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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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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왕에서 축구왕으로?

공동육아 모꼬지를 다녀와서
등록 2019-05-01 02:11 수정 2020-05-02 19:29
축구선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후계자(?) 김도담

축구선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후계자(?) 김도담

도담이는 눈만 뜨면 걷는다.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고, 내려올 때는 나와 아내의 손을 꼭 잡는다. 걷다가 힘들면 벽에 기대어 “휴” 하고 숨을 내쉰다. 양팔을 벌려 안아주겠다고 하면 도담이는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안기기를 거절한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두 발로 섰지만, 눈에 힘을 주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열정 하나는 걷기 신봉자로 유명한 배우 하정우 저리 가라다. 언제 걸을까, 걷긴 할까, 안 걸으면 어떡하지 등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는데 걷기에 재미 붙인 아이를 보니 이런 세상도 오긴 오는구나 싶다.

지난 주말(4월20일), 공동육아를 하는 ‘아마’(아빠와 엄마를 합친 말)들과 모꼬지를 다녀온 것도 도담이가 좀더 자유롭게 걷길 원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모꼬지 가는 날 아침, “우리 소풍 갈까?”라고 묻자 도담이는 “우와!” 하고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마을 아마들과 가기로 한 곳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이다. 기껏해야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천호동까지 인터뷰하러 간 게 운전 경력의 전부인 내가 제2자유로를 타고 마을에서 60㎞ 넘게 떨어진 곳까지 갈 수 있을까.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은 도담이가 차에서 내리고 싶어 징징거리지 않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마을에서만 노는 게 지겨웠는지 수련원까지 가는 내내 도담이는 얌전하고 조용했다. 나도 베스트 드라이버였다(고 자부한다).

“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담이는 푸른 잔디와 그 위에서 노는 동네 형님들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먼저 도착한 마을 꼬마들도 “도담이다!” 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곳에서 ‘걷기왕’ 도담이는 걷고 또 걸었다. 잔디밭을 한 바퀴 돈 뒤 펜션 쪽으로 가서 계단을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힘들 것 같아 좀 쉬라고 권유하면 “잉잉”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아장아장 걷고, 축구공을 차며, 엄마 아빠들의 게임을 응원하는 아이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회사일에 지친 아내와 나 또한 축구, 팔씨름을 하며 간만에 콧구멍에 바람을 제대로 넣었다. 깜짝 놀랐던 건 많은 마을 아마들이 도담이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일 때문에 어린이집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지 못하는 나와 아내로선 생소하면서도 감사한 풍경이었다. 꼬마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우고 얼굴을 확인하려고 한 것도 아이들과 더욱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마을이나 어린이집 단체대화방에서만 보던 ‘마을 별명’들의 얼굴을 확인해서 좋았다. 이 모꼬지는 공동 육아 전선에서 함께 버티는 아마들이 연대하고, 평소 쌓인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리는 자리였다. 아이들도 그들대로 함께 뛰놀며 우정이 더욱 돈독해졌다. 언니 오빠들은 어린이집에 새로 들어온 도담이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도담이는 남자야, 여자야?” “여자? (짧은 머리카락 때문에) 남자인 줄 알았는데.” “도담이는 왜 말을 못해?” 도담이는 “잉잉” “어어” 하고 성실히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이틀 연속 모꼬지에 참석해 피곤한 아내를 위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지 않고 집에 돌아온 것은 아쉽다. 간만에 흥분한 도담이를 안고 차에 태웠을 때 도담이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도담아, 다음에는 언니 오빠들과 자고 오자!

글·사진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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