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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논쟁, 손가락 말고 달을 보라

반토막 난 규모에 주목하길, 5년간 114조원 한국형 뉴딜에선 논쟁 바뀌어야
등록 2020-09-12 01:11 수정 2020-09-14 07:33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는 ‘선별지급’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며 엇갈렸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는 ‘선별지급’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며 엇갈렸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긴급재난지원금 논란이 뜨거웠다. 정치권에서는 철든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뭇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무슨 논쟁을 한 것일까? 그 논쟁은 올바른 논쟁이었나?

논쟁은 국회에서부터 불꽃이 튀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철없는 주장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긍정하면서도 ‘책임 없는 발언’이라고 표현을 수정해줬다. 이재명 지사가 ‘국민 모두에게 같은 금액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전문가들도 너도나도 말을 얹었다. 언론에는 재난지원금 관련 칼럼과 사설이 넘쳐났다.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는 보편주의와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선별주의 주장이 주로 맞섰다. 선별주의가 아니라 필요한 데 집중해 쏟아붓는 ‘집중주의’라는 주장도 나왔다.

선별이든 집중이든, 모두가 아니라 일부에게 지급한다면 ‘누구에게 지급하느냐’가 가장 뜨거운 토론 주제가 된다. 여기서도 의견이 맞섰다. 저소득층에게 먼저 지급해야 한다는 게 한 가지 의견이다. 소득이 감소한 사람에게 먼저 지급해야 한다는 게 또 다른 의견이다. 원래 소득이 적던 저소득층이 더 큰 위험을 맞았다는 생각과,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이라도 원래 수준보다 많이 감소했다면 큰 위험에 처한 것이라는 생각의 차이다. 얼핏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두 가지 논리가 선별주의자 사이에서도 팽팽하게 맞섰다.

저소득층 생계지원은 불과 4천억원

결국 여당 대표가 정리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재난의 고통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며 “고통을 더 크게 겪으시는 국민을 먼저 도와드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선별지급론의 손을 들었다. 다만 여기서 ‘약자’란 ‘원래 소득이 적던 저소득층’이 아니라 ‘바이러스 탓에 피해를 입은 계층’이라는 쪽에 기울었다. “음식점, 커피숍, 학원, 목욕탕, 피시방 등 대면 비중이 큰 업종은 거리 두기의 직격을 받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나날이 막막하다”고 언급하면서다. 그리고 정부는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뜨거웠던 논쟁은, 그러나 소모적이었다. 진짜 해야 할 논쟁을 가리면서 지엽적인 문제에 온 국민이 집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논쟁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예산은 14조원가량인데 이번 4차 추경예산은 7조8천억원만 편성됐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앞선 추경에선 재난지원금과는 별도의 예산으로 편성됐던 소상공인 경영안정, 중소기업 금융지원, 기업 고용안정지원금, 아동돌봄쿠폰 등이 모두 들어간 숫자다. 저소득층 생계지원 용도로는 불과 4천억원이 편성됐다. ‘모두에게 골고루 지급하느냐’와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느냐’는 논쟁은 허수아비였다.

재난지원금 논쟁은 정부가 4차 추경예산 규모를 최대한 깎는 게임이었을 뿐이다. 정치인도 전문가도 언론도 이 게임에 동원됐다. 예산 총액에 대한 논쟁은 누구도 하지 않고, 깎인 예산을 어떻게 나눌지에만 흥분하며 말을 얹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교적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재원에 한계가 있으니 일부만 지급하자’고 말하면서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와 여당이 선별지급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예산이 반토막 나는 것으로 정리된 뒤 선별-보편 논쟁은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군데군데 보편수당이 생겼다. 통신비는 모두에게 지급한다. 아동돌봄수당도 모두에게 지급한다.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업종에는 소득이나 피해 규모와 상관없이 일단 모두 지급한다. 애초부터 선별이든 보편이든 중요한 논쟁이 아니었다. ‘재정 규모를 얼마나 키우느냐’의 문제였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준3단계’(2.5단계) 조처가 시행 중인 9월1일, 서울 서초동 한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텅 비어 있다. 류우종 기자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준3단계’(2.5단계) 조처가 시행 중인 9월1일, 서울 서초동 한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텅 비어 있다. 류우종 기자

GDP 1% 수준으로 대전환?

각국은 재정 규모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20%가량 적자를 감수하며 재정 규모를 키운다. 프랑스는 GDP의 4%인 1천억유로(140조원) 규모로 2년간 재정 확장을 하겠다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국가부채 규모가 GDP의 80~9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과거 준칙을 더는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 비율이 아직 40%대에 머무른 우리나라는 여전히 여유가 꽤 있다. 이를 어디까지 키울 것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어야 했다. 순식간에 재정 확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철없는’ ‘책임 없는’ 사람이 됐고, 재정보수주의자는 ‘철든’ ‘책임 있는’ 사람이 됐다. 재정 확장 논쟁을 본격적으로 벌이지 않고 엉뚱한 선별-보편 지급 논란을 벌이는 바람에, 결국 재정을 최대한 아끼려는 재정보수주의자가 현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승리하고 말았다. 손가락만 보게 하는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다.

진짜 중요한 더 큰 달은 따로 있었다. 정부는 7월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자유방임주의 종언, 독점자본주의 모순 시정, 미국 복지제도의 토대 형성 등 철학, 이념, 제도의 대전환에 기여’한 ‘미국의 뉴딜정책에 버금가는’ 정책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적 전환을 준비한다는 대책에 들어가는 국비가 2020년 추경예산부터 시작해 향후 2년간 49조원, 5년간 114조원에 불과하다. 연간 20조원대 수준, GDP의 1%를 조금 넘는 정도다. 그것도 28개 사업으로 쪼개져 있다. ‘대전환’은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기존 사업을 끼워넣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특히 뭉텅이 예산이 기존 기업과 산업 지원에 투입된다.

2022년까지만 보면 예산의 60%가량이 기존 기업, 산업 지원 예산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전기차와 수소차 지원에 5조6천억원이 투입된다. 산업단지 조성에 2조원이 들어간다. 기업에 데이터와 인공지능 솔루션을 살 수 있는 바우처를 뿌린다. 기업에 보안 소프트웨어를 살 수 있게 지원한다. 원격근무 컨설팅과 화상회의실 구축 지원에도 예산이 투입된다. 2조원을 쓰는 전선 지중화 사업이 ‘에너지 관리 효율화 지능형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끼어 들어가 있다. 산재 예방이나 사업장 분진·소음 제거 사업은 고용 및 사회안전망 강화 사업에 들어가 있다.

3월 국회에서 통과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개정 내용을 보면 기조가 짐작된다. 국가의 재정을 덜 늘리기 위한 중요한 전환이었다. 이 개정안은 과거 도로·철도·항만 등 53개 유형의 사회기반시설로 민간투자를 제한했던 것을, 모든 경제사회기반시설과 공용시설로 넓혔다. 사회기반시설을 짓는 데 국가 대신 민간이 투자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변화다.

전환의 핵심은 정부

그런데 민간자본이 사회기반시설에 왜 투자할까? 저금리와 저성장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데다 감염병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해줄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돈을 덜 들이고 민간자본으로 기반시설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민간에 더 큰 이익을 보장해주면서 재정을 더 지출하는 구조다. 당장 국채 발행을 덜 동원할 수 있는 묘책일 수는 있지만, 나중에는 세금 수입을 바로 민간자본에 돌려줘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나쁜 대책이다.

코로나19 영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 노동시장은 이미 불안정노동을 양산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금융시장은 혁신과 생산에 자원을 배분하는 대신 땅과 집에 배분해 아파트값만 올렸다. 소상공인 자영업은 이미 위기였고, 경쟁력 약한 수출기업은 보호무역 흐름에 타격을 입었고, 중소기업은 백척간두에 섰다. 기후위기로 한국에는 여름이 사라졌는데 시베리아는 이상고온에 시달렸다. 이 모든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됐을 뿐이다.

정부가 ‘한국형 뉴딜’ 발표 때 언급했던 것처럼,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이번 전환에서 그 핵심은 정부다. 당연히 재정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전환을 위해 필요한 재정과, 그 재정을 투입하는 방법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재정 규모는 대폭 확대를 전제로, 적정한 선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환경과 노동처럼 이미 시장이 실패한 영역에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기업과 산업을 지원하는 간접적 접근은 한계가 있다. 특히 에너지 전환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과 기본소득과 사회서비스 강화를 통한 사회보장 혁신도 이런 맥락에서 집중해야 한다. 물론 시장이 잘하던 제품과 서비스시장 영역에서는 규제혁신으로 오히려 기업의 역할을 더 키워줄 필요도 있다.

이 모든 논의를 제쳐두고 불꽃처럼 벌어진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논란에 다들 뛰어들어 불나방이 된 것 같다. 그 와중에 재정을 최대한 아끼자는 의견은 ‘책임 있는 것’이고 재정을 충분히 써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은 ‘책임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고 말았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진행해야 할 구조전환을 위한 국가 재정 논쟁의 1라운드는 이렇게 ‘재정을 덜 쓰고 세금도 덜 거두자’는 재정보수주의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재난지원금 논쟁했던 사람이라면
옛 이탈리아 격언에 ‘한 번 속으면 속인 자가 문제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자가 문제다’라는 말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재난지원금 논란에 뛰어들었던 이들이라면 같이 곱씹어봐야 할 이야기다. 이번 논쟁은 지나가고 말았지만 다음 논쟁은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약자가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재정을 제대로 쓰고 세금을 더 거두자’는 방향으로 다시 논리를 정리해야 한다.

이원재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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