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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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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쓴 ‘사월의 노래’

대중의 예쁨 받고 싶지만 자유도 원해

첫 산문집 <사랑하는 미움들> 낸 뮤지션 김사월
등록 2019-12-06 02:12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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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요. 좋은 하루 보내라는 안부가 서로의 절절한 바람이 되어요.”

그의 음성이 글을 타고 흐른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 오디오북에 담긴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사진)의 목소리다.

인디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김사월이 음악과 일상, 사랑과 아픔을 기록한 첫 산문집 (놀 펴냄)을 펴냈다. 그는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앨범 《로맨스》와 타이틀곡 로 최우수 포크 음반·노래상을 받았다. 그동안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이중성, 살아온 것도 낭비된 것도 아닌 텅 빈 삶을, 세상을 견뎌내거나 파멸할 수밖에 없는 우울의 날들을 노래했다.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이번에는 노래가 아닌 에세이로 세상과 접속하고 싶다는 그를 11월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울한 내 이야기가 부끄럽다”면서도 조곤조곤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자신이 예전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세상에 있어줘 고맙다”는 안부를 계속 전하기 위해.

대화가 메모가 되고, 글이 되고

앨범이 아닌 산문집을 처음 펴낸 느낌은 어떤가요?
지난 1년 동안 적은 메모를 바탕으로 썼어요. 교정을 많이 봤어요. (웃음) 그랬더니 ‘내 첫 책이 나왔구나’라기 보다는 여러 번 교정한 게 책으로 제대로 나왔구나라는 그런 느낌이에요.

“나는 문득 생각이 났네/ 사랑하는 미움을 멈추고 싶어/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달아” 노래 에 나오는 ‘사랑하는 미움’이라는 가사가 산문집 제목이 됐네요.
제목 후보가 여러 개 있었어요. 모두 우울한 제목이었어요. (웃음) 그중에서 제일 밝은 걸 골랐어요. 나의 미움도 사랑하자, 그 미움들과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로 이걸로 택했어요.

생일이 4월21일이라는 것만 공개하고 나이와 본명을 밝히지 않고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책에 실린 소개하는 글에 ‘메모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커피와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썼네요.
몇 년생이고 본명은 무엇인지는 개인정보잖아요. 그게 날 소개할 때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것보다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나를 잘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저에게 밥을 잘 먹는지, 일 잘하는지 궁금해하세요. 그런데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물은 적은 없어요. 나이와 본명 등 이런 건 세상이 저에게 물어보는 것이라면 내 생각은 제가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 말하고 싶은 걸 책에 썼어요.

책에는 에세이와 노래 가사가 함께 실렸어요.
처음에는 노래 가사에 대한 글을 안 쓸 줄 알았어요. 막상 쓰니 가사 해설 같은 느낌의 글이 됐어요. 자연스럽게 노래 가사가 나온 이유를 많이 썼어요. 그게 궁금한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을 “가사를 전하는 뮤지션”이라고 부르잖아요. 그 가사를 주로 일상에서 찾나요?
사람들한테서 영감을 얻어요.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 중에 웃긴 것은 트위터에 올리고 생각할 만한 것은 메모장에 적어요. ‘무엇을 느꼈다’만으로는 가사가 써지지 않아요. 그걸로는 부족해요. 그 느낌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찾아내야지 써져요. 그런데 그 가사가 향하는 곳이 결국엔 다 똑같아요. 삶은 외롭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사는 것을 사랑하자고요. 우리 모두는 존재 자체로 계속 살 가치가 있어요. 그 존재에 의문을 가지는 것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집중하면 큰 힘이 돼요.

계간지 올해 가을호에도 ‘매일 더러워지고 매일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제목의 에세이를 썼어요. “내가 하는 슬픈 이야기는 샤워를 마치고 이전에 내가 얼마나 더러웠는지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말을 거는 방식 중 하나이다. 내 슬픈 이야기는 내 인격과 가치와 쓸모를 책정하지 않는다. 어떤 감정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두 느끼고 싶다. 매일 더러워지고 매일 새로 태어나고 싶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 가을호의 주제가 노래 ‘가사’여서 쓰게 됐어요. 거기에 실린 글은 이후에 많이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서 좀 우울한 느낌의 글이에요. (웃음) 그래도 한 개인의 기록이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한 인간이 살았다는 자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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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비건

‘나쁜 비거니스트’ 편에서 비건(채식주의)을 지향하는 삶에 대해 썼어요. 그런 지향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어떻게 바꾸나요?
비건을 지향하고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항상 부족한 비건입니다. 처음에는 인권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소수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밑바탕에는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누구나 살면서 ‘쪽수가 적네. 그래서 불리하네. 내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물권에도 관심이 가고 비건의 삶도 살게 된 거죠.

책에는 대중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여성 뮤지션의 꾸밈 노동에 대한 고뇌와 갈등이 드러납니다.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과 눈요깃거리가 되는 게 싫은 두 마음이 섞여버린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고백하고 “젊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하나씩 들어줄 때마다 내 목소리와 행동을 하나씩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고 토로하네요.
음악 하는 일을 하면서 더 예쁨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회에서 정한 아름다움에 근접하고 싶어서 막 꾸밀 때도 있었어요. 아예 화장하지 않고 무대에 오를 때도 있었고요. 그리고 또다시 화장해요. 사랑받는 자신이 좋잖아요. 사랑받고 싶어서 화장하고 이런 게 여성의 잘못은 아니죠. 사회가 만들어놓은 굴레죠.

그래서 최근에 짧게 머리를 잘랐나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화장하고 다녔어요. 오랫동안 길렀어요.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슬퍼 보이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특히 공연할 때 슬프고 불행한 듯 예뻐 보이는 여자로 연기해야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이미지가 나쁜 게 아니라 슬퍼져서 머리를 잘랐어요. 자르니 편해요. 자유롭고 싶어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우울, 방황,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깊고 어두운 감정을 처연하게 노래하지만 듣는 이들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고 합니다.
‘슬픈데 엉엉 울고 나서, 아 이제 다시 살아야지’ 이게 나의 기본 정서예요. 그런 정서를 가진 분들이 위로받는 것 같아요. 음악이나 글이나 여러 영화를 보며 ‘너도 그렇구나’ ‘나도 비슷해’ 그런 느낌을 받을 때 ‘혼자 있는 게 아니구나’ 위로를 받잖아요.

한 달 정도 남은 2019년은 김사월씨에게 어떤 해였나요?
올해 작업을 많이 했어요. 피처링(다른 가수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고 책도 내고 아웃풋(산출)이 많은 해였어요. 내년에는 3집을 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 이루어지겠죠. (웃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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