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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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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울게 하는 법은 없다

등록 2024-04-19 11:37 수정 2024-04-24 11:34
‘닭쳐 2세’라고 별명을 지어서 미안. 새벽을 밝힐 때만 네가 목청껏 울 줄 알았는데, 나는 너를 몰라도 한참을 몰랐구나.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온몸을 쥐어짜듯 울어대서 짜증 반 걱정 반이었지. 그런 네가 때론 밥도 안 먹고 식구들을 지키더구나. 2024년 남해 미조.

‘닭쳐 2세’라고 별명을 지어서 미안. 새벽을 밝힐 때만 네가 목청껏 울 줄 알았는데, 나는 너를 몰라도 한참을 몰랐구나.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온몸을 쥐어짜듯 울어대서 짜증 반 걱정 반이었지. 그런 네가 때론 밥도 안 먹고 식구들을 지키더구나. 2024년 남해 미조.


달걀을 품에 안고 병아리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발명왕 에디슨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유명하다. 천재의 기발함일까. 평범한 아이들도 그런 호기심과 엉뚱한 실천력이 있다. 내가 어릴 때 그랬고, 우리 집 막둥이도 다섯 살 무렵 엄마 몰래 달걀 하나를 훔쳐 이불에서 품다가 깨뜨린 적이 있으니까. 어린 범인은 엄마 아빠의 가혹한 취조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자백했다. “뭐라도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서요.” 추가 취조를 통해 다음의 진술도 받아냈다.

“계란이~ 깨질 때~에, 병아리가 나오는 줄 알고 깜딱 놀랐어요. 근데~ 아무 소리도 안 났어요.” 범인은 미성년인 까닭에 훈방 조처됐다. 조사관들은 이불을 빨며 웃었다.

뭐라도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은 내 바람이기도 했으나 오랜 시간 이룰 수 없었다. 도시에선 사람만 겨우 살기도 벅차니까.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도 닭 키울 생각은 쉽게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이제 안 쓰는 물건이라며 건네준 ‘부화기’가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수소문 끝에 유정란을 구해 부화 작전에 돌입했다. 달걀 9개가 들어가는 부화기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알아서 맞춰줬고, 어미 닭이 그러하듯 때때로 알을 굴렸다. 과연 병아리가 나올지 온 식구의 관심이 쏠린 탓에 표정 없는 달걀이 민망해할 지경이었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알은 그대로인데, 가늘게 삐악삐악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톡톡 부리로 껍질 쪼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제법 긴 시간에 걸쳐 마침내 병아리가 탄생했다. 완벽에 가깝게 껍질 절반을 깨고 나온 녀석은 팔팔했다. 껍질을 깨다 멈춘 녀석은 사람 도움이 필요했는데, 나오고 나서도 어딘가 아팠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반응 없던 녀석은 무정란인 듯했다. 부화율은 3할이었다. 다음번 시도에는 겨우 1할이었다. 세 번 시도 끝에 호기심이 멈췄다. 이젠 키워야 하니까.

일주일 내내 닭장을 지었다. 닭집을 사람 집보다 좋게 지을 셈이냐는 쓴소리도 들었지만 날갯짓할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 병아리들은 순식간에 닭이 됐으나, 다 큰 뒤에도 알을 낳지 않아 의아했다. 수탉은 아름답고 윤기 나는 깃털을 뽐냈지만, 참기 힘들 만큼 시끄러웠다. 새벽을 밝히는 수탉의 울음이란 상상에나 있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온몸을 쥐어짜며 울어댔다. 대체 왜 저럴까 인터넷을 뒤졌더니 놀랍게도 수탉의 연관검색어가 ‘안 울게 하는 법’이었다. 어디에도 해답이 없었다. 알을 낳지 않는 암탉과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수탉이라니.

봄이 오자 녀석들을 밭에 풀었다. 고양이의 습격이 걱정이었는데, 놀랍게도 수탉이 쌈닭처럼 사납게 주변을 경계하며 암탉을 지켰다. 세상에 이렇게 네가 밥값을 하는구나. 녀석들은 온종일 풀숲을 뒤적대며 제 할 일을 한다. 살아야 한다는 거룩한 명령을 수행한다.

어느 날 따뜻한 달걀이 둥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더니 날마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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