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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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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작] 고라니들

제13회 손바닥문학상 ‘어제와는 다른 세계’ 주제 공모 대상 수상작
등록 2022-01-02 07:07 수정 2022-01-03 01:24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한겨레21>은 해마다 손바닥문학상을 공모합니다. 2020년부터는 주제를 정해 원고를 모집했습니다. 2021년의 주제는 ‘어제와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모두 225편의 글이 도착했고, 최종심에 오른 21편 가운데 당선작 3편이 나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로드킬당한 동물의 사체를 치우는 일을 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김남형의 ‘고라니들’이 대상, 코로나19 시기에 늘어나는 배달대행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황성준의 ‘화이불변’과 드라이브스루(차량 이동) 매장의 젊은 파트타임 노동자가 경험하는 일터와 팬데믹 상황을 교차해 보여주는 박하의 ‘불안할 용기’가 가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세 편의 수상작을 한꺼번에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연하장을 대신해 얇은 단편소설집 같은 글묶음을 드립니다. _편집자

“너는 지금 그게 넘어가냐?”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세훈이 혁을 나무란다. 혁은 점원에게서 닭다리튀김을 전해 받는다. 혁이 볼 때 세훈은 가끔 너무 감상적이다.

“왜요? 치킨 안 좋아해요?”

“어우, 이건 뭐 기억이 없는 거야 뭐야.”

계산을 마치고 차 안으로 들어온 둘은 각자 고른 음식을 나눈다. 혁이 봉투를 열자 승합차 안에 튀김 냄새가 번진다. 세훈은 혁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고는 자신이 사온 빵을 한 입 베어 물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린다.

“야, 무슨 소리 안 들려?”

입에 닭다리를 욱여넣은 혁이 겨우 발음했다.

“스리… 으걱… 소리요? 음… 무슨 소리요?”

“저거 아직 살아 있는 거 아냐?”

세훈이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혁도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봤다. 입으로는 아직 분해되지 않은 닭고기를 씹고 있다.

“거봐요, 쩝쩝… 저거 제가 죽여서 담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이거 완전 무서운 놈이네. 아까 그 한쪽 날개로… 어, 보고도 그래?”

혁은 입안에서 잘 발골된 닭뼈를 뽑아낸다.

한 시간 전, 둘은 로드킬 신고를 받고 공단 인근 도로로 향했다.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도로에는 차가 없었다.

“또 공단이네요? 요새 여기 뭐 자살테러라도 한대요?”

“산비탈 아래에다 지어서 그래. 야생동물, 걔네한텐 원래 지 나와바리고 그럴 텐데. 거기다 공장 세우고 도로 깐다고 뭐 걔들이 알아?”

“나와바리는 무슨, 걔들이 뭐 언제 땅값 냈어요? 등기부등본 들고 와서 들이대야지.”

“너는 어디 네 이름으로 등본 있는 땅 있냐? 걔들이나 너나 마찬가지야.”

“비교할 걸 비교해요. 제가 무슨 짐승이에요?”

“됐다. 끝나고 뭐 좀 먹자. 배고프다.”

“편의점이나 들를까요?”

신고받은 위치는 항상 정확하지 않았다. 이틀 전에는 찾는 데만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오늘은 위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거 뭐예요?”

“아이 씨, 또 난리 났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형체 위로 검은 깃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깃털은 자신이 아직 날아오를 수 있다는 양, 거추장스러운 고깃덩이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깃털을 놔주지 않는 고깃덩이는 길에 붙은 껌딱지처럼 본래의 형태를 가늠할 수가 없다. 죽음이 내깔린 곳에는 이상하게도 살고자 하는 몸부림의 파동이 남아 있었다.

“까마귀떼인가봐요. 얘네 또 여기서 단체로 뭐 먹다가 깔렸나보네. 얘네는 깔린 데 또 오고 그 위에 또 깔려서 가끔 이러네요.”

혁이 사체들을 폰으로 찍으며 말했다. 신고 장소에 오면 늘상 하는 일이다. 그때 그 무리 안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몸의 반쯤은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동작 가능한 것이 고작 날갯죽지 하나인 까마귀였다. 그걸 본 혁이 말한다.

“에? 아직 움직이는 것도 있네.”

조류는 어느 시인의 동경처럼 중력의 쇠사슬을 끊고 날아오르는 자유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 조류가 바닥에 납작 붙은 상태로 오른쪽 날개만을 펴서 땅을 짚으며 기어가고 있다. 군에서 하는 응용 포복 자세처럼 보인다. 하늘을 날기 위해 달린 날개를 고작 팔처럼 쓰는 까마귀는 생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마저 포기한 듯하다.

“이거 뭐… 죽여요?”

혁은 얼른 처리하고 갈 생각이었다. 세훈은 앞에 놓인 아비규환의 장면보다 혁의 물음이 더 소름 끼친다.

“야, 저거 저거… 저렇게 살겠다고 기어나가는데 어떻게 죽여?”

“에이, 어차피 금방 죽을 텐데 뭘 그래요. 여기서 죽으나 냉동창고 가서 죽으나. 그냥 담아요?”

혁은 한 손엔 포대를, 다른 한 손엔 집게를 들고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리고 기어코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웅크려 있는 것을 집게로 집어 포대에 처넣는다. 이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른 놈들의 잔해도 담는다. 세훈의 눈에 혁은 살아 있는 것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죽음의 장소 위에 있다. 그곳에서 죽음의 결마저 무시하며, 무시무시한 존재로 서 있다. 그리고 죽음을 걷어낸 도로 위를 다시 촬영해 지자체에 제출할 자료를 남긴다.

“여기 공단 입구 쪽에 편의점 새로 생겼죠?”

혁의 말에 아직 어안이 벙벙한 세훈은 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 그렇게 둘이 탄 승합차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세훈이 혁에게 말한다.

“최씨 아저씨 말이 로드킬 콜 들어오면 30분 있다가 가랬거든. 우리도 내일부터는 30분 있다 가자.”

30분. 혁은 그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되뇐다. 혁의 의아한 표정에 세훈은 가만히 있다가 “그냥”이라고 말했다.

*

다음날 사무실 소파에 혁이 누워 있다. 병원 대기실에서 쓰다 버린 것 같은 소파 위로 발끝과 어깻죽지 하나가 삐져나온 것이 편해 보이진 않는다. 혁은 오른손을 들어 폰을 시야에 고정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BJ의 입이 클로즈업된 화면에 갑자기 하얗게 전화 알림이 뜬다. 혁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폰을 놓쳤다. 이마를 한 번 내리찍고 바닥에 드러누운 폰 화면으로 세훈의 이름이 보인다. 혁은 찍힌 곳을 문지르며 폰을 쥐었다.

“아, 여보세요? 네… 네… 콜은 벌써 왔죠, 30분 전에.”

어제 세훈이 말한 30분이 떠오른다.

“소각이 밀려요? 네… 처리하고 오세요. 네… 혼자 가도 돼요. 아니요. 대타요?… 누가요?… 사장님이요? 아이 씨, 네… 네….”

소파 앞에는 각양각색의 바퀴 달린 의자들이 놓여 있다. 사무실 안 다른 가구들처럼 어디서 주워온 것들 같은데 공통점이라고는 ‘메이드 인 차이나’뿐이다. 혁은 그중 하나를 발로 차며 일어섰다.

주차장에는 사장이 이미 와 있었다. 혁은 이 일을 시작할 때 인사한 이후로 사장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찌푸렸던 얼굴에 급조한 예의를 덧씌운 혁이 다가가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들어올 때 보고 처음 보네. 현이?”

“혁입니다.”

혁은 이름도 모르는 사인데 사장이라고, 아니면 나이가 많다고 반말하는 사장이 같잖다.

“세훈이보다 동생이라던데, 몇 살?”

“스물넷이요.”

“스물넷. 군대 갔다 왔다 그랬나?”

혁은 여기저기서 이 질문을 받아내고 있을 자기 또래들을 떠올렸다. 갔다 온 이들은 그나마 편하게 답할 것이나, 아직 안 간 이들에게는 현재를 곧 있으면 소멸될 부질없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취업은?’이라는 다음 질문이 기다릴 것은 매한가지다.

“뭐, 요새 군대가 군댄가. 핸드폰도 들고 들어간다매?”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장은 말을 잇는다. 성격이 급한 것 같다. 혁은 사장의 말에서 피해의식을 느낀다. 자기들도 갔다 왔는데 어린 너희도 당연히 가야 하며, 자기들만큼 힘들지 않을 것이 언짢다는 뉘앙스다.

그리고 혁은 사장이 묻는 말에 굳이 답하지 않아도 다음 질문이 쏟아진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고 마냥 듣고만 있을 순 없어 해탈을 묻혀 답해본다.

“네, 그렇죠.”

사장은 씨익 웃더니 보조석에 오른다. 혁은 운전석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맨 사장이 대시보드 위에 붙어 있는 사진을 닦는다. 우악스러운 손에 비해 사진이 너무 작다. 혁은 두 달이나 같은 차를 타면서도 거기 사진이 있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마치 하나의 배경이 되어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빠와 엄마, 딸이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머리 스타일이 바뀌고 눈가의 주름과 드문드문 난 새치가 달랐지만,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진 사장과 사진 속 가장이 동일 인물인 건 알 수 있었다. 물론 사진보다 실물이 더 후줄근해 보였다.

“우리 색시랑 딸내미 이쁘지?”

혁은 질문에 굳이 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고개를 몇 번 끄덕여줬다. 색시라는 표현이 다소 소름 끼쳤다.

“로드킬 하는 건 힘들지 않고?”

말을 줄이더라도 중심행위까지 쳐내버리는 바람에 혁은 자신이 하는 일이 우스워진 걸 느낀다. ‘처리’라든가 ‘수습’이라든가 하는 말 따위가 붙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세훈과 함께 매일 밤 미치광이처럼 도로 위로 나온 동물을 죽이러 다니는 꼴이지 않은가.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차는 신고 장소에 도착했다. 고라니 한 마리가 길가에 누워 있었다. 혁은 포대와 쇠꼬챙이를 꺼내 들고 고라니에게 향했다. 사진 촬영을 먼저 하고 쇠꼬챙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고라니 대가리를 살짝 들어 포대 안에 담는다. 상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먹잇감을 삼키는 모양새다. 그렇게 몸통을 꼬챙이로 밀어 넣으며 자루를 당기면 대충 들어가곤 한다.

“야, 잠깐만.”

뒤따라 나온 사장이 말했다. 사장은 장갑도 안 낀 손으로 포대에 반쯤 들어간 고라니를 꺼낸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혁은 사장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이내 무슨 연유인지 깨닫는다. 고깃덩이로 팔아먹을 수 있는 상태인지 보는 것이다.

“아니다. 넣어라.”

상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장은 고라니 대가리를 다시 내려놓았다. 혁은 별일 아니지만 간섭받는 것 같아 짜증 났다.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선 대선 이슈가 나온다. 어떤 후보는 몇 퍼센트, 다른 후보는 몇 퍼센트, 또 다른 후보는 또… 혁은 그 어느 퍼센티지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후보들의 인터뷰가 나올 때쯤 혁은 주파수를 돌려버린다. 채널이 세 번째를 넘어가자 사장이 말을 걸어왔다.

“혁아, 고라니 저거 귀한 애들인 거 아냐?”

혁은 몸에 좋다 하면 환장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고라니 고기 드셔보셨어요?”

“고기? 아니, 인마.”

사장이 껄껄 웃어대며 말한다.

“고라니 저거 여기서나 천대받지 전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랜다. 다른 나라에선 알아주는 희귀종이래. 웃기지 않냐?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알아주질 않아. 거들떠보지도 않지. 아니다. 유명하지, 로드킬로. 이게 좀… 느낌이 좀 묘하지 않냐? 원래는 귀한 존재인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말이야. 참 나, 혁이 너 금요일에 화장하러는 안 가봤지?”

혁은 세훈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로드킬로 수거된 동물 사체는 냉동창고에 모였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소각 처리되는데 주로 세훈이 맡아서 하는 일이었다.

“언제 한번 가봐. 꽝꽝 얼어 있더라도 간혹 표정이 보이는 녀석들이 있는데, 사는 게 뭐고 죽는 게 뭐고 그런 생각이 들어. 혁이, 네 나이 때 한번 가보면 좋겠네. 강력 추천!”

무슨 소린지도 모르지만 일단 감성에 빠진 꼰대의 말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혁은 생각했다. 그리고 대체로 저런 말은 고된 일을 시키기 전에 하는 고용주들의 말이란 것도 알고 있다.

어느새 승합차가 사무실로 들어설 때쯤 접수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또 공단 방향이었다. 공단 옆에 난 국도로 대형 차량 통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로드킬 수도 늘어났다. 접수 메시지를 확인한 사장이 말한다.

“저번에 보니까 콜 받고 좀 늦게 출발하는 팀도 있던데 너네도 그러냐?”

혁은 어제 세훈이 한 말 때문에 조금 찔렸지만 일부러 늦게 간 적은 없으니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니요, 저희는 바로 출발해요.”

“그래, 그거 웬만하면 바로바로 출발해라. 길에 널브러져 있으면 뭐 좋다고.”

최소 인원이 쉬지 않고 일하길 바라는 것은 어느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혁은 사무실에 놓인 가구들이 떠올랐다. 일 시키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하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한마디 해본다.

“이거 지자체에서 건당 얼마씩 줘요?”

“건당? 왜? 내가 중간에 많이 떼먹는 것 같아서?”

혁은 말이 없다. 사장은 씨익 웃으며 운전대를 잡은 혁의 얼굴을 본다.

“그래, 악덕 고용주다. 왜? 아주 빨대 꽂고 쪽쪽 빨아대야지, 흐흐흐.”

혁은 누군가에게는 장난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때 그걸 폭력이라고 한다는 멋진 말이 기억났다. 어떤 사람이 한 말인지는 모르나 명쾌한 것 같다.

사장은 차창을 열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혁은 사장이 입으로 빨고 있는 것이 담배가 아니라 빨대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입에서 연기를 뿜어대는 사장은 대시보드 위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혁은 문득 저런 부잣집 가정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려본다. 그랬다면 적어도 이딴 역겨운 일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밤에 돌아다니며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하이에나가 되지는 않았을 것만 같다.

둘 모두 감상에 젖어 있을 때, 차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제와는 또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혁도 이번에는 각을 잴 수가 없었다. 일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사장은 갓길에서 아직 구토 중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잠깐 동안 이 광경을 보더니 이내 갓길로 내달려버린 것이다.

혁은 승합차 뒤편에서 집게를 꺼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저렇게 도로 전체로 넓게 흩어진 것은 집게로 될 일이 아니다. 물통을 치우고 그 아래쪽에 있는 마대 빗자루를 꺼내 들었다. 이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뒤에서 누군가 혁의 어깨를 두드린다.

“차 안에 들어가 있어. 내가 할게.”

사장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혁은 사장의 말을 곱씹어본다. 사장은 자신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분명 들어가 있으란 말도 했다. 혁은 운전석에서 사장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만 있던 자신이 잘못한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일이야 대신해주면 고맙지만 내일 갑자기 자른다든가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혁은 방금 전 처리를 같이 할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니 돌이킬 수가 없다.

주차장에서는 세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께서 직접 나오셨어요?”

“그럼 내가 나와야지 누가 나오냐? 화장은 잘하고 왔고?”

“화장요? 제가 무슨 화장을… 아, 소각이요? 흐흐 앞에 애완동물 네 건 있었는데요, 거기 와서 꺼이꺼이 울고 그러는데 그거 다 받아주고 하다보니까 밀렸나봐요.”

사장과 세훈은 같은 것을 다르게 말했다.

뒷자리에 있는 고라니 포대를 들고 냉동창고 문을 여는 사장의 뒤에서 세훈이 다시 말을 건다.

“오늘 일 많으셨어요?”

“아니, 혁이랑 두 건 하고 왔지. 혁아, 수고했다.”

“네, 들어가십쇼.”

차 안에서 혁이 얼굴을 내밀어 인사하자 세훈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사장은 알았다는 듯 사무실로 들어선다. 세훈이 차에 오르며 혁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야, 무슨 쥐새끼 죽은 거 하나 데리고 와서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거 태우고 나니까 가루가 어디 뭐 얼마나 남냐. 그걸 또 조심히 쓸어가지고 요구르트병만 한 그릇에 담고. 참, 별 희한한 꼴을 다 보다 왔어.”

“햄스터요?”

“햄스턴지 뭔지 알 게 뭐야. 콜 하나 온 거 있던데 내비 찍어줄게, 출발하자.”

“어젠 30분 있다 가자면서요?”

“콜 온 지 벌써 그 정도 됐어.”

승합차는 덜덜거리며 주차장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으로 향하던 혁의 눈에 대시보드 위에 있는 가족사진이 들어왔다.

“저 사진 사장님 거던데요?”

“뭐? 아, 이거?”

세훈이 혀를 끌, 하고 차며 말한다.

“나는 저 사진 좀 그렇더라. 영정사진도 아니고.”

혁은 영정사진이란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영정사진요?”

“어, 나 여기 들어올 때 최씨 아저씨가 그러던데, 사모님이랑 사별하셨다고.”

혁은 사장이 사진을 닦아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장은 색시랑 딸내미라고 표현했다.

“야, 근데 사별한 이유가 뭔지 알아?”

혁은 세훈이 아직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번뜩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려 세훈을 바라봤다.

“교통사고.”

사장은 아까 고라니를 포대에 담던 걸 멈추라고 했다. 그러곤 혁이 담던 녀석의 머리를 다시 꺼내 이리저리 살폈다. 사장은 무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훈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도 뺑소니. 인적 드문 횡단보도라서 쓰러지신 상태로 꽤 시간이 지났나봐. 어두침침한 곳이면 그게 어디 보이냐. 그 위로 다른 차들이 계속 지나간 거야. 안 보인 거지.”

혁은 속에서 울컥하고 구역질이 나려는 걸 참았다. 그러고 보니 사장도 구역질을 했다.

“최씨 아저씨 말로는 난리도 아니었대. 그게 사람인지 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사장은 마대 빗자루를 쥐던 혁에게 다가와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경찰이 왔는데, 경찰 중에서도 그거 보고 졸도한 사람이 있었다잖아.”

사장을 두고 차로 들어간 혁은 멍하니 앉아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 앞에 놓인 건 사장의 아내가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로드킬이었다. 그냥, 로드킬이었다.

손을 떨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사장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전화받고 사장님도 현장에 갔나봐. 그러고 가서 멍하니 서 있었대. 정신이 빠져버린 거지.”

혁이 바라봤던 사장의 손에는 포대 자루가 있었다. 하지만 집게나 빗자루는 들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두 손뿐이었다.

“감식반이 와서 조사하고 수습하는 데만 세 시간이 넘게 걸렸댄다. 사장님도 거기서 그냥 세 시간을 내리 서 계셨던 거지.”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도로 위에 널브러진 벌건 덩어리들을 주워 담았다. 손의 떨림이 팔로, 팔의 떨림이 어깨로, 어깨의 떨림이 몸 전체로 번져가는 것을 혁은 보고만 있었다. 손에 잡히는 것들을 보면서 사장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담고 또 담고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계속 사장은 두 손 가득 담아냈다.

“길바닥이 죄다 사모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알잖아, 그런 거 심한 경우에 어떻게 되는지. 장례 끝나고 한 몇 달은 술에 절어서 폐인처럼 살았나봐. 그러다가 어느 날 여섯 살 딸내미가 사장님보고 그러더래. 배고프다고, 배가 고프다고. 그 말 듣고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대. 그리고 직장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이 일이랜다. 로드킬 처리하는 일.”

사장은 붉게 물든 포대를 한쪽에 치우고는 승합차에서 세척 호스를 꺼냈다. 바닥에 묻은 피가 갓길의 배수구로 밀려 내려가기까지 새하얀 물로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일을 마치고 한 손에는 포대를, 다른 한 손에는 세척 호스를 들고 차로 돌아오는 사장의 표정을 혁은 기억한다.

“우리 이거 일당 많이 받는 거야. 최씨 아저씨 말이 남는 게 거의 없대. 지자체에서 주는 예산 대부분이 우리 수당이랑 사무실 유지비, 소각 비용으로 나간다더라.”

“수당이랑, 유지비랑 화장 비용으로요?”

세훈과 혁은 같은 말을 다르게 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일해. 사무실이 구려서 그렇지 이 정도 일하고 이 돈 나오는 데 없다.”

어느덧 둘은 신고 장소에 도착했다. 개 한 마리였다. 정확히는 두 마리였다. 차에 부딪혀 쓰러진 하나와 그 옆에 새끼로 보이는 하나가 더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쓰러진 녀석이 아직 신음하고 있다.

“야, 좀 있다 올걸 그랬다. 그냥 담지는 말자. 쟤 어미인가본데.”

혁은 멀뚱히 쓰러져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곤 새끼를 보는 세훈의 옆을 지나 녀석 쪽으로 갔다. 쓰러진 녀석의 얼굴을 살피더니 살짝 들어 올린다. 옆에 있는 새끼는 캉캉거리며 혁을 향해 마구 짖어댔다.

“야, 담지 말라니까. 저거 다 죽고 시작하자.”

“데려가보죠.”

“왜? 이거 좀 있으면 죽을 텐데 기다리지 않고.”

“살, …모르잖아요.”

혁은 쓰러진 녀석을 안고 차 뒷자리로 향했다. 성큼성큼 걷는 혁을 새끼가 짧은 다리로 뒤쫓는다. 혁은 쓰러진 녀석을 차에 싣고서야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새끼를 발견했다. 새끼는 혁을 향해 높은 음으로 짖는다. 혁은 새끼를 바라보고 서 있다. 그러더니 이내 새끼를 안아 뒷자리에 같이 태우고는 자신도 운전석에 탄다.

“어쩌려고? 저거도 데려가려고?”

보조석으로 따라 들어온 세훈의 물음에 혁은 답이 없다. 사무실로 향하는 차 안엔 새끼의 낑낑대는 소리만이 자동차 소음 사이로 들려온다. 새벽 시간이라 여기저기 불이 꺼져 있다. 옷가게에도, 카페에도, 서점에도, 사랑동물병원에도, 꽃집에도, 철물점에도 불은 꺼져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시동을 끄자 차 안은 고요했다. 세훈과 혁은 차에서 내려 뒷자리 미닫이문을 열어본다. 어미와 새끼가 함께 쓰러져 있다. 둘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하나는 온전히 감았고, 하나는 그렇진 않았다.

혁이 숨을 내쉬더니 새끼를 슬며시 밀어내고 포대를 꺼내 어미를 담았다. 게슴츠레 눈을 뜬 새끼가 혁을 바라본다. 혁은 포대를 여미고 냉동창고로 향했다. 새끼가 혁을 따라, 아니 어미를 따라온다. 냉동창고 문을 닫은 혁에게 새끼가 깡깡거리며 또 짖어댔다. 뒤에서 온 세훈이 새끼를 안아 올려본다. 혁이 무심한 말투로 세훈에게 묻는다.

“얘 뭐… 우유 같은 거 주면 돼요?”

혁의 등 뒤로 아침 해가 밝아온다.

김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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