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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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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못 내는 출판사

출판은 자본주의 내에 존재하지만, 자본주의로 환산할 수 없다
등록 2020-09-08 08:56 수정 2020-09-11 01:18
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출판 일을 한 지 14년이 넘었다. 이제껏 수많은 책을 냈지만 내가 만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베스트셀러 한 번 기획해본 적 없는 편집자가 역시 베스트셀러를 기획해본 적 없는 편집자와 함께 창업했으니 애초에 베스트셀러는 꿈도 꿀 수 없는 출판사다. 그럼에도 처음 창업을 준비할 때 우리 모토는 ‘잘 팔리는 책’이었다. 우리 돈 벌려고 출판사 차리는 거야! 업계 선배와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잘 팔리는 책을 만들자. 책 팔아서 돈을 많이 벌자. 우리는 뜻도 모르는 말을 중얼거리며 창업을 준비했다.

첫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두 번째 책은 그럭저럭 팔리다가 스테디셀러를 기대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다다서재의 방향을 한번 돌아봐야 할 때였다. 세 번째 책 출간을 앞둔 어느 날, 출간 (예정) 목록을 죽 늘어놓고 보았다. 각 책의 소재만 봐도 헛웃음이 나왔다. 조현병, 청각장애, 치매 노인 돌봄, 시한부 암환자, 치매 당사자, 심리 케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이게 출판사야 종합병원이야?”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다. 우리가 만드는 책은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책이었다. 우리 취향은 좁고도 정확하다. 그리고 그 취향은 분명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왜 이런 책에 끌릴까. 왜 아프고 불편한 사람,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을까. 우리가 남들보다 마음이 따뜻해서는 아니다. 책으로 사회적 인식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야심도 우리에겐 없다. 그저, 알고 싶었다. 고통의 당사자는 우리가 모르는 삶의 이면을 증언해주지 않을까. 돌봄의 당사자야말로 합리와 효율만 추구하는 이 사회의 맹점을 고발해주지 않을까.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의 저자 도하타 가이토는 ‘돌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돌봄’은 자본주의 안에 존재하지만, ‘돌봄’의 가치는 자본주의로 절대 환산할 수 없다.” 출판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출판은 자본주의 안에 존재하지만 출판의 가치는 절대 자본주의로 환산할 수 없다. 판매량만으로는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고, 저렴하게 팔기보다 적정한 값에 파는 게 중요한 책은 분명 상품 밖에 존재하는 상품이다. 돈을 벌기 위해 차린 출판사에서 안 팔릴 것 같은 책만 만드는 우리의 모순적 직업 행위 역시 자본주의 논리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의 세 번째 책은 청인 아이를 키우는 농인 사진가의 에세이다. 처음 몇 장만 읽고 나는 이 책에 반해버렸다. 꼼꼼히 살펴본 남편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떻게 팔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책이 팔리지 않아 매일 편집 알바로 연명하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 시간을 보내다,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내고 싶은 책 내려고 출판사 차린 거잖아. 그냥 내자.”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내며 출판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별로 진지한 출판인은 아니라고, 가치보다는 돈이 우선이라고 서로에게 주문을 걸듯 말하면서도 자꾸만 좁고도 모호한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김남희 다다서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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