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대한 여러 평가에서 애플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니 당연하겠지만, 특히 디자인이나 예술 감각에 대해선 애플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구글도 애플만큼 ‘크리에이티브’를 사랑한다. 단지 그 사랑 방식이 조금 다를 뿐.
구글에는 ‘크리에이티브랩’이라는 조직이 있다. 음악·미술·공부·글쓰기 4개 분야에서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같은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조직에서 최근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 <배드 가이>를 두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벌였다. <배드 가이>는 2020년 11월 유튜브에서 10억 뷰를 기록했는데, 구글 크리에이티브랩은 자기 방식으로 헌사를 전했다.
알다시피 유튜브는 원곡뿐 아니라 그 곡의 커버(모방) 버전이 무수히 많다. <배드 가이>의 커버 버전은 대략 1만5천여 편이다. 여기에는 커버 연주와 댄스뿐 아니라 고양이 울음소리를 편집한 영상, 애니메이션 영상, 수화, ASMR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구글 크리에이티브랩은 머신러닝을 이용해 이 영상들을 나노 단위로 분석해 곡의 어떤 부분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무한한 배드 가이’(Infinite Bad Guy)를 공개했다.
일단 ‘billie.withyoutube.com’(그림1)에 접속하면 <배드 가이>의 원본 뮤직비디오가 먼저 등장한다. 음악을 듣다가 아무 때나 다음 영상을 클릭하면 바로 그 순간에 다음 곡이 연결된다. 자동재생을 클릭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랜덤으로 다음 곡을 이어붙인다. 뭐가 나올지는 모른다. 1만5천여 개 소스에서 수학적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는, 사실상 우주 역사와 맞먹는다. 머신러닝은 사용자가 클릭하는 순간의 음악적 특징을 분석한 뒤 수많은 커버 속에 동일한 패턴을 찾아 매칭한다. 어떤 영상도 한 번 이상 재생되지 않는 방식으로 <배드 가이>는 무한 반복된다.
나이키가 11월, 코로나19 시대의 스포츠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화제가 된 캠페인 영상(그림2)도 비슷하게 계속된다.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스포츠의 순간들이 좌우로 분할된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이 놀라운 1분30초짜리 영상은 일일이 한땀 한땀 제작한 것으로 43일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반면 ‘무한한 배드 가이’는 무작위로 커버 영상을 찾아 연결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무한한 배드 가이’는 구글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이벤트다. 구글의 머신러닝 기술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더없이 재미나다. 알고리즘, 빅데이터, 머신러닝 같은 단어는 일반적으로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만, ‘무한한 배드 가이’는 이런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기술용어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게 한다.
머신러닝이든 인공지능이든 이런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최신 가전제품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엔터테인먼트도 된다. 기술 기반 사회에서 기술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거기엔 음악과 엔터테인먼트가 크게 기여한다. 대체로 불안과 우울함이 배회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신세계다.
차우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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