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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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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가는 마법의 ‘Why’

가난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지키는 이유는 뭘까
등록 2021-11-24 12:20 수정 2021-11-24 23:23
사람들이 책을 읽고 즐거워지는 것이 서점인의 ‘Why’다. 2020년 여름 서점 마당에서 열린 저자들과의 북토크. 겨울이면 건물 2층에서 행사를 연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즐거워지는 것이 서점인의 ‘Why’다. 2020년 여름 서점 마당에서 열린 저자들과의 북토크. 겨울이면 건물 2층에서 행사를 연다.

한 달에 한 권, 이달의 비밀 책을 선정해서 보낸다. 어떤 책이 오는지 모르지만 서점을 믿고 정기구독을 신청한다. 갖고 있는 책과 겹치지 않도록 신간을 위주로 하지만, 때로는 좋지만 잊힌 오래된 책을 보낸다. 200명이 같은 날 같은 책을 받는 서비스다. 일제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피드에 책이 올라온다. 출판시장이 협소하다보니 적은 인원이 내는 입소문만으로도 시장에 영향을 줄 때가 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절판될 뻔한 좋은 책이 살아났습니다.” 출판사 메시지에 웃는다. 서점 하는 사람의 보람이다. 며칠은 고단을 잊는다.

사이먼 시넥의 <스타트 위드 와이(Start With Why)-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책에 따르면 ‘왜’에서 시작해야 오래갈 수 있다고 한다. 흔들려도 중심 잡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마법의 단어라는데 하우(How·어떻게)나 왓(What·무엇)을 보느라 와이(Why·왜)를 잊을 때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우리가 왜 일을 시작했는지 잊는다. 안타깝게도 고객 마음을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어떤 의도와 진심에서 비롯했는가, 즉 Why라는데. 서점의 Why는 무엇일까.

제주에 있는 그림책방에 누전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나 책과 집기가 모두 불에 타고 물에 젖었다. 모금이 시작됐다. 사나흘 사이 수천만원이 모였다. 유럽 소식도 들렸다. 책방이 문을 닫는다고 하자 동네 사람들이 펀딩해 살려냈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앤컴퍼니’가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렵다는 글을 올렸다. 며칠 뒤 사진이 올라왔다. 책방 앞길에 택배 상자가 그득하다.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주문이 들어왔단다.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피츠제럴드, T.S. 엘리엇이 교류하던 100년 서점은 고비를 이기고 살아났다. 책 읽는 사람들이 멸종 위기라는 2021년, 가난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서점인들이 서점을 지키는 이유, 책방의 Why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서울 남산의 ‘피크닉’에서 <매거진 비(B)> 10주년 전시가 열려 다녀왔다. 브랜드 대표들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블루보틀, 에이스호텔, 아스티에드빌라트 창시자 이야기가 특히 남았다. ‘아침에 커피 사러 오는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잠에서 막 깨어 아침도 먹지 않고 카페 문을 열 때 그들 영혼은 외롭고 벌거벗은 느낌일 거예요. 좋은 커피와 아늑한 공간으로 채워주고 싶었어요.’ ‘주변 지역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우리 호텔에서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며 꿈을 펼치게 합니다. 저는 성장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술가들과 우리 스태프가 여행자들에겐 친구가 되어줄 겁니다. 세계 어느 도시에 가도 당신 편, 당신 친구가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편리 때문에 아름다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불타버린 제주 서점과 어려움에 처한 유럽 동네 서점과 셰익스피어앤컴퍼니를 향해 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들을 움직인 동네책방의 강력한 Why를 생각한다. Why가 불러온 지지와 응원을 기억한다.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여기 있다. 책과 같이 인간이 가진 지성이나 선의에 대한 믿음, 온기도 건너간다.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라고 Why를 더 단단히 세웠다. What과 How가 분명해진다. 좋은 책을 찾는다. 잘 나눌 방법을 찾는다. 읽으며 즐거워하는 얼굴, 채워지는 영혼을 생각하면 계속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읽고 즐거워지시길.

당신의 미소가 우리에겐 일하는 이유, 길을 잃었을 때 중심을 잡아줄 밝은 별이 될 테니.

글·사진 정현주 서점 리스본 대표

*책의 일―서점 편은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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