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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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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미선 임파서블’

유튜브까지 진출한 방송 34년차 예능인 박미선의 무한도전
등록 2020-02-29 14:07 수정 2020-05-02 19:29
올해 초 유튜브 채널 <미선 임파서블>을 개설한 예능인 박미선. 유튜브 영상 갈무리

올해 초 유튜브 채널 <미선 임파서블>을 개설한 예능인 박미선. 유튜브 영상 갈무리

Q. 다음 중 박미선과 관련된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 문화 콘텐츠 등)을 고르시오.

① ○○은 내가 할게, ××는 누가 할래?

② 내 안의 박미선이 깨어난다.

③ 그렇게 즐겁지 않았으니까!

④ 사…사…사는 동안 계속 버시오.

정답. ① ② ③ ④

“짤 부자 폴더엔 반드시 박미선이 있다”

해설. ① 1999년 SBS 에서 여름방학 숙제를 미룬 미달이(김성은) 때문에 43일치 그림일기를 해치우게 된 엄마 미선(박미선)이 가족에게 “스토리는 내가 짤 거고, 글씨는 누가 쓸래?”라고 묻는 장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시 인기를 끌며 유행한 표현이다.

② ‘누군가를 보면서 설레고, 커플로 이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으로, 2008~2011년 MBC 스튜디오 MC를 맡았던 박미선의 진심 어린 반응에서 나온 말. ‘망붕’(‘망상 분자’의 줄임말로,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에 관해 주로 연애감정 관련 망상을 펼치는 사람)과 비슷한 의미로도 쓰인다.

③ 2016년 부산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석한 박미선이 인스타그램에 웃는 셀카와 함께 올린 덕담 “멋지고 재밌고 신나고 김준호 대단하네ㅎㅎ”에 양희은이 “너무 만든 얼굴 같어!!!”라는 댓글을 달자 박미선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으니까ㅎㅎ”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힌 일화.

④ 2009년 MBC 에서 박미선의 남편 이봉원이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로 소개됨. ‘사랑해’라는 문장이 나올 분위기에서 반전을 노릴 때 주로 사용.

“짤(주로 인터넷상에서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이르는 말) 부자들의 폴더에는 반드시 박미선 님(사진)이 한 장 이상은 있습니다!” 지난해 유튜브 채널 에서는 ‘레전드 짤을 찾아서’라는 기획으로 박미선을 찾아가며 말했다. 다수의 ‘인기 짤’ 주인공인 박미선은 ‘밈 부자’다. 캡처를 온라인에 다시 퍼뜨렸던 누군가도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 몰랐겠지만, 이 ‘짤’은 방영 당시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까지 박미선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딸의 방학 숙제를 위해 가족에게 황당한 지시를 내리며 필사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박미선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 회차 요약 유튜브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지난 1년 반 사이 398만 건을 넘겼다. 비록 박미선이 아닌 그의 캐리커처만 쏙 갖다 쓴 광고들 때문에 “묻고 더블!” 김응수 같은 호재를 맞이하지는 못했어도, 박미선의 ‘짤’들은 그가 열심히 살아온 데 대한 연금처럼 새로운 인기로 돌아오는 중이다.

‘어른다운 어른’이자 ‘재미있는 어른’

1967년생 박미선, 1988년 데뷔, 첫아이 낳고 한 달, 둘째 낳고 한 달 외엔 쉬지 않고 활동해온 그는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꾸준히 상을 받았다. 코미디, 라디오, 진행, 쇼·오락 부문을 모두 휩쓸었고 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방송인으로도 수차례 수상했다. 기복 없이 뛰어난 코미디언이자 진행자이자 연기자인 그가 올해 초 개설한 유튜브 채널 은 한 달 반 만에 구독자 13만 명을 돌파했다. 5개월 전 개설한 (구독자 5만 명)이 여행이나 일상 브이로그 채널이라면, 은 이를테면 박미선의 ‘무한도전’이다.

54살인 그가 링 피트 어드벤처 게임, 코스튬플레이 등 ‘요즘 것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영상에는 ‘요즘 것들’이 모여들어 “미선 언니 사랑해요!”라고 외친다. 홍대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세배를 받은 ‘세뱃돈 FLEX 미션’ 영상(조회 수 84만)은 단 10분으로 그의 대중적 호감도와 방송 능력을 증명한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엄마 한복까지 빌려 입거나 학원 ‘째고’ 온 십 대에게 적절한 덕담과 농담을 던지고, 거대 공룡으로 분장한 참가자의 입에 태연히 세뱃돈을 물려주는 노련함은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더 빛을 발한다.

박미선은 최근 KBS 에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까칠하다 그러고 쓴소리라 그러고, 좋은 마음으로 해도 그렇게 받아들여지는데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EBS 와 KBS 을 진행하며 성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얘기해왔고, 여성이 활약하기 어려운 남성 중심 예능 환경에 대해서도 지적해왔다. 문제는 남성보다 여성의 솔직함은 늘 더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나이 들고 똑똑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TV에서 후배 남성 MC들에게 ‘박일침 누나’라 불리는 박미선은, 유튜브에서 ‘랍스터 먹방’을 하며 “제가 원래 갑각류를 싫어해요. 노동에 비해서 먹을 게 별로 없다는 거지”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캐릭터로 호응을 얻는다. 오락실에서 처음 만난 젊은이에게 대결을 요청하고, 졌지만 잘 싸운 뒤에는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라고 인사하는 그는 ‘어른다운 어른’이면서 ‘재미있는 어른’이기도 하다. 방송의 트렌드가 무수히 바뀌는 동안 커다란 물의 한 번 일으키지 않고 활동해온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단지 오래 버틴 것만이 그의 가치는 아니라는 의미다.

무한 경쟁 부문의 유튜브 실버 버튼

2009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예능상을 받은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사실 이 상은 신봉선, 송은이, 박지선 같은 친구들이 받아야 했는데, 제가 더 잘했나봐요.” 그 후 여성 예능인들은 긴 암흑기를 겪었고 박미선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버틴 박미선은 2020년에도 누구보다 더 잘하고 있다. 방송 34년차인 올해도 그가 받을 상은 공로상이 아니라 무한 경쟁 부문 유튜브 실버 버튼이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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