 파괴했습니다. 1번 국도 사수가 주요 임무였던 청룡부대는 남베트남인민해방전선 인민해방군 수색을 쉽게 하기 위한 ‘주민 소개’ 작전을 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무참히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한국군 파병 기간(1964~73년) 민간인 학살 희생자 9천 명 중 4천 명이 꽝남성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살아남은 자의 증언은 지난 20년간 과 한베평화재단 등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으로 한국 사회에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직접 한국 정부를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합니다. 그 시작이 청와대 청원입니다. 이 17개 마을의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 103명이 청원서에 서명했습니다. 청원서는 4월4일 두 명의 청원인이 직접 청와대에 전달합니다. 은 17개 마을에 살았던 17명의 청원서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103명의 얼굴을 모두 담았습니다.
청와대는 최대 150일 안에 청원인에게 대답을 줘야 합니다. 청와대가 그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는 연대 청원을 할 수 있고, 그들을 후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말할 때입니다. ‘미안해요, 베트남’이 아니라 ‘함께해요, 베트남’이라고.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할머니 후인티찌(당시 약 65살), 어머니 응우옌티따오(약 40살), 남동생 응오못(5살), 여섯째 고모 응오티리엔(약 30살), 고모부 즈엉반본, 고종사촌 즈엉티비엣, 즈엉티놈, 즈엉티푸, 그리고 고모의 배 속에 있던 아기.

한국 사람 앞에서 이 이름들을 꺼낼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하루에 9명의 가족을 살해한 것은 한국 군인입니다. 머나먼 나라에서 베트남 꽝응아이성 선띤현 띤티엔사 카인럼 마을까지 들어와 우리 가족을 몰살하다시피 한 겁니다. 그날 이후 50년 넘게 날마다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한국군이 우리 가족을 학살한 걸까.’ 묻고 또 물었지만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죽기 전에는 꼭 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얼마 전 작은 기대를 품게 됐습니다. 3월10일, 우리 마을로 한국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이라고 했습니다. 20년 동안 베트남에 와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마을을 취재하고 피해자들을 만났지만 우리 마을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다가 위령비 표지석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년 뒤 충격받은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정말 화가 납니다. 우리를 50년 넘게 지옥에서 살게 한 한국 사람들이 정작 우리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니요. 우리 마을처럼 한국에 피해조차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제라도 한국 사람들이 똑똑히 알았으면 합니다. 나 응오티럼(71)의 가족 이야기를요.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온 날을 기억합니다. 1966년 9월26일. 18살이던 나는 결혼했지만 남편은 군대에 있었습니다. 한국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마을 남성들은 모두 도망쳤고 노인, 여성,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나도 주민들과 다른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첫날은 한국군이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틀 뒤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가족과 주민들이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한국군에 발각됐습니다. 한국군은 주민들을 방공호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아 살해했습니다. 집과 가재도구들은 불태웠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그곳에 있던 남동생 응오반끼엣(10살)과 아직 이름도 없는 막냇동생(1개월 8일)은 어른들 틈에 끼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주민들이 주검을 수습하러 갔을 때 막냇동생은 어머니 젖을 빨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동생처럼 참혹한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젖먹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엄마들이 죽어가면서도 품에 있는 자식은 살리려고 온몸으로 감싸니까요.

이틀 뒤 마을로 돌아온 나는 당고모부가 가족들의 주검을 묻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나는 남편 집에 머물면서 동생들을 키웠습니다. 넷째 고모가 막냇동생을 고모 집으로 데려갔지만 젖먹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남베트남군 대위에게 돈을 받고 보냈습니다. 나중에 마을로 돌아온 아버지는 9명의 가족이 죽고 겨우 살아남은 막냇자식까지 여동생이 팔아버렸다는 충격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1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고아가 된 형제자매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오빠 응오반머우는 항미 투쟁에 나섰다 감옥에 가고, 동생 끼엣은 어린 나이에 혼자 이곳저곳을 떠돌며 얼음과자 따위를 팔아 연명하는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오빠는 끝내 청원하지 않아

구수정이 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 우리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한국 정부에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 피해 회복 조치를 요구하겠다고. 그래서 청원서에 서명했습니다. 끼엣도 함께요. 그러나 머우 오빠는 청원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피해자가 한국 정부에 왜 구걸해야 하느냐”면서요.

나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학살한 이유를 정확히 알려줘야 합니다. 끼엣은 “어머니와 가족의 무덤을 정성스레 단장해드리는 것”이 마지막 염원입니다.

대한민국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이 피해를 당한 베트남 꽝남성, 꽝응아이성 내 17개 마을의 위치다. 위령비·공동묘·가족묘 좌표 또는 위령비 주변 마을의 좌표를 지도에 표시했다. 한베평화재단 누리집(kovietpeace.org)에서 더 많은 장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이 피해를 당한 베트남 꽝남성, 꽝응아이성 내 17개 마을의 위치다. 위령비·공동묘·가족묘 좌표 또는 위령비 주변 마을의 좌표를 지도에 표시했다. 한베평화재단 누리집(kovietpeace.org)에서 더 많은 장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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