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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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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루’가 아니라 ‘강제로’

편식 교육을 한다지만 ‘모두 먹어야 하는 강제 급식’
등록 2019-12-03 01:52 수정 2020-05-02 19:29
한겨레 자료,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한겨레 자료,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안해운(52)씨는 날마다 중학생인 아들의 밥과 국을 도시락통에 담습니다. ‘급식 시대’에 웬 도시락이냐고 싶을 겁니다. 안씨의 아들은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입니다. 비건인 아들이 학교 급식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맨밥과 김을 빼면 거의 없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신경 쓰지 않는 도시락을 싸는 게 귀찮을 법하지만, 안씨는 학교에서 도시락 반입을 허락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합니다. 학교에 채식 급식을 요구하는 걸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안씨는 이내 포기했습니다.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특별한 취급을 받아요.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채식을 위해 도시락을 싸겠다고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급식을 같이 먹어야 배가 든든하다’ ‘나라에서 공짜로 주는 건데 왜 급식을 안 하냐’고 계속 설득하더라고요. 도시락을 쌀 수 있도록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죠.”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1만1818곳은 100%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전체 학생의 99.9%가 급식을 먹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 습관, 종교 등을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학생들은 ‘100%’라는 숫자 어딘가에서, 혹은 0.1%에 속하는 어딘가에서 자신은 배제된 식단표를 바라봅니다. 생존의 기본인 ‘식’에서조차 소외당하는 채식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4학년 건우(가명)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 이연주(가명)씨가 한번 먹여보려고 해도 고기 식감이 싫었는지 뱉어냈다. 7살이 되고부터는 육식을 거부하는 정도가 강해졌다. 고깃집으로 외식 장소를 정하면 건우의 표정부터 달라졌다. 건우가 글을 알고 책을 읽으면서 ‘식감이 싫어서’는 ‘지구를 위해서’로 바뀌었다. 엄마 이씨의 회유는 건우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건우의 식성에 따라 이씨도 고기 먹는 횟수가 줄었다. 이씨는 육식을 하지 않는 ‘페스코’가 됐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받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받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고학년으로 갈수록 엄격해지는 지도

외식할 때 ‘조금 불편함’이었던 건우의 육식 거부는 건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이씨의 ‘걱정’이 됐다. 건우가 다니는 학교는 인성 교육이라며 급식 교육을 엄격하게 했다. 급식 교육은 ‘골고루’ ‘남김없이’였다. 먹고 싶지 않은 반찬을 급식판에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매 학년 초, 담임교사에게 억지로 건우에게 고기를 먹이지 말아달라는 이씨의 ‘알림’을 선생님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되레 건우의 신념은 선생님들의 ‘편식 교정’ 대상이 됐다. 건우의 담임교사들은 건우에게 “(고기를) 하나만 먹어봐라”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큰다”며 강요했다. 교사들은 건우가 고기를 먹을 때까지 옆에 서 있기도 했다. 건우의 스트레스는 갈수록 커졌다. 결국 억지로 장조림을 다 먹은 날, 건우는 기어이 체하고 말았다. 그 뒤 건우는 학교에 가길 꺼렸다. ‘학교에 왜 가기 싫냐’는 이씨의 질문에 ‘배가 아프다’며 대답을 피하던 건우는 “고기반찬을 억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건우의 상태를 설명했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담임교사는 건우를 교무실에 불러 “그거 하나를 못 먹냐”며 혼냈다. 그러고는 “골고루 잘 먹어야 다른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우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너무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고기를 골라내고 밥을 먹는 거로 ‘허락’받았지만, 건우는 내년이 걱정이다. 고학년이 될수록 교사들의 편식 지도가 엄격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학교도 옮기고 싶은 심정이다. 건우는 “먹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먹으라고 해서 속상하다. 어른들은 남들과 다른 걸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와 나물 반찬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교에 채식 식단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아이가 선생님한테 미움을 사진 않을지 걱정이다. “먹기 싫어서 안 먹는 것도 아이의 선택인데 왜 존중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1학년 때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으면 아이가 이렇게 힘들게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고 싶지 않아서 솔직히 말했던 게 아이를 괴롭게 할 줄은 몰랐다.”

학교에선 ‘골고루’ 먹는 게 좋다는 이유로 배식된 음식을 모두 먹기를 강요한다. 이런 폭력적인 급식 지도 방식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학대로 작용한다. 생존하는 데 기본인 ‘식’에서마저 자기 신념을 꺾어야 하고 자신의 존재를 존중받지 못한다.

20분간 구석에 서 있으라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고학년인 이경인(가명)은 어릴 때부터 과일과 드레싱(양념)을 뿌린 샐러드를 먹지 못했다. 집에서 과일 먹는 연습을 하다 몇 차례 구토를 했고, 부모도 더는 아이에게 먹기를 강요할 수 없었다. 엄마 진영아(가명)씨는 지난해 학기 초 담임교사에게 아이의 식습관을 상세히 설명하며 과일과 샐러드를 먹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부탁했다. 별일 없이 한 학년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학년 말에 일이 터졌다. 그동안 몇 차례 아이에게 편식 문제로 핀잔을 줬던 교사가 그날은 “샐러드를 남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20분간 급식실 구석에 홀로 서 있으라고 한 것이다. 경인이는 급식을 마친 친구들이 모두 교실에 올라간 뒤 다른 학년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벌을 섰다. 경인이가 교실로 돌아오자, 교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편식을 하니까 비쩍 말랐다”고 다시 면박을 줬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온 경인이는 길바닥에서 울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엄마는 직장을 조퇴하고 집으로 달려왔다. 엄마는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에 민원 문의를 했고, 교육청 상담사는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이니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려보라”고 조언했다. 며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엄마는 일단 민원보다 읍소를 택했다. 아이가 담임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우려해서였다. 엄마가 담임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하면서 넌지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뒤에야 경인이의 ‘급식 고문’도 끝이 났다.

하지만 그날 경인이의 상처는 컸다. 경인이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 그 일이 나한테 너무 트라우마야”라며 운다. 진씨는 “과일과 샐러드를 먹을 수 없는 아이에게 먹으라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벌을 주고, 부모 유전인 마른 체형을 아이의 편식 탓으로 돌리며 언어폭력까지 휘둘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7년째 근무 중인 한 교사는 “급식도 교육이라 골고루 먹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억지로 먹도록 강요하고 먹지 않았다고 벌을 세운다는 건 같은 교사로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식생활교육지원법 제2조 2항에서 정의한 식생활 교육은 “개인 또는 집단으로 하여금 올바른 식생활을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교육부와 함께 발간한 ‘초등생 식생활 교육 교사용’ 지도서에선 ‘바른 식생활’을 “골고루 잘 먹는 것만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고, 생산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어떤 가치와 생각을 가지고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배려와 고민은 생략됐다.

교사들은 급식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는다. 실과 시간이나 도덕 등의 수업에 바른 식생활 교육이 있지만 아이들의 다양한 식습관을 반영한 내용은 아니다. 경기도 고양시 한 초등학교에서 5년째 근무하는 이자영 교사는 급식 지도에 대한 교육은 없이 “상당수 학교의 급식실에선 잔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보상을 한다. 잔반이 적게 나온 반에 선물을 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영양 관련 교육 있다 2%

영양교사들은 관련 직무연수를 받지만 실제 영양교사들이 영양·식생활 교육에 참여하는 비율은 낮다. 대한영양사협회가 2017년 ‘학교 영양·식생활 교육 활성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서울 지역 영양교사 219명 중 “학교에 영양 관련 교육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에 불과했다.


급식의 알레르기 유발 식품 표시


못 먹어도 대체식은 없어요


1번 가금류의 난류, 2번 우유, 3번 메밀… 16번 쇠고기, 17번 오징어, 18번 조개류. 매달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학교 급식 식단표엔 18개 번호가 음식 옆에 매겨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공한 알레르기 유발 식품 번호다. 매년 초 학교는 알레르기 조사를 하고 알레르기 표시를 필수적으로 하지만, 대체식이나 제거식이 학생에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식품에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에게 급식은 부실한 셈이다.
전남 영광의 한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강겸(5)은 1번 달걀, 2번 우유, 14번 호두 알레르기가 있다. 달걀흰자가 입술 주변에 닿았을 뿐인데도 얼굴 전체에 반점이 생기면서 부었고, 호두가 혀에 잠깐 닿아 응급실에 다녀와야 했다. 병설유치원이라 학교 급식을 이용하는 겸이는 대체 식단을 제공받지 못한다. 겸이의 엄마 양효라(44)씨는 겸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초반엔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어떻게든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도시락 속 음식 맛이 변해 식중독에 걸릴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달걀이 들어간 튀김 반죽, 우유가 들어간 짜장 분말 등을 빼고 나니 겸이의 식판 곳곳이 비었다.
양씨는 학교 급식과 최대한 비슷한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서 보낸다. 해물칼국수, 돈육완자, 참나물들깨무침이 나온 11월13일에 양씨는 북엇국, 너비아니, 시금치나물을 도시락통에 담았다. 겸이는 도시락통에 든 반찬을 남들처럼 급식판에 쏟아붓고 먹는다.
양씨는 겸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급식이 제공되길 바란다. “겸이가 집에 와서 자기 빼고 다른 친구들은 급식을 다 먹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많이 든 날은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알레르기 식품의 정확한 관리는 겸이에겐 생존 문제다. “지금은 원생 수가 적은 유치원이라 관리가 되지만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선 관리가 어렵지 않나.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도시락을 싸고 있긴 하지만, 실수로 아이에게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든 반찬을 배식하면 어쩌나 늘 걱정이다.”
양씨는 음식의 유해 작용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쇼크(과민충격)에 대비해 학교에 자가주사를 맡겨두고 있다. 양씨의 걱정이 과민한 건 아니다. 2013년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한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우유가 든 카레 급식을 먹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숨지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에 따르면 아나필락시스쇼크로 진료받은 19살 이하 환자 수는 2015년에는 250명에서 2018년 450명으로 3년 만에 1.8배 늘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급식은 알레르기 표시 의무가 없다. ‘학교급식법’에서 대상을 학교로 한정해서다. 김상희 의원실은 어린이집·유치원에도 알레르기 표시 의무를 지우는 내용 등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유아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총 5개의 ‘식품알레르기 예방법’을 지난 3월 발의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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