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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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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급식을 못하는 건 어른들의 핑계”

아들 도영이와 지구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
등록 2019-12-04 01:42 수정 2020-05-02 19:29
다큐멘터리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찍은 황윤 감독과 아들 김도영군이 비건 버전의 로제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찍은 황윤 감독과 아들 김도영군이 비건 버전의 로제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있다.

영화 속 3살 아이는 아기 돼지 돈수에게 지푸라기를 건네며 말했다. “돈수야 이거 갖고 놀아. 싸우지 마. 또 있어, 또.” 돈수가 있는 우리에 연신 마른 짚을 넣어주던 아이는 아기 돼지들이 노는 축사에 철퍼덕 앉아 놀았다. “돼지야. 내가 팔찌 만들어줄게.” 돼지 곁에서 볏짚을 엮으며 아이는 돈수와 친구가 됐고, 육식을 끊었다. 그리고 축산 농장의 진실을 영화로 배우고 또 책으로 읽었다. 아이는 10살이 됐고, ‘돈가스 마니아’였지만 돼지와 친구가 된 뒤 딜레마에 빠진 자신의 일상을 영화로 찍은 엄마는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 그리고 지구를 위해 채식급식권이 시행되도록 팔을 걷어붙였다.

‘돈가스 마니아’가 돼지 친구가 된 뒤

2019년 11월17일 오후 영화 를 만든 황윤 감독과 아들 김도영군을 지역의 한 도시에서 만났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황 감독은 채식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채식 식당에서 먹었는데 맛있더라. 그 맛을 떠올리며 만들어봤다. 두유와 함께 간 캐슈넛을 농축 토마토소스에 넣고 끓였다. 거기에 오트밀, 미리 볶아둔 애호박·양파, 쪄놓은 감자와 고구마를 넣으면 끝. 좀더 쉽게 만들고 싶으면 캐슈넛 두유랑 농축 토마토를 합쳐서 끓이기만 해도 된다. 로제파스타 비건 버전이다. 채식이라고 하면 풀만 먹는 것을 떠올리는데 아주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가 가능하다.” 황 감독의 신메뉴 도전에 숟가락을 든 도영이의 오른손이 바빠졌다.

도영이는 현재 육류와 생선, 유제품 등을 먹지 않는 비건에 가깝다. 지난해까진 몇 달에 한 번 돈가스를 찾기도 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먹지 않았다. 를 찍으며 비건이 된 황 감독은 도영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부터 무상급식을 하는 지금까지 약 8년째 도시락을 싸고 있다. “닭미역국, 로제새우파스타, 한우장조림, 요구르트…. 이런 날은 혼합잡곡밥에 배추김치밖에 먹을 게 없다.” 황 감독이 도영이의 7월 급식 식단표를 보여주며 한숨을 쉬었다. 이달 도영이네 학교 급식 식단에서 육류가 등장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황 감독은 매일 도영이네 학교 급식 식단을 확인하고 반찬 두어 가지를 도시락통에 담는다. 채소버섯볶음, 나물, 두부구이, 견과류조림, 연근조림, 채소군만두, 현미쌀가스 등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한 반찬을 싸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식감을 살리려 해도 갓 조리한 급식판 위 음식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도시락통 안 튀김은 눅눅해지고, 샐러드는 숨이 죽는다. 얼마 전엔 김부각과 연근조림을 한 반찬통에 나눠 담았다가 눅눅해진 김부각을 못 먹기도 했다. 며칠 출장이라도 가면 도시락을 싸주지 못해 밥과 김 정도로 부실한 점심을 먹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도시락을 안 싸는 횟수는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채식으로만 식단이 제공될 때다. 도영이네 학교에선 얼마 전부터 고기를 뺀 제거식 제공하고 있다. 황 감독은 학교가 고맙지만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점이 보인다. “제거식의 경우 고기만 뺀 채 조리한 거라 맛도 부실하고 배도 부르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반찬을 따로 보내고 있다.”

2011년 구제역 파동을 겪으며 황 감독은 살처분당하는 돼지의 삶에 주목했다. 돼지들은 어떻게 태어나 어디에서 살고 있나, 그리고 왜 저렇게 산 채로 매장되나. 돼지를 찾아나섰다. 직접 본 공장식 돼지 농장의 현실은 처참했다. 새끼를 낳기 위해 길러지는 모돈은 앉거나 설 수만 있는 좁디좁은 감금틀에 갇혀 평생 새끼를 낳다 죽어야 했다. 그게 모돈의 생존 이유였다. 축사 바닥엔 호르몬제, 항생제, 장 치료제, 피부병 치료제 등 온갖 약병이 뒹굴었다. 어쩌다 겨우 돼지에게 야생초를 먹이고, 돼지의 ‘돈격’과 ‘기본권’을 존중하며 기르는 ‘99.9%의 돼지 공장이 아닌 0.1% 돼지 농장’을 발견했지만, 거기마저도 아기 수컷 돼지는 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소비자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마취 없이 거세당했다. 공장식 축산에서 사육되든, 동물 복지를 고려하는 농장에서 길러지든, 결국 도살장으로 보내져 고통스럽게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2015년 개봉된 영화 는 이렇게 탄생했다.

황 감독의 식탁에는 동물성 단백질이 오르지 않는다. 오른쪽 위 책은 황 감독이 쓴 <사랑할까, 먹을까>.

황 감독의 식탁에는 동물성 단백질이 오르지 않는다. 오른쪽 위 책은 황 감독이 쓴 <사랑할까, 먹을까>.

축산업 배출 온실가스 비율 18%

“예전엔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맛있게 보였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농장에서 돼지들 이빨이 잘리고 거세당하는 장면이 너무 끔찍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먹기 위해 길러지는 소나 돼지가 남기는 탄소 발자국이 길어요.” 도영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다.

당시 취재는 황 감독의 삶과 식생활을 완전히 바꿔놨다. “그전까진 나도 육식했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칼슘은 녹색 채소에도 풍부하게 있고, 동물성 단백질에만 있다고 생각했던 필수아미노산은 옥수수, 감자, 브로콜리 등 식물에도 세계보건기구(WHO) 권장량 이상으로 충분히 들어 있다. 현미 등 정제하지 않은 통곡류, 여러 채소, 과일, 콩, 견과류 등을 골고루 먹으면 충분하고도 남는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고기를 끊자 당장 ‘피부’로 다가오는 변화가 있었다. 아토피가 사라졌다. 어린 시절부터 아토피를 앓아온 황 감독은 무릎과 팔이 접히는 부분이 늘 가려웠다. 여름엔 더 심했고 겨울에도 찬물로 샤워를 마무리해야 가려움이 덜했다. 도영이를 낳고 젖양을 늘리려고 돼지족발을 삶아 먹었지만 젖양은 늘지 않았고 도영이의 아토피가 더 심해졌다. “채식한 뒤로 저도 도영이도 아토피가 다 나았다. 식생활이 문제였다는 걸 병원에선 알려주지 않았던 거다.”

축산 동물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한 뒤 채식을 지향해야 한다는 믿음을 굳힌 황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기후위기’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없다.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과연 지구가 버텨줄까 걱정이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제48차 IPCC 총회에서 지구의 온도 상승 폭을 1.5℃ 내로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탄소배출량을 급속하게 줄이지 않는다면, 2040년에 1.5℃ 이상 높아진다는 내용이다.

황 감독은 기후위기를 가장 손쉽게 줄이는 방법이 채식이라고 말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 내놓은 보고서 ‘축산업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가 그 근거다. 보고서를 보면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 비율은 자동차, 비행기 등 전세계 교통수단(13.5%)보다 많은 18%다. 이 때문에 황 감독에게 채식 급식은 아이들의 인권 문제이기도, 지구에 사는 우리의 생존권 문제이기도 하다.

황 감독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2018 지방선거를 함께하는 한국채식단체연대’를 꾸려 14개 지역 진보교육감 후보들에게 채식 급식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다. 황 감독이 채식운동가들이 모여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대화방에서 제안했고, 뜻에 공감한 다양한 채식 단체가 함께했다. 질의서엔 ‘환경, 생명권, 시민 건강을 위한 측면에서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권장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는지’ ‘채식을 원하는 학생에게 채식 급식을 제공할 계획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 담겼다.

아이들이 두 번 놀라는 이유

황 감독은 육식을 강요하는 현재 급식 체계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급식 체계는 육식 외에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아이들 생존권이 위협받는 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다양성 교육 아닌가. 다양성 교육을 왜 다른 데서 찾나.”

황 감독은 육식 중심의 현 급식 패러다임을 채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육식이 아닌 채식을 급식의 기본으로 놓고, 원하는 학생들에게 육식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학교에서 강연할 때 영화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두 번 놀란다. 돼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처음 알아서 놀라고, 돼지와 닭 등 가축들이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스럽게 사육되고 도살되어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에 놀란다. 일단 현실을 알고 나면, 많은 아이가 채식을 하겠다고 하고, 적어도 육식을 줄이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해 채식 급식을 할 수 없다는 건 어른들의 핑계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아이에게 왜 채식을 강요하냐고. 황 감독은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도영이가 원하면 고기를 준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알 권리를 보장하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먹을 것을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영이는 채식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조금 불편해도 채식을 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밥 먹고 바로 운동장으로 놀러가는데, 저는 도시락통을 두러 교실에 다시 가야 해요. 제가 고기를 안 먹으면 소나 돼지가 이렇게 키워져 죽지 않아도 되고, 그럼 메탄가스가 줄어드니 지구온난화 문제도 줄어들 거예요. 물론 공장도 줄여야겠지만요.”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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