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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이거 봤음?”…‘연애 가뭄’ 이유 드러내는 ‘나는 솔로’

[‘나솔’ 시청 놀이] 누구나 ‘방구석 인류학자’ 만드는 인간군상 다큐
등록 2023-09-22 11:35 수정 2023-09-27 06:31
<나는 솔로>의 한 장면. SBS PLUS 유튜브 채널 갈무리

<나는 솔로>의 한 장면. SBS PLUS 유튜브 채널 갈무리

2023년 올 추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최고의 화제는 추석 특선 영화도, 보궐선거도 아닌 단연 <나는 솔로>(이하 <나솔>)다. SBS PLUS·ENA 연애 프로그램 <나솔>이 ‘국민 수요 연속극’이라는 건 과장이 아니다. ‘돌싱 특집’인 <나솔> 16기는 얼마 전 미니 시리즈급 분량인 11회차까지 연장한다는 결정을 띄웠고, 시청률도 (요즘 예능프로라면 선방했다는) 2%를 훌쩍 넘는 평균 7.4%(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9월13일 방영분, ENA·SBS PLUS 합산)를 기록했다. 출연자나 특정 장면이 온갖 2차 창작이나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양산되는 건 기본이다. 요즘은 예쁘다는 칭찬을 “너 <나솔> 나가면 ‘옥순’이겠네”, 결혼정보회사에서 이상형을 말할 때 연예인 대신 “<나솔> ○기 ○○과 같은 사람”으로 부른다는 공공연한 사실은 ‘나솔 현상’이라고 명명할 만하다.

‘국민 수요 연속극’에 등극할 인기

사람들은 <나솔>의 인기를 두고 <하트 시그널> <환승 연애> 같은 여타 연애 프로의 맥락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날것 그대로의 인간군상 다큐”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16기 출연자들은 (편집상으로) 짝짓기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말을 옮기고, 왜곡된 여론을 조성하고, 의심과 배신이 오가고, 삼자대면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연애 프로인데도 러브라인은 그저 극적 이완을 주는 서브 스토리(상철-영숙)로 밀려나고 <머니게임>(스릴러), <더 글로리>(복수극), <아침마당>(교양) 같은 다른 장르적 스토리가 부각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이 일반인이기에 주변 친구나 동료, 혹은 자신까지 투영하며 교훈을 얻을 수 있어 ‘반면교사 특집’이라는 말이 나온다.

9월13일 <나솔> 생방 때 묘한 시청 경험을 했다. 상철이 영숙의 된장국수 주문을 입력-출력해내며 ‘조련’당하는 모습에 실실 웃는 와중이었다. “헐, 이거 봤음?” 나와 같은 <나솔> 애청자인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철의 극우 유튜버 활동 이력을 밝힌 기사 링크였다. ‘아가 상철단’이라는 팬덤이 생길 정도로 묘한 매력이 돋보이던 그의 얼굴이 조금 낯설어졌다. ‘사람은 원래 복잡하니까…’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상철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더 검색해보게 됐고, 그의 서브텍스트(Subtext·대사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이나 느낌 등), 파라텍스트(Paratext·표제, 표지, 쪽번호, 글씨 디자인 등 본문을 보완한 텍스트), 배경스토리를 잔뜩 알게 됐다.

방송 역사 이래 이렇게까지 ‘전지적 시청자 시점’이 도래한 적이 있을까. <나솔> 시청률이 오르는 만큼 출연자들의 과거사는 물론 매일 소셜미디어(SNS)에 업로드한 글귀, 몸무게 감량이나 심은 머리가 자란 모습 근황, 커뮤니티 여론 조작 여부 그리고 지인이라고 주장하는 누리꾼들이 폭로하는 숨겨진 면모까지 쏟아져나온다. 게다가 이 전지적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에게 심판도 가혹히 내린다. 유튜브 방송 콘텐츠 댓글은 물론 출연자들의 SNS 게시글 댓글과 DM(일대일 메시지)도 모자라 출연자가 운영하는 쇼핑몰 게시판까지 몰려가 훈수를 두고, 연일 출연자들은 대국민 사과 게시글로 고개를 숙인다.

<나는 솔로>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화제가 되는 장면을 게임 ‘심즈’ 등으로 패러디한 2차 창작 콘텐츠도 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심즈 아무나’ 갈무리

<나는 솔로>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화제가 되는 장면을 게임 ‘심즈’ 등으로 패러디한 2차 창작 콘텐츠도 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심즈 아무나’ 갈무리

‘사랑과 (자아) 전쟁’ 시대

유튜브 시대 개막 이래, 콘텐츠에 대한 최고 칭찬 중 하나는 ‘인류학자’다. 특정 대상이나 콘텐츠를 디테일하게 분석해 반영하는 크리에이터나 게시글이 큰 인기를 끌어서다. <나솔>도 각 인물의 심리와 인생을 디테일하게 분석해낸 후기(출연자들을 주식판에 비유 등)를 읽는 것까지가 ‘풀코스’ 시청 경험이다. 이런 촘촘한 분석과 평가에는 역설적으로 ‘불안한 자아의 시청자 시점’이 깔려 있다.

<나솔> 16기를 두고 부부 갈등을 다룬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때와 달리 지금의 사랑에서 쟁취하고 전쟁해야 할 대상은 파트너나 경쟁자뿐 아니라 ‘자아’다. 요즘 연애는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 이상으로 자기계발의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외모나 직업 같은 스펙을 가꾸는 것 이상으로 누구의 호감을 얻고 누구를 만나느냐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인정받는 정체성의 문제가 됐다.

연애 프로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연애 가뭄인 건, 내 정체성을 결정짓는 연애이기에 ‘아무나’ 만날 수 없어서기도 하다. 그래서 ‘매력 경연장’이 된 연애 프로들은 지금 ‘국민 매력’을 인정받아 셀러브리티가 되는 등용문이 됐다. 16기 광수의 말을 빌리자면 내 가치의 “추가 기울었”는지 끊임없이 계산하고 추측해야 하는 영역이 됐다.

반대로 연애 의례와 규범을 능숙히 수행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것은 곧 빌런화된다(요즘의 최고 욕은 ‘도태’다). 아예 치료 대상이 되어 국민 구루 오은영 박사의 상담을 받기도 한다(모태솔로 특집 12기 광수·영수). 16기 영자가 ‘빌런의 폭주’를 시작한 기폭제도 ‘첫인상 0표’였다. 가장 두려운 상황은 사랑을 못 이루는 게 아닌 가치설정에서 저평가되는 것이기에, ‘짜장면 고독 정식’(데이트 선택 0표 출연자가 홀로 먹음)은 고독을 넘어 공포 정식이 된다.

혐오까지 그럴듯하게 만드는 인위적 세팅

움베르토 에코식으로 질문하자면, <나솔>에서 주변의 빌런을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솔>은 실제 사람에게 장기 말 같은 별명을 붙여 캐릭터화하고, 랜덤 데이트로 불안을 자극하고, 다른 일과 관계로 환기하며 천천히 마음을 쌓거나 연애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불가능한, 특수하게 세팅된 아주 인위적인 만남인데도 ‘날것’처럼 보인다. “역시 돌싱 특집”이라며 정상 가족에서 이탈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 표현도 그럴듯해 보이기 쉬운 것처럼. ‘그나마 정상인’으로 꼽히는 영호·정숙 등 인물들은 주로 부양할 아이가 없는, 덜 취약한 입장인 것은 우연일까. 우리 주변에도 극단적 환경이면 ‘극사실’로, 그 속의 행동을 ‘진면목’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없는지 “조급해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질” 일이다(<나솔> 유행어 참조).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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