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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간병기 웹툰 왜 그렸냐면요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우두커니>, 부부 작가 심우도 인터뷰
등록 2020-09-19 01:57 수정 2020-09-20 11:59
‘심우도’라는 팀명으로 활동하는 부부 작가 우명민(왼쪽)·심흥아씨. 심우도 제공

‘심우도’라는 팀명으로 활동하는 부부 작가 우명민(왼쪽)·심흥아씨. 심우도 제공

“어느 날, 아버지에게 치매가 왔다.”

만화 <우두커니>의 프롤로그. 이 한 문장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2018년 3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다음 웹툰에 연재돼, 치매 환자와 함께 사는 보호자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 작품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한 해 동안 가장 주목받은 만화를 선정, 시상하는 ‘2020 부천만화대상’ 대상작으로 지난 5월 선정됐다.

‘심우도’는 심흥아·우영민(이하 존칭 생략) 부부 작가의 팀명이다. <우두커니>는 딸 심흥아와 사위 우영민이 아버지와 함께 살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아버지에게 찾아온 치매를 마주하는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낸 자전적 이야기다. 만화대상 시상식(9월19일)이 열리는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앞둔 15일, 심흥아·우영민을 전자우편과 전화로 만났다.

“나도 잘해보려 애썼구나”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75만488명(2018년 말 기준)이다. 2024년에는 100만 명이 넘을 것이라 예상된다(중앙치매센터,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9’). 치매는 지금 당장 가까운 사람 중에 환자가 있지 않아도, 누구나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우두커니>는 치매 환자나 치매 환자의 보호자가 일상에서 겪는 일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치매를 의심하고, 검사받고, 장기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알아보고, 요양시설을 찾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병원에 가자고 하면, “약을 팔기 위한 수작”이라며 의사의 말을 믿지 않고, 밤이면 혼잣말로 화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았다. 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거나 인위적인 감동과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두커니>를 읽다보면, 가슴이 먹먹하다가 결국 몇 번은 울컥하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눈물이 흐르는데도 가슴 한쪽이 따뜻하다.

부부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7년간 연애한 끝에 2013년 결혼했다. 심흥아는 2008년 <우리, 선화>로 데뷔했고, 우영민은 외국계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심흥아의 권유로 만화책 출판사 편집자로 변신했다. 그러다 우영민은 2015년부터 심흥아가 만든 이야기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만화에 발을 들였다. “남편이 원래 만화를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어요. 원래 제 팬이었고요. 만화 편집자로 일해본데다 제 만화에 대한 이해도 있어서 같이 하자고 했죠.”(심흥아) <우두커니>는 심우도라는 이름으로 낸 두 번째 작품이다.

심흥아의 전작을 살펴보면, 자기고백 서사가 돋보인다. <카페 그램>(2012) <창밖의 고양이>(2012)처럼 작가의 경험을 녹이기도 하고, <우리, 선화>(2008)처럼 ‘나’를 투영한 주인공을 통해 자기고백도 한다. <우두커니>에서도 마찬가지다. 심흥아는 2017년 여름, 아버지가 통장과 도장이 없어졌다며 낯선 얼굴로 화내는 모습을 보고 치매를 의심하게 됐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심흥아는 이 경험을 만화로 그리기로 결심했다. “제 이야기를 하는 건 이게 가장 자연스럽고 편한 방식이어서요. 물론 이 과정에서도 자기 객관화가 필요해요.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볼 때, 나 자신도 치유가 되더라고요.”

만화 <우두커니> 표지. 심우도 제공

만화 <우두커니> 표지. 심우도 제공


왜 치매 환자는 가족이 책임져야 하나

<우두커니>는 100%는 아니지만 80~90%는 실화에 가깝다. 항상 버스정류장에서 딸을 기다리던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 역시 심흥아의 경험담이다. “어릴 때 형편이 어려워서 산속에 있는 절에 살았어요. 하교 시간이면 산이 어두워져서 위험하니까 항상 아빠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비가 엄청 퍼부었던 날, 제가 우산을 갖고 있었는데도 아빠는 비닐포대에 구멍을 뚫어서 뒤집어쓰고 큰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심흥아)

주인공이 실제 가족이기에, 날 선 댓글에 더 상처를 입는다. “다른 가족은 뭐 하냐며 가족을 비난하기도 하더라고요. 주인공인 승아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른 가족의 역할은 만화에 담지 못했을 뿐이에요. 우리가 창작하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것은 아닐까 속상하기도 했죠.”(우영민)

그럼에도 힘든 시기에 대한 경험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과정은 두 사람에게 위안과 치유가 됐다. “만화 속에서 저 자신을 많이 미화한 것 같아요. 실제론 아빠에게 더 못했고, 더 힘들어했는데 담담하게 그렸죠. 당시에는 죄책감이 많이 들었는데, 작품을 만들면서 돌아보니 ‘나도 잘해보려고 애를 많이 썼구나, 어쩔 수 없었구나’ 생각이 들어 스스로 토닥여주기도 했죠.”(심흥아) “우리가 겪은 힘든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넋두리는 아닐까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한 댓글을 볼 때면, 이게 우리가 만화를 하는 힘이구나 싶었죠.”(우영민)

‘모든 병은 병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면서 유독 치매는 가족이 책임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효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려 독자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아버지에게 갑자기 흥분 상태가 와서 급하게 요양원에 모셨어요. 좋은 시설에 모시려면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후회됐죠. 다만 시설에 모시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은 가족의 치매를 빨리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평소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아버지와 서먹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조용히 지냈거든요. 좀더 살갑게 지낼걸 후회했죠. 평소 소통을 많이 하면 부모의 치매 징후를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테고, 치매를 앓기 전 함께 보냈던 행복한 시간이 가족에게도 버팀목이 될 거예요.”(우영민) “주기적으로 치매 정밀 검사를 받기 추천해요. 경도 인지 장애 판정을 받으면, 치매로 가기 전에 해볼 수 있는 게 많대요. 그리고 노인 우울증이 치매로 갈 수도 있다고 하니, 평소 가족끼리 표현을 잘했으면 좋겠어요.”(심흥아)

다음 작품은 육아?

심우도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생후 27개월인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독자로서 육아를 주제로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해봤다. 육아 만화는 이미 세상에 많지만, 심우도가 그리면 또 다르지 않을까. “어떤 주제가 됐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잘 읽히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게 심우도의 원칙이고요.”(우영민) 심우도(尋牛圖)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그린 불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심흥아·우영민의 소를 찾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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