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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작] 불안할 용기

제13회 손바닥문학상 ‘어제와는 다른 세계’ 주제 공모 가작 수상작
등록 2022-01-06 13:41 수정 2022-01-07 01:56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한겨레21>은 해마다 손바닥문학상을 공모합니다. 2020년부터는 주제를 정해 원고를 모집했습니다. 2021년의 주제는 ‘어제와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모두 225편의 글이 도착했고, 최종심에 오른 21편 가운데 당선작 3편이 나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로드킬당한 동물의 사체를 치우는 일을 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김남형의 ‘고라니들’이 대상, 코로나19 시기에 늘어나는 배달대행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황성준의 ‘화이불변’과 드라이브스루(차량 이동) 매장의 젊은 파트타임 노동자가 경험하는 일터와 팬데믹 상황을 교차해 보여주는 박하의 ‘불안할 용기’가 가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세 편의 수상작을 한꺼번에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연하장을 대신해 얇은 단편소설집 같은 글묶음을 드립니다. _편집자

1

삐- 기계음이 울린다.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나는 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2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 두 대의 모니터 앞에 선 나는 헤드셋 너머로 누군가의 안녕을 묻는다. 내 안녕을 묻는 이는 없다. “불고기버거 세트 주시는데요, 음료는 따듯한 커피 주시고요. 감자튀김 미디엄 사이즈 하나 더 추가해주세요.” 무난한 주문이다. “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추가 주문 없으시면 다음 창문으로 이동해주세요.” 차가 내 옆으로 오기도 전에 삐- 기계음이 울린다. 아직 이 차의 결제도 끝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주문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고 초면의 누군가에게 안녕과 죄송함을 한꺼번에 전달한다.

나는 오늘 몇 대의 차를 만나게 될까. 내가 서 있는 곳은 글로벌 푸드 서비스 기업 Z사의 드라이브스루 매장 속 OT(Order Taker) 부스다. 아침 7시에 출근한 나는, 최소 3시간은 이곳에서 줄줄이 이어지는 차들의 주문을 받아낼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주문만 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주문을 받지만 앞에서는 패티를 굽고,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내 주문을 통과하는 차량에 음식을 건네주는 PT, 러너, 카운터가 있다. PT가 무엇의 줄임말이었더라 인터넷에 검색해본다. 헬스 PT 글만 수백 개가 나온다. 하여튼, 이 세상은 모든 걸 쓸데없이 영어로 말한다. 나는 뒤에서 주문을 받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햄버거를 챙기고 감자를 튀기고 음료를 뽑을 것이다. 내가 입이 쉴 틈이 없다면 그들은 손과 발이 쉴 틈이 없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주문을 끊고 OT 부스를 벗어나 앞으로 나간다. 냉동감자를 튀김망에 담그고, 크기에 맞게 퍼 담는다. 얼음이 다 떨어지면 제빙기에서 얼음도 퍼다 나른다. 하지만 차를 오래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 여기는 패스트푸드점이니까. 모든 일은 틈과 틈새로, 눈치껏, 알아서 ‘잘’ 해야 한다. 자, 다시 주문을 받는다.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2

사람의 걸음이 빠를까, 차의 바퀴가 빠를까. 당연히 차의 바퀴가 빠르다. 사람의 뜀박질이 빠를까, 차의 바퀴가 빠를까. 이건 알 방법이 있다. 차가 OT 부스로 넘어오기 전까지, 내가 빠르게 뛰면 알 수 있다.

Z사 드라이브스루는 총 3단계다. 먼저, 차량이 입장하는 부스. 여기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차량 고객은 이곳에서 창문을 내리고 직접 주문한다. 그리고 다음 장소엔 주문을 받고 결제하는 OT 부스가 있다. 결제했다면 고객에게 제품을 건네주는 PT 부스로 넘어간다. 차가 OT 부스로 넘어오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고객이 결제하지 않은 채 PT 부스로 넘어가게 된다. 이러면 절차가 복잡해진다. PT 부스엔 결제할 수 있는 포스기가 없기 때문에 차를 다시 뒤로 돌려보내야 한다. 일을 두 번 하는 셈이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앞에서 누군가의 일을 도와주다가 주문을 받으면 OT 부스로 달려간다. 그러면 대개, 차보다 빠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시간당 8720원의 동일 임금을 받는다. 노동의 강도, 속도, 업무가 달라도 우리는 모두 똑같은 금액을 받는다. 이 사실은 참으로 민주적이게 느껴지면서도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무서운 힘이 있다. 이 힘으로 인해 비교적 강도가 ‘덜’ 높다고 생각되는 업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OT다.

주문받는 일은 몸을 많이 쓰지 않는다. 여기는 빠르게 음식을 내보내는 패스트푸드점이고, 우리는 동일 시급을 받는다. 주문을 받음과 동시에 햄버거는 만들어지고 음료가 뽑힌다. 이 사실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민주적이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방법이 있다. OT가 주문을 받으며 몸을 쓰면 된다. 이게 바로 2차 업무다.

1차 업무는 고객의 주문을 ‘똑바로’ 받고 결제하는 것이다. 2차 업무는 차량 주문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해야 하는 일을 말한다. 첫째, 매장에서 고객이 식사한 트레이와 컵을 세척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깨끗이 소독된 타월로 트레이를 닦고 말린 뒤 트레이매트라 불리는 종이를 깔아 앞으로 전달한다. 둘째, OT 부스 옆 복도에 쌓이는 상자와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다. 상자에 붙은 테이프는 모조리 떼어 일반쓰레기로 버리고, 멀쩡한 상자는 주먹으로 때리고 손바닥으로 쪼갠 뒤 켜켜이 포갠다. 일이 익숙해지면 고객의 주문을 받으며 상자를 포개는 효율적인 기술을 구사한다. 다 정리된 상자 더미와 쓰레기 더미는 차가 오지 않을 때 재빨리 창고로 넘어가 옮겨둔다. 셋째는… “호님, 앞에 얼음 좀 채워주세요.” 누군가 헤드셋으로 말했다. 바로 이런 일이다. 부족한 자재를 채워주고 얼음을 퍼주는 일.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2차 업무의 끝 번호는 정해질 수 없다. 일은 만들어내면 되기 때문이고 여기선 모든 게 일이 된다. 우리는 같은 시급을 받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해내야만 한다.

3

이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패스트푸드점이라니. 내 삶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거긴 너무 바쁘고, 힘들 거야.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현실, 돈 앞에서 삶의 방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을 벌다보면 방향이 보인다. 생활비를 번다는 것,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먹고사니즘의 문제다. 돈이 없다면 눈앞의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방향 타령을 할 때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주말 오전 아르바이트로 프랜차이즈 빵집을 다니고 있었지만 한 달 40만원을 웃도는 월급은 부족했다. 휴대폰 요금, 보험료, 교통비 같은 고정지출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 투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떠올랐다. 패스트푸드점은 스케줄제라는 것이. 주말 아르바이트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일을 하기에 적합했다.

그렇게 2019년 7월 Z사에 입사했다. 평일 오전에는 Z사에서, 주말 오전엔 빵집에서, 그리고 주말 저녁엔 다시 Z사에 나갔다.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일주일 대부분의 시간이 밀가루에 뒤덮였다. 퇴근하고 돌아와선 잠을 잤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알바를 줄이면 되잖아”라고 했다. 엄마, 나는 그럴 수 없어. 그 이유는 엄마가 제일 잘 알잖아. 나는 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화가 났다. 나는 투정을 부릴 수 없었고, 그래서 더더욱 입을 다물었다.

투잡을 시작한 뒤, 40만원 남짓의 월급이 120만원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와 똑같이 40만원만 썼다. 사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사지 않았다. 사치를 부리는 것 같았다. 돈을 쓸 때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옷을 사려고 하면 거뭇한 아빠의 뒷목이 떠올랐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림으로써 소비를 막는다. 현대판 자린고비가 이런 것일까? 물건을 손에 쥐는 것보다 상상하는 일이 쉬웠던 사람은 돈을 써서 생활의 반경을 넓히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상상만 하고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돈을 아깝지 않게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4

어떻게 하면 여기서 초수를 더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차를 더 빨리 뺄 수 있을까? 30분 휴식을 다녀오니 내 포지션은 PT가 되었다. PT는 차량 고객에게 햄버거, 음료 등의 제품을 건네는 사람이다. PT 부스엔 모니터가 하나 달렸는데, 그 모니터엔 오늘 방문한 차량의 수, 현재 제품이 나가는 속도의 퍼센티지 따위의 수치가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나는 이 모니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드라이브스루는 차량 고객의 주문을 받고, 제품을 건네주고, 차가 우리 매장을 떠나기까지 12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 2분의 골든타임. PT는 헤드셋에서 손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제품을 준비해야 한다. 손님이 콜라를 말하면 콜라를 뽑고, 감자튀김 라지 3개를 부르면 즉시 감자를 튀겨야 한다. 주문하는 동안에도 초는 흐른다. 120초 내에 차를 빼지 않으면 수치는 100%에서 80%로, 80%에서 60%로 떨어질 것이다. 저 숫자는 내 능력이 될 터였다.

나는 늘 초수 모니터를 확인한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나갈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사람이 차고 넘쳐서 서로의 일을 도와주면 된다. 발과 손의 속도를 더 올리면 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답만을 맞히며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주문이 잠시 끊겼다. 모니터를 본다. 166대의 차가 지나쳤다. 77%.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퇴근 후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한 통에 1만5천원이 넘는 매운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차를 살까 고민 중이야.” 민이 말했다. “와, 나도 얼마 전까지 K카 사이트 엄청 뒤져봤잖아” 완이 말했다. 우리 네 명 중 민과 희는 취업했고, 완은 창업을 했다. “난 장롱 면허야” 희가 말했다.

민과 완은 드림카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림카… 차에 관심이 없었다. 면허도 따지 않았다. 면허를 먼저 딴다 한들,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없었다. 당장의 운전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았다. 그런데, 서서히 마음이 바뀐다.

“나도 요새 운전하는 게 좋아 보여. 나 아르바이트할 때 내 또래가 드라이브스루로 운전해서 오면 부럽고, 진짜 어른처럼 느껴져.” 내가 말했다. “그래, 맞아 일단 움직일 수 있는 거리 면적이 확 넓어지잖아. 차가 있으면 내 세계가 넓어지지.” 좋은 말이다. 하루에 수많은 차를 지나쳐가지만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생각해본 적은 없구나. “맞아, 자전거만 타도 엄청 넓어져. 거리 면적.” 내가 말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헤어졌다. 완과 나는 집 방향이 같아 함께 움직였다.

“호, 오늘도 알바 다녀온 거?”

“응, 그렇지.”

“아, 나도 내일 전시 마무리 작업 해야 해서 출근해.” 완이 말했다. 완은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에서 주관하는 청년가게 지원 사업에 도전했고, 당당히 붙었다. 완은 갤러리를 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갤러리 공간 곳곳, 작은 전구 하나까지 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완은 취미로 찍던 사진 일도 시작했다.

“이번 전시 끝나고, 다음 전시 사진전이야. 나랑 성주 사진전.”

“아, 그 사진 찍는다던 네 친구?”

“응, 그래서 내일 다음 전시 미팅도 있어.”

“완도 이제 작가네.”

완은 그러게- 하며 큰숨을 내뱉었다. 그 숨에서 느낄 수 있었다. 완의 공간은, 세계는 점점 커지고 있구나. 그 공간이 점점 커지기까지, 완은 정말 큰 용기를 냈을 거다.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완은 또 무수히 많은 불안과 부담을 지어가겠구나.

“그런데 요즈음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그냥, 아르바이트하고 싶다는 생각.” 완이 말했다.

“맨날 전시 미팅하고, 기획하고 그러다보니까… 뭔가 계속 머리를 쓰는 일만 한다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단순하게 몸 쓰는 일을 하고 싶어.”

“아, 뭔지 알 것 같아.” 내가 짧게 대답했다. 완의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완은 몸을 쓰고 있을 거다. 정신과 분리되는 육체노동은 없다. 120초에 내 몸을 맞추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몸의 경험은, 곧 지식이 될 터였다. 이 지식이 어디에 쓰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하지만 완은 생계를 이어갈 본업의 지식을 쌓는 몸이 될 테다. 공부는 나의 몸이라고 했던,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 떠오른다. 나는, 나는 어떤 몸이 될까. 나는, 무얼 하고 싶었더라.

5

생각이 많은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 기왕이면 내가 쓴 글로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더 멀리 나가서 나만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그러니까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커피가 다 뽑혔다. 컵 뚜껑을 닫고, 고객에게 향한다.

“따듯한 아메리카노 드릴게요.” 고객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내가 건네는 커피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니, 그걸 더러워서 어떻게 먹어.”

“네?”

“컵 입구를 잡고 있으면, 내가 언니 손 닿은 부분에 입을 대고 마시라는 거 아니야. 그걸 더러워서 어떻게 마시냐고.”

고객의 말은 그러했다. 내가 커피를 건네줄 때, 컵의 옆 부분이 아닌 뚜껑 부분을 잡았기 때문에 더러워서 입을 대고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뚜껑도 제 손으로 닫았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 제가 컵이랑 뚜껑 다시 새것으로 바꿔서 드릴게요.” 나는 뚜껑을 바꾸기 위해 뒤를 돌았다. 그때 차 안에 있던 고객이 소리를 쳤다. “일할 때 생각 좀 하고 일해!”

등 뒤에서 소리치는 그 말에 확, 기분이 나빠졌다. 컵 뚜껑을 잡는 일이, 생각하며 일하라는 소리를 들을 일이었나. 나는 바로 컵 뚜껑을 새것으로 바꾸고 이번엔 제대로 컵의 옆 부분을 잡았다.

“고객님, 다시 드릴게요.”

“어, 아깐 내가 화내서 미안해~.”

커피를 받은 고객은 차를 타고 매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아까는 기분이 조금 나쁠 뿐이었는데, 사과를 들으니 화가 났다. 내게 짜증을 낸 본인의 마음이 불편해서, 마지못해 한 사과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일이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일인가. 주문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는 거기에 몸을 맞출 뿐이고, 그러다보면 이 공간과 동화된다.

사실, 방금과 같은 일이 이제 조금은 익숙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바이러스가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니까. 내가 입사한 2019년까지만 해도 매장의 모든 일을 맨손으로 해결했다. 물론 버거를 만드는 그릴에선 늘 비닐장갑을 착용한다. 세상은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상황도 있다. 바이러스가 퍼져도 우리는 햄버거를 먹고, 기후위기가 닥쳐도 우리는 햄버거를 만든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2020년 3월부터 본사는 교차감염을 막겠다는 이유로 모든 매장 직원에게 비닐장갑을 끼고 일하게 했다. 얇디얇은 비닐장막 하나로 서로의 오염을 막는다. 비닐장갑은 일의 능률을 떨어뜨렸고,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끼던 장갑을 버리고 새 장갑을 꼈다. 여름엔 금방 손에 땀이 찼다. 손에 땀이 나면, 장갑 안은 물기로 가득 차고 장갑을 버리는 빈도가 늘었다. 새로운 규칙이 불러온 효과는 청결 유지보다 쓰레기 폭발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19 감염이 장기화하면서 고객은 다회용 컵에 불만을 가졌다. 불안하다는 이유였다.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가 법제화됐어도, 감염병 확산 속에서 일회용품은 안전한 물품으로 대체됐다. 재사용이 새로운 감염의 개념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은 청결의 개념으로 변화했다.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해왔다. 내 아무리 텀블러를 쓰고, 면마스크를 쓰고, 채식을 고민하고, 친구들과 에코페미니즘 독서모임을 가져도 나는 패스트푸드점 직원이다. 하루에 몇 상자인지도 가늠이 안 되는 소고기 패티가 구워지고, 잘못 뽑은 음료는 그대로 버려진다. 플라스틱과 종이컵이 난무하고 쓰레기통엔 일회용 장갑이 넘실댄다. 개인의 일상적 실천은 기업의 실천을 따라갈 수 없다. 생산과 소비가 뒤틀리는 이곳. 생계와 삶의 지향점이 충돌하는 이곳에 내가 서 있다.

매장을 청소하다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본다. 생선으로 만든 버거를 홍보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어업 인증을 받은 생선을 사용했다고. 책에서 봤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늘 그랬던 것처럼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처럼 들린다고. 나는 일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커피컵 잡는 위치를 고민하기보단 여기가 어디인지를 생각한다. 나는 이 삶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바빠지면 또 몸을 움직일 것이고, 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못할 거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갑자기 울컥, 마음이 복잡하다. 생각보다 나는, 뒤끝이 있나보다.

6

“호는 한곳에서 정말 오래 일하는 거 같아.” 영이 말했다. 영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친구다. 같은 동네에 살아 종종 본다. 영과 나는 관심사도, 취향도 아주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을 나누며 서로가 아는 다른 지식을 공유하며 위로받기도 한다. 영은, 최근 1년간 일했던 콜센터를 퇴사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Z 다닌 지 지금 얼마나 됐지?”

“나 2년 좀 넘었어.”

“와, 대단하다. 나는 손이 느려서 패스트푸드점은 정말 못하겠던데. 대단해. 근성 있다.”

아, 그런가 내가 말했다. 영은 4년 전 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5개월 정도 일한 경험이 있다. 영을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내가 2년 넘게 한곳에서 아르바이트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벌써 그렇게 됐어?”라는 반응, “언제까지 다니려고?”라는 물음. 사실 나도 놀랐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떤 상황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다니는 거지, 뭐”라고 한다. 그게 맞으니까.

엄마가 이가 아닌 틀니를 보이며 웃을 때부터, 아빠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없게 된 그날 이후로 나는 오늘과 내일을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집착했다. 비빌 언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스스로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으니까. 언덕을 만들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돈을 버는 일이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100만원 남짓의 돈은 잠시나마 이 불안을 없애줬다. 누군가의 근성은 그렇게 생겨난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일 뿐이다.

오늘, 내일을 산 결과로 나는 200만원이 넘는 노트북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노트북으로 학교 수업을 들었고, 과제를 했으며, 온라인 영화제에 참가할 수 있었다. 비대면 생활은 온라인에 접속하는 환경이 ‘기본값’이 되어야 가능했다. 우리가 알았을까, 오프라인 세상이 아닌 온라인 세계가 대안이 될 줄은. 물리적 힘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 접속하기 위해선 물리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간단해 보여도 절대 간단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을. 기본값을 설정할 수 있는 힘은 개인마다 너무나 달라서 가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과 내일의 간격은 24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어제와 오늘의 간격도 마찬가지다. 이 간격 사이사이엔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조건이 세세히 존재한다.

엄마가 컵라면 면발이 아닌 삼겹살을 씹을 수 있게 된 것도, 흰밥에 물을 말아 먹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르바이트 덕분이었다. 틀니는 엄마가 음식을 다시 씹어 먹을 수 있게 했다. 물건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타인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생활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그 주체가 나라는 사실은 위안이 된다.

“영이 너도, 콜센터 일 힘들다고 들었는데 1년을 했네.”

“으응, 몇 번 해봤던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퇴직금 받으려면 1년은 해야지.”

“중요하지, 퇴직금.” 우리는 웃었다. 맞다. 모두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노동을 하며 산다. 그것이 해봤던 일이고, 적응되니 쉽고, 지겨워도 상처받아도 당장의 오늘을, 내일을 살 수 있게 하기에 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며.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일하다보면 매일 보는 고객이 많다. 아침 7시 출근, 오후 3시 퇴근이라는 고정 스케줄 덕분에 비슷한 시간에 찾아와 매일 같은 메뉴를 먹는 고객들을 만난다. 자연스레 단골의 목소리만 들어도 미리 음료를 준비할 때가 있다. 어제도 먹은 메뉴를, 오늘도 먹는다. 이것이 그들의 아침 일정인가.

아침 8시쯤이면 매일 오는 양복 차림의 고객이 있다. 늘 아이스아메리카노 미디엄 사이즈에 시럽을 두 번 넣는다. 언젠가 한번은 그 고객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주문하신 아이스아메리카노 시럽 넣은 거 드릴게요.”

“일을 꽤 오래 하네요?”

“네?”

“일을 오래 하신다고요.”

“아~, 네.” 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 사정을 말할 필요가 없으니 어색한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일하면서 생긴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어색한 웃음에 그 고객은 “아니, 언제까지 이 일을 하려고요”라고 물었다.

당황했다. 그런 말을 건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스치듯 여러 말이 떠오른다. ‘제가 그걸 왜 말해야 하나요?’라든가, ‘그걸 왜 아셔야 하는데요?’라든가, 아니 무엇보다 ‘그걸 왜 물어보시는데요?’

그런데 내 대답은 “어… 잘 모르겠어요”였다.

“그래요, 수고해요.”

커피를 받아든 고객은 매장을 빠져나갔다. 훅 들어온 저 짧은 물음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후로도 양복 입은 고객은 같은 시간, 시럽 두 번 넣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러 종종 찾아왔다. 그날의 대화 이후론 내게 특별히 말을 걸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고객을 볼 때마다 그 질문이 떠오른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려고요?”

2년을 넘게 일하며 스쳐 지나간 사람이 많다. 3개월 정도 같이 일했던 은희 언니는 빅사이즈 속옷 사업을 해보고 싶다며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1년만을 채우고 빠르게 나갔다. 얼마 전까지 함께 맥주를 마신 민서는 공군 지원에 합격해 입대 2주를 앞두고 퇴사했다. 이 외에 수능을 다시 보려고 퇴사했지만 어쩌다보니 취업하게 된 승은, 인턴에 합격해 지난달 그만둔 입사 동기 병준, 그리고 하루 일하고 제 갈 길을 찾은 수많은 사람이 있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다. 나는 시작하고 싶은 사업도, 준비하는 시험도 없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었지만 당장 내일을 살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는 용기의 또 다른 말이었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는 용기, 어제와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용기. 퍼뜩,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아, 나는 용기가 없구나. 생각보다 살 만한가보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마음의 소리를 들으니 당장에라도 현실을 바꾸고 싶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 흔들어볼 수 있는 대범함을 뽐내고 싶다.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없는데. 어떤 환경도 내 마음 같지 않을 텐데. 그런데 초조한 마음마저 든다. 밀려오는 진심이 들린다.

“아, 퇴사하고 싶다.”

7

특별한 계기는 없다. 모두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생길 일은 드물다. 그냥, 일이 너무 지겨워서, 햄버거가 쳐다보기도 싫어서, 주말에 늦잠을 자보고 싶어서, 나도 쉽게 그만둬보고 싶어서. 이런 이유다. 근데 나 퇴사해도 되는 걸까? 퇴사하고 계획해둔 것이 없는데.

거실로 나갔다. 엄마는 소파에 누워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다. 띠로롱- 게임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른다. 좁은 거실 바닥에 누웠다. 바닥이 차다.

“엄마.”

“….”

“엄마아.”

“…왜요.” 띠로롱- 소리와 함께 엄마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봤다.

“나, 아르바이트 그만둬도 돼?”

“왜, 갑자기?”

“그냥… 지겨워서. 지겹고 힘들어서.”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는 다시 테트리스 게임을 할 생각인지 휴대폰을 들었다.

“그럼 그만두는 거지, 왜 엄마 허락을 받아.”

“아니, 그냥.”

“그려~ 세상에 일이 그것뿐이겠니. 또 다른 거 하든가, 그래.”

뾱. 뾱. 엄마는 다시 테트리스를 시작했다. 벽돌을 쌓아 올리고 무너뜨리는 게임. 틈과 틈새에 맞는 벽돌을 끼워 넣는 단순한 게임. 화면이 꽉 차면, 돌이 되어버리는 게임. 엄마에게 허락받으려던 건 아니었다.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엄마는 엄마였다.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는 너무 뜨거워 돌이 된 것이겠지. 엄마의 언덕은 여전히 뜨겁다.

퇴사를 해야겠다. 준비하는 계획도 없고, 생각해둔 직업도 없지만, 퇴사를 할 것이다. 벌써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불안 없이 다른 세계를 기대하진 않을 테니까. 오히려 불안할수록 더 부지런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가 퇴사해도 이곳은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가 버리지 않는 비닐장갑은 다른 이의 손으로 대체될 것이다. 코로나19는 아직 종식하지 않았고 11월 첫째 주에는 첫눈이 내린다.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본업으로 삼을지는 모르겠다. 내년 봄엔 화분에 목화씨를 심어볼 생각이다. 크나큰 목표는 아직 없다. 아, 운전면허를 따야겠다.

내일이 오면 용기를 낼 것이다. 오늘, 내일 하던 일상을 바꿔볼 것이다. 내 세계의 전환점은 불안을 바탕으로 변화한다. 불안을, 용기로 바꾸면서.

2년3개월을 머무른 그곳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매니저룸의 문을 연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매니저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매니저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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