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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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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작] 화이불변

제13회 손바닥문학상 ‘어제와는 다른 세계’ 주제 공모 가작 수상작
등록 2022-01-04 11:52 수정 2022-01-05 01:52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한겨레21>은 해마다 손바닥문학상을 공모합니다. 2020년부터는 주제를 정해 원고를 모집했습니다. 2021년의 주제는 ‘어제와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모두 225편의 글이 도착했고, 최종심에 오른 21편 가운데 당선작 3편이 나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로드킬당한 동물의 사체를 치우는 일을 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김남형의 ‘고라니들’이 대상, 코로나19 시기에 늘어나는 배달대행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황성준의 ‘화이불변’과 드라이브스루(차량 이동) 매장의 젊은 파트타임 노동자가 경험하는 일터와 팬데믹 상황을 교차해 보여주는 박하의 ‘불안할 용기’가 가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세 편의 수상작을 한꺼번에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연하장을 대신해 얇은 단편소설집 같은 글묶음을 드립니다. _편집자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다. 진기는 오히려 속도를 올렸다. 오토바이가 교차로로 쏘아져 나갔다. 반대 차선에서 멈춰 있던 헤드라이트들이 진기를 덮쳐왔다. 왼쪽으로 핸들을 꺾으며 같은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터져 나오는 경음기 소리를 스쳐 간발의 차이로 교차로를 벗어났다. ‘칠 분은 벌었나.’ 그는 손아귀의 힘을 풀며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였다가 바로 세웠다. 등 뒤 수납함의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며 제자리를 찾았다.

볶음짬뽕, 12동 607호. 입구 옆, 바이크를 세워두기 좋은, 현관 앞자리를 택배차가 차지하고 있었다. 전에는 여덟 시만 넘어도 볼 일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심야든 새벽이든 무시로 걸리적거렸다. ‘등골이 접히겠네.’ 지난여름, 1.8리터 생수 묶음 네 단을 지고 계단을 오르는 택배기사를 보며 진기는 생각했다. 그의 하얀 마스크는 관자놀이에서 시작해 뺨을 타고 흐른 땀줄기로 젖어 있었다.

현관을 지나쳐 오토바이를 세우고 수납함에서 큼직한 흰 비닐을 꺼냈다. 12-607, 영수증에 휘갈긴 네임펜 글씨를 확인하고 승강기를 보았다. 4, 올라가는 세모, 12.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607호 초인종을 눌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반응이 없었다. 슬쩍 짜증이 올라왔다. 제법 세게 문을 두드렸다.

“배달이요.”

하나, 둘, 셋, 넷. 안쪽에서 실내화 끄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볶음짬뽕 하나에 고량주 한 병, 1만4천원입니다.”

갈색 플리스를 입은 중년 남성이 지갑을 뒤졌다. 초록색. 웃옷 주머니에서 거스름돈 뭉치를 꺼냈다. 두 장을 받고 미리 세어둔 여섯 장을 줬다.

승강기는 12층에 멈춰 있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단말기를 확인했다. 행운당구장, 짜장 셋. 열한 시 삼십삼 분, 이 아파트엔 상가 쪽으로 뚫린 보행자용 쪽문이 있었다. 이 시간엔 사람이 다니지 않을 것이었다. 오토바이를 돌려 보행자도로 경계석을 오른 다음 마스크를 올리고 스로틀 밸브를 당겼다. 좁다란 철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상가 건물 벽에 나붙은 당구장 간판이 보였다.

“짜장 시키신 분?”

“야, 좀 기다려.”

짜장값 내기 당구가 아직 끝나지 않았나보다. 진기는 조바심을 내며 카운터를 돌아보았고 마침 앉아 있는 당구장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마스크 위로 눈을 껌뻑이던 사장이 지갑을 꺼냈다.

“얼마야?”

“1만8천원입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하루 이틀 보나.”

단말기를 볼 것도 없이 남은 배달은 치킨. 문라이트 오피스텔 1004호. 승강기는 8층을 오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기다리기로 했다. 진기의 오른쪽 다리가 무릎부터 아래로 덜덜거리고 있었다. 띵, 초인종을 눌렀다. 하나, 둘, 셋.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치킨입니다.”

체인을 걸어두었는지 빼꼼 열린 문 안쪽에서 말없이 손이 튀어나왔다. 문틈으로 내민 손이 하얬다. 다시 한번 선불 주문 영수증을 확인하고는 그 손에 비닐봉지를 쥐여주었다. 그러나 한 뼘 남짓 열린 문틈으로는 치킨상자가 통과하질 못했다. 밖에서 슬쩍 밀어주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진기는 그제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문틈으로 그를 보는 여자의 눈길에 불안이 서린 것 같았다. 진기는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마스크도 내렸다. 그이 얼굴을 확인한 여자는 봉지를 받아달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치킨 봉지를 받으니 문이 닫히고는 체인 벗기는 소리가 났다. 조금 전보다는 넉넉하게 문이 열렸다.

진기가 건넨 봉지를 다시 받은 여자는 뭔가 맘에 안 들었는지 거칠게 문을 닫았다. 돌아서는 그의 뒤로 철커덕 체인을 거는 소리가 울렸다. 열한 시 사십구 분, 오늘 받은 일은 모두 끝냈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며 두 대의 단말기와 폰을 확인했다. 쉰세 개. 엄청나게 밀려드는 주문 덕에 골라 받아도 넘치는 수입이었다. 덕이라기엔 민망하지만 이게 다 코로나 덕이었다. 진기는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으로 주차장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 앞 편의점에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북적거렸다. 거리두기 지침 탓에 음식이고 음료고 먹고 마실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매장 밖 탁자와 파라솔을 이용해서 배를 채우곤 했지만, 밤 열 시가 넘으면 그마저도 모두 접어 치워버렸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시간에 영업하는 곳은 편의점뿐이다보니 이 시간에도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를테면 배달원-은 여기 모일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유리벽을 따라 일을 마치거나 콜대기를 하는 배달원들이 취향대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캔커피나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는 이들은 새벽일까지 이어갈 사람, 캔맥주나 소주를 마시는 이들은 이제 일을 접고 퇴근하려는 사람이었다. 진기는 1+1 행사 상품인 알록달록한 음료수와 핫바를 계산하고 편의점 맞은편 불 꺼진 갈빗집 계단에 주저앉았다. 1년 가까이 ‘임대’ 출력물이 붙어 있었지만, 다시 영업을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차군아, 오늘 몇 시에 나왔나?”

“아저씨 계셨네요. 열한 시부터 대기 탔어요.”

먼저 앉아 있던 김씨 아저씨가 진기에게 말을 걸었다. 김씨 아저씨는 이 근처 배달원 중 가장 짬이 센 고참이었다.

“점심 일 좀 뛰었겠네?”

“요즘 정신없죠. 사람들이 식당을 못 다니니 아주 노가 났어요. 아저씨는요?”

“허리가 시큰거려서 병원 들렀다 오느라 점심때는 놓치고 세 시부터 돌았어.”

“그 시간에는 짤짤이밖에 안 나오잖아요. 기름값이나 하셨어요?”

“그러니 못 들어가고 있지.”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중고 포터라도 장만하셔야죠.”

“일없다. 내 돈 꼴아박고 택배 뛸 일 있냐?”

아저씨는, 허풍이 좀 섞인 것 같지만, 경력이 화려한 양반이었다. 그럭저럭 잘나가는 창업 사장님이었다가 아이엠에프 때 사업을 말아먹고 대기업에 경력 입사했지만, 금융위기 때 정리해고당하면서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냈다가 그마저 망해서 이 바닥까지 굴러들어 왔다고 했다. 그게 7년 전인지 8년 전인지 들을 때마다 바뀌었지만 남은 빚에 애들까지 커가다보니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몸이 먼저죠. 돈도 좀 될걸요?”

“몸은 무슨. 진작 새벽 택밴지 뭔지 생기면서 운짱들 허버 굴린다더라. 그 바닥도 곡소리가 끊이질 않아. 무슨 공유 뭐시기가 들어오면서 돈도 쥐 좆만큼 준다더구먼.”

“그래도 네 바퀴로 다니는 게 낫죠. 그제 짜장이 새끼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16주 끊었어요.”

“명줄 붙어 있는 게 다행이네. 그 새낀 그냥 하던 짱깨나 뛰지 뭐 볼 거 있다고.”

“사장이 나가는 돈 많다고 딸배들 다 잘랐다잖아요. 저도 금방 걔네 짜장 뛰고 왔어요.”

“그나마 그 새끼는 퇴직금이라도 받아 나왔으니 다행이지.”

“이번에 다 털어먹고 빚까지 졌대요.”

“보험이라도 받아줘야 뭘 대비라도 하지.”

“받아줘야 뭐 해요, 보험료가 애미없는데.”

“너도 빨리 다른 일 잡아. 이 일 오래 하다가 제 발로 걸어 나간 놈 못 봤다.”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죠.”

진기는 독한 말로 되쏘아주려다가 가볍게 받고 말았다. 4년 전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아 말 상대를 해주는 사람은 이 동네에선 아저씨뿐이었다. 죽어 나가건 갈려 나가건 돈 모아 딴 일 하러 나가건, 잠깐 사이면 얼굴들이 남김없이 바뀌는 이 바닥에서 동료라는 기분으로 말을 섞을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방끈도 길어서 방을 얻거나 대행업체와 새로 계약할 때마다 쏠쏠히 도움을 받곤 했다. 무엇보다 쉰 언저리의 나이에 잔사고 하나 없이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진기에게는 막연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어린놈이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배워야지. 어, 콜 다 찼다. 난 일 나가니까 조심해서 들어가.”

“예, 조심하세요.”

김씨 아저씨는 자신의 구형 엑시브 오토바이를 몰고 네온이 번쩍이는 밤거리로 녹아들었다.

아저씨와 수다를 떠는 새, 반도 못 먹은 핫바가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그걸 우물거리는 진기의 귓가에 대기 중인 배달원들이 나누는 대화가 흘러들었다. 십만 전자가 어떻다느니 도지가 떡상이라느니 누구는 바닥을 쳐 존버 중이라느니…. 두어 해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소리들이 들렸다. 스포츠토토를 사는 친구들이 파라솔마다 모여 두산이 이기네, 이번엔 LG네 하며 떠들었다. 그때는 그도 함께 한화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열심히 골랐다. 자정이 넘도록 뺑이쳐봐야 월세를 내고 나면 몇 푼 남는 게 없던 시절엔 그 몇 푼이나마 불려보겠다고 토토질에 열을 올렸다.

그때의 동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이 바닥을 떴고 새로 두어 번 사람들이 물갈이된 지금은 주식이니 가상화폐가 화제로 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진기는 그런 얘기를 곁귀로 흘려들을 뿐이었다. 코로나 대유행이 두 해째 이어지는 지금, 배달원들은 대기업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라이더가 되었다. 콜은 골라잡을 만큼 넘쳐났고 단가도 제법 올라가고 있었다. 딸지 잃을지 알 수 없는 바닥에 생돈을 박아넣고 시황표에 명줄을 걸지 않아도 요즘 경기대로라면 지금 월세 계약이 끝날 즈음엔 전세 원룸에 들어갈 수 있어 보였다. 물론 서울이나 수도권이라면 턱도 없겠지만, 여긴 대전이니까. 진기는 다 먹은 핫바 막대를 쓰레기봉투에 던져넣고 집으로 향했다.

진기는 눈꺼풀을 비집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커튼이 없는 창문은 환기나 채광뿐 아니라 알람의 기능도 훌륭하게 해냈다. 점심 주문이 많은 여름엔 일찍, 야식 주문이 많은 겨울엔 늦게. 그러나 오늘은 평소보다 늦은 느낌이었다. 덜 떠진 눈으로 충전기 선을 더듬어 확인한 휴대폰 시계는 오전 열 시를 넘기고 있었다. 창밖을 유심히 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진기는 벌써 마음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관 신발장을 열어 비닐바지와 우비를 덧입고 집을 나섰다.

오전 열한 시, 점심 콜이 쏟아지기까지는 삼십 분 정도 남았다. 진기는 젖은 아스팔트 위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비 오는 날은 일이 힘들었다. 길이 미끄러운 건 당연하고 헬멧 바이저에 맺히는 빗방울도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마스크가 젖다보니 제대로 쓰면 숨 쉬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비옷도 시늉일 뿐이어서 스며든 빗물에 더해 몸에서 돋는 땀까지 찼다. 기분이 꿉꿉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감겨 붙는 옷 탓에 움직이기가 무지 불편했다.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비 오는 날은 일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감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들어왔다. 대유행 이후로 더욱 그랬다. 식당의 입장 인원이 제한되면서 배달이 폭증하자 덩달아 배달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늘었다. 벌이가 약해 떠났던 이들뿐 아니라 배달일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용돈벌이 삼아, 아르바이트 삼아 배달에 나섰다. 심지어 넥타이 정장에 스쿠터를 모는 투잡족이나 교복 차림에 킥보드를 타고 배달에 나선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처음엔 경쟁자가 늘었다는 느낌이었으나 밀려오는 콜은 그런 경계심을 날려버렸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은 비 오는 날엔 자취를 감추거나 콜을 받더라도 처리가 더뎌 결국은 진기 같은 배달원들에게 일감이 몰렸다. 일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더블로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진기는 지금까지 지나치지 않게 서둘렀고 오늘도 무사히 마지막 배달을 마쳤다.

편의점 앞 골목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비가 온 날은 원래 일찍 접고 술을 마시는 배달원이 많기는 했지만, 오늘은 엉덩이라도 붙일 수 있는 계단마다 술판이었다. 심지어 젖은 바닥에 상자를 깔고 술판을 벌인 자리도 있었다. 진기도 편의점에서 끓인 물을 부은 사발면을 들고 계단에 앉았다. 앉고 보니 주변의 공기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둘러앉은 예닐곱이며 담벼락에 붙어서 담배를 빨고 있는 대여섯이 서로 눈 맞추기를 꺼리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야, 뭔 일 있어? 분위기가 왜 이래?”

“진기 형 왔어요? 아까 저녁때 사고 났어요.”

“지랄, 하여간 비만 오면 꼭 하나씩 깔아요. 누구? 얼마나 나왔어?”

“김씨 아저씨….”

“장난쳐? 그 아저씨가 몇 년 짬인데 깔아?”

“실화예요. 실장님 아까 충대병원 시체실로 갔어요.”

“야 새꺄. 영안실, 영안실.”

끼어드는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서대전 육교에서 내려오는 버스에 받혔는데 튕겨 나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어들어 갔대요.”

“좀 닥쳐. 찐따 새끼가 눈치가 없어요.”

진기의 목에 뜨거운 것이 걸렸다. 사발면 국물은 아니었다. 손에 잡힌 소주병이 절반쯤 차 있었다. 누가 마시던 건지는 몰랐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대로 목구멍에 털어 부었다.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차도로 내려가 배수구에 게워냈다. 매운 것이 코로 치밀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편의점 건물로 들어간 진기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다. 코를 풀고 고개를 들자 거울 건너편에서 볼썽사나운 남자가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남자는 두 눈에 슬픔 아닌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휴지로 얼굴을 닦고 나온 진기는 여전히 말수가 적은 동료들과 소주병을 비웠다.

간신히 오토바이를 끌어다가 사무실 앞에 대고는 집으로 걸었다. 영안실에라도 들렀어야 했지만,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김씨 아저씨의 영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맥이 풀렸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었다간 눈앞에 피어오르는 향불을 향해 웃고 있는 얼굴은 자신일 것이다. 그 생각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진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술기운에 젖은 옷을 벗지도 않고 쓰러져 잠이 든 것이 탈이었다. 눈을 뜬 진기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침대에서 일어서려니 허리께와 어깻죽지가 뻐근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있었다. ‘몸살이 오는구나.’ 오늘 하루는 쉬는 게 나을 것도 같았지만, 멋대로 쉬었다간 한동안 콜이 끊길 것이었다. 시큰거리며 떨리는 무릎에 힘을 줘가며 집을 나섰다. 일 들어가기 전에 쌍화탕이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오토바이를 세워둔 사무실까지 걷는 게 짜증스러웠지만 어제 마신 술을 생각하면 잘한 일이었다. 일찍 나온 김에 사무실 앞 순대집에서 국밥을 시켰다. 점심 타임에 제대로 뛰자면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핫바를 입에 물고 오토바이를 몰 생각이 아니라면 틈이 있을 때 든든하게 먹어두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었다. 뜨끈한 국물이 미열에 떨리는 몸을 녹여주었다.

‘여기 배달은 어지간해선 안 받고 싶은데.’ 하지만 이미 받아놓은 주문들과 동선이 맞는 콜은 이것밖에 없었다. ‘서대전 엘리시움 1811호’. 저녁 시간 콜이 뜸해지는 여덟 시였다. 더 고르다가는 먼저 받은 주문들에 문제가 생길 것이었다. 수월한 주문을 먼저 처리하고 마지막 배달지에 도착했다. 진기는 지하 주차장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배달원들이 너나없이 여기 배달을 꺼리는 이유 중 첫째였다. 지상 네 개의 출입구는 모두 입주자에게 발급되는 카드키로만 출입이 가능했다. 방문자는 모두 일단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지하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피자 봉지를 꺼내 들고 출입구로 향했다. 승강기 버튼 옆 벽에 코팅된 종이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게 두 번째 이유였다. 관리비가 얼마 나오는지는 관심도 없었지만 40층짜리 건물 승강기에 붙은 경고문에선 악의가 느껴졌다. 진기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올라가는 삼각형의 버튼을 눌렀다.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는데 주차장 쪽에서 구두 발소리가 들려왔다. 바이저를 내리고 흘낏 돌아봤다. 남색 슈트에 넥타이를 맨 중년 사내였다. 승강기 표시등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등 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저씨, 안내문 못 봤어요?”

“예?”

“한글 못 읽어요? 주민 아니면 계단을 이용하라잖아요.”

“아, 예.”

진기는 몸을 돌렸다. 인상 쓰는 남자의 눈빛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진기의 뒤통수에 사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가래침처럼 들러붙었다.

“규칙을 정했으면 지켜야지 말이야….”

‘우리는 그딴 규칙 정한 적 없거든?’ 진기는 마음속으로만 쏘아붙였다. 언젠가 본 뉴스가 떠올랐다.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서 택배차를 단지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자 택배기사들이 단지 입구에 택배물을 쌓아놓고 돌아갔다는 신문기사다. ‘그것도 되는 동네에서나 하는 거지….’ 쓴침을 삼키며 진기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며 배달음식을 빼먹던 어린 동료들의 심보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배달 거지라 욕을 먹으면서도 치킨이나 탕수육 조각을 빼먹는 건 배가 고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배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엿을 먹이려는 것이었다. 무리하게 배달을 재촉하거나, 잘못 받은 주문을 배달원에게 덮어씌우거나, 비바람이 몰아치건 눈보라가 휘날리건 매장 안에는 발길도 못 들이게 하는 사장놈들이 있었다. 빼먹기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치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가끔 손님에게도 엿을 먹이고 싶은 경우가 있었다. 진기도 18층의 계단을 오르면서 피자 상자를 열어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1811호를 확인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LED 불빛이 복도에 확 번졌다.

“누구데요?”

“피자 왔어요.”

진기는 인터폰에서 흘러나오는 혀 짧은 소리에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피자 봉지를 들어 올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대여섯 살이나 됐을까 싶은 꼬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진기가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며 피자 봉지를 건네려는 순간 집 안에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마가 나간다고 기다리랬잖아.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아저씨 기다리시잖아요.”

“아저씨는 그게 일이야. 빨리 들어가서 소독해.”

“조금 아까 했는데….”

“봉다리 만졌잖아. 얼른 들어가.”

“손 시려운데….”

“자꾸 엄마 말 안 들으면 커서 아저씨처럼 된다.”

진기의 손놀림이 멎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정말? 그럼 난 치킨이랑 족발 배달할래.”

여자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의 등짝을 어이없다는 듯이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피자 봉지를 받아들며 눈길이 마주친 여자는 진기에게 익숙한 눈빛을 보냈다.

18층의 계단을 내려오는 진기의 다리가 덜덜거렸다. 등짝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낮에 먹은 쌍화탕이 약효가 없었는지 몸살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진기는 난간을 짚으며 계단을 내려오면서 조금 전 여자의 눈빛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리려 애썼다. 고객으로 마주친 것 같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 흐른 땀이 눈으로 들어갔다. 진기는 계단에 앉아 헬멧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손에 든 헬멧 바이저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을 보고야 깨달았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빗길에 타이어가 미끄러질 때마다, 정면에서 덮쳐오는 차의 하이빔을 맞을 때마다 느꼈던 추락과 전도의 공포. 이 으리으리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조차 한순간의 선택으로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두려움. 진기의 존재는 아마도 그들에게 그런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누구든 멈춰 서는 순간 쓰러진다는 것과 언제든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는 것. 공든 탑도 남 탓에 무너질 수 있고 노력이 헛될 수 있다는 공포. 김씨 아저씨의 왕년 이야기는 허세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진기의 발밑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무릎이 떨리는 건지 건물이 흔들리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주차장에 내려온 진기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약국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지만 편의점에서도 몸살약 정도는 살 수 있었다. ‘일찍 접고 약이나 사서 들어가야겠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까라지는 몸을 안장에 실으며 디딤발을 박차는 순간 주차장 경사로가 밝아져왔다. 커다란 택배차였다. 경사는 급한 편이지만 커브는 완만하고 폭은 넓은 진입로였다. 알아서 제 갈 길 가겠거니 생각한 진기도 경사로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진기는 속도를 내기 위해 스로틀을 당기는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정상적으로 차선을 탔다면 진기를 향할 리 없는 택배차의 전조등이 정면으로 그를 덮친 것이다.

진기는 하얗게 쏘아오는 광선 너머로 운전석을 보았다. 택배기사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에는 그제야 진기의 오토바이가 들어온 것 같았다. 손톱이 핸들커버를 파고들 정도로 힘을 준 양손이 어떻게든 차를 틀어보려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늦었다. 지금 진기의 경로로는 트럭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진기는 속도를 올려보려 했다. 차체에 부딪혀 튕겨 나가기라도 하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그 순간 어찔하고 손발에 힘이 풀렸다. 진기는 균형을 잃은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졌다. 주차장 바닥에 패대기쳐진 머리에서 헬멧이 깨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진기는 의식을 잃었다.

가볍게 스로틀을 당기자 몸이 젖혀질 만큼 순간적으로 속도가 올라갔다. 조금 전까지 몰던 배달 오토바이가 아니었다. 진기는 반사적으로 오토바이의 동체를 감싸듯이 자세를 낮췄다. 땅으로부터의 높이로 보나 달리는 속도로 보나 꿈속에서나 타보던 배기량 750cc짜리 숑카였다. 언젠가 몰아보고 싶다고 인터넷 카탈로그만 뒤지며 침을 삼키던, 정품 출고가라면 그가 목표로 하는 원룸의 전세보증금보다 비싼 물건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배달 적재함 따위는 달리지 않았다. 그가 쏘아내는 전조등이 비추는 도로엔 아무도 달리고 있지 않았다. 배달 중에는 엄두도 못 낼 속도로 달리면서 진기는 머릿속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갑자기 뒤가 밝아졌다. 백미러에 제법 큰 트럭의 하이빔이 눈을 찌르며 부서졌다. 처음엔 따라잡힐 리 없다고 느긋했던 진기지만 시속 200㎞를 넘겨 달리는 자신과 거리를 좁혀오는 불빛에 두려움을 느꼈다. 잠시 후 트럭의 형상이 또렷해졌다. 택배차로 보이는 트럭은 온통 흰 국화로 뒤덮여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운전석이 보일 법도 하건만 어둠 때문인지 선팅 때문인지 트럭의 운전석은 새까만 직사각형으로 번들거릴 뿐이었다.

달리던 도로의 경사가 느껴졌다. 처음엔 완만했지만, 점차 가파른 오르막길이 뻗어 있었다. 그래도 진기의 오토바이는 속도를 잃지 않고 달렸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트럭의 전조등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진기는 조금이라도 빨라지기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추고 스로틀을 한계까지 당겼다. 그래도 따라잡혀 트럭의 앞범퍼가 뒷바퀴를 집어삼키기 직전 진기는 오르막이 끝났음을 느꼈다. 도로와 바퀴가 맞물려내던 주행음이 사라지고 몸과 함께 오토바이가 붕 뜨는 감각. 손이라도 닿을 듯 따라붙었던 트럭의 전조등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꺼지듯 멀어져갔다. 뭔가 이룬 듯한 성취감도 잠시, 온몸을 밀어내던 바람의 저항이 약해지면서 진기는 추락의 공포에 휩싸였다. 아래는 깜깜할 뿐 오토바이의 전조등이 닿지 않았다. 그는 오토바이와 한 몸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다가올 추락의 충격에 대비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진기는 눈동자를 굴려보았다. 고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보이는 시야가 한정됐다. 언뜻언뜻 스치는 흰 가운이 보였다. 의외로 오른손은 쉽게 들렸다.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로부터 수액 줄이 뻗어 있었다. 조금씩 주변의 소리가 귀에 스몄다. 신음소리, 울음소리 그리고 두서없는 대화들. 병원 응급실인 것 같았다.

진기가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보았는지 누군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고 있는 옷이 의사인 듯했다.

“정신 드셨나요?”

“예.”

“차진기씨 맞으시죠?”

“예.”

말을 걸었던 의사가 어딘가로 손짓했다.

“차진기씨, 사고당하실 때 상황 기억나요?”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데 택배차가 덮쳤어요. 그걸 피하려다가 넘어져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제 상태가 어떤가요?”

옆에 서 있던 의사가 대답했다.

“왼팔 골절이랑 뇌진탕 소견이 있네요.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곧 퇴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치료받으시고 서에 한 번 오세요. 조서 써야 합니다.”

“저기, 택배기사님은 어떻게 됐나요?”

“부검이 끝나야 확실하겠지만 심근경색이었나봐요.”

의사의 말에 경찰관이 거들었다.

“천행인 줄 아세요. 그 양반, 끝까지 핸들을 꺾고 있다가 가셔서 응급대원들이 핸들을 잘라내서 이송했다니까. 그냥 밀었으면 이 정도로 안 끝났을 겁니다.”

핸들커버를 파고들었던 기사님의 두 손톱이 떠올랐다.

“기사님도 여기로 모셨나요?”

“예.”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충대병원 응급실이에요.”

김씨 아저씨는 하얀 국화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었다. 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정장을 입고 웃고 있는 살집 좋은 남자의 얼굴에서 진기가 알던 김씨 아저씨의 모습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신히 눈매와 입꼬리가 닮았음을 확인하고는 상청에 올랐다. 깁스한 왼팔이 낯설어 뒤뚱거리면서 아저씨에게 두 번 반 절을 했다. 그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얘기만 들었지 실물을 처음 보는 상주와 반절을 나누면서 진기는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기가 어젯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쪽으로 옮겨졌다면 상청에 문상객을 맞을 상주조차 없었을 테니까. 그는 문상객이나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솟아나는 쓴웃음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어차피 죽은 이들의 숫자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시절이었다. 어떤 이들의 죽음은 뉴스며 동영상으로 재탕 삼탕 화젯거리가 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숫자로도 알려지지 않고 사라졌다. 명문대학 의대생이라거나 백신이라도 맞은 이가 숨이 끊어졌다면 사인도 확인되기 전에 뉴스가 되지만, 일하다 죽은 이들은 해를 넘겨도 죽음의 책임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잊혔다. 하긴 대유행 전에도 그랬다. 진기는 자신이 후자임을 오늘에야 직시할 수 있었다. 누구 탓도 아닌 죽음이 넘치는 세상에서 누구 덕에 목숨을 건졌는지 알고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기는 안내대를 찾아 물었다.

“오늘 새벽에 교통사고, 아니 과로사, 아니…. 서대전 엘리시움 지하 주차장에서 돌아가신 택배기사님 이쪽에 모셨다고 하던데…. 아니, 성함은 모르고요….”

황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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