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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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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가라사대] <굿윌헌팅>(1997) 중에서

등록 2006-09-15 15:00 수정 2020-05-02 19:24

▣ 김도훈 기자

램보: 제대로 이끌어주는 선생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도 스위스 특허청의 말단 공무원으로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거둔 과학적 성과들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겠지요. 윌은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우리가 그를 이끌어줘야 합니다.
션: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죠? 1960년에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한 영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엄청난 수학적 업적들을 만들어냈죠. 그러고는 버클리대학교로 가서 조교로 일하며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몬태나대학교로 가서 모든 수학적 경쟁자를 날려버렸어요.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테드 카진스키입니다.
램보: 그게 누구죠?
션: 폭탄테러범 유나바머입니다. (1997) 중에서

70년대는 영자의 전성시대였고, 80년대는 영재의 전성시대였다. 아이큐 테스트는 왜 그리도 많았고, 각종 경시대회는 또 뭐 그리 자주 열렸던지.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나의 어머니 또한 내가 10년에 한 번 나는 영재라고 믿고 계셨다.

내가 몇몇 이상한 경시대회에서 몇몇 괴이한 상장을 들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리라.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특활 선생의 기대를 안고 컴퓨터 경진대회에 출전했다. 8비트 컴퓨터 하나 없는 교실에서 나는 베이직이니 코볼이니 하는 프로그램 언어들을 열심히 외웠다. 컴퓨터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꼬맹이에게 프로그램 언어들은 암호에 가까웠지만, 외우는 건 자신 있었고 경진대회 성적도 꽤나 높았다. 그러나 나는 특활을 곧 때려치웠다. 지겨운 프로그램 언어들을 감내할 만큼 말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켰더니 한국의 얼치기 영재교육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큐 140의 수학천재 출신 수학강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엄마들만의) 영재들은 이 나라의 얼치기 영재교육에 무한히 감사해야 한다. 우리를 세상과 벽을 쌓고 폭탄‘주’를 제조하는 슬픈 천재로 키워주지 않은 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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