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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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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21대 국회가 지켜야할 공약들

<한겨레21>이 던진 물음에 응답하는 4·15 총선 공약들 살펴보니
선거 후 꼭 지켜야 할 장애인·채식주의자·플랫폼노동자·농민 정책 등 수두룩
등록 2020-04-13 13:50 수정 2020-05-07 01:35
4월6일 경기도 수원의 한 인쇄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인쇄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4월6일 경기도 수원의 한 인쇄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인쇄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출근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고… 코로나19가 여전히 불안하네요. 장애인으로서 무력함을 느끼죠. 최근에 감기 증상이 있었어요. 혹시나 싶어 보건소에서 검사받았는데 음성 판정을 받았어요. 여전히 불안감과 싸워야 합니다.”

4월 8일 대구에 사는 지체장애인 김아무개(37)씨에게 한 달 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김씨는 직장(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의 활동지원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2월23일부터 2주 동안 홀로 자가격리를 했다. 왼팔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중증장애인에게 집안에 갇혀 홀로 보낸 2주의 시간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제1302호 ‘5년 전 메르스 때와 똑같다’)

김씨를 비롯해 대구의 장애인들 소식이 알려진 뒤 정부와 대구시는 부랴부랴 긴급 지원대책을 내놨다. 말 그대로 ‘긴급’ 대책이다. 감염병·재난 발생시 장애인들을 위한 지원 체계와 종합 대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재난이 발생하면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권이 보장됐으면 해요. 자가격리자 지원도 체계적으로 되면 좋겠죠.”

제대로 못 먹고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고기·유제품·달걀·생선 등을 먹지 않고 채소와 과일, 해초 정도만 먹는 비건(엄격한 채식주의자)인 ㄱ(12)양은 학교 급식이 나오면 맨밥에 김만 먹다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에 학교를 그만뒀다.(제1290호 ‘텅텅 빈 내 식판’) ㄱ양의 엄마 ㄴ(47)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채식 급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공약이 있다면 투표할 때 고려할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안 다니니까 채식선택권이 당장은 우리 가족한테 해당 사항이 아니지만, 채식이 보편화하고 우리 아이 같은 채식하는 애들의 급식권이 보장됐으면 좋겠어요.”

김씨와 ㄱ양·ㄴ씨의 바람은 법과 제도가, 예산이 뒷받침돼야 이뤄질 수 있다. <한겨레21>은 지난 4년 동안 아프고 다치면서도 일하는 이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청년 농민 등 수많은 ‘투명인간’의 이름을 부르고 이들의 삶을 활자로 구체화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은 언제나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물음표’에 머물렀다. 질문에 응답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거나, 변화의 조짐이 움터도 그 속도가 굼뜨기 때문이다. 지자체와 정부를 채찍질하고 변화를 채근해야 할 정치는 세심하지 못한데다 늘 딴 데 정신이 팔렸다.

코로나19와 비례위성정당 논란 등으로 인물도 쟁점도 정책도 사라진 선거라지만, 4년마다 돌아오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그 값어치가 너무나 크다. 선거는 정당과 정치의 관성을 흔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21대 국회는 앞선 국회의 관성에서 벗어나 김씨와 ㄱ양·ㄴ씨 같은 이들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이에 <한겨레21>이 그동안 던진 질문과 연결되는 각 정당과 후보자의 총선 공약을 살펴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후보자의 공약과, 각 당이 공개한 정책공약집에서 선거 뒤에도 살아남고 실현돼야 할 공약들을 짚어봤다. 원내정당과 지난 총선부터 꾸준히 정당 활동을 이어온 소수정당 공약 중심으로 톺아봤다.

중증장애인, 시설 거주 장애인, 발달장애인 등은 코로나19 사태에서 ‘고위험군’이었다. 3월17일에는 개학 연기로 특수학교에 나가지 않던 제주도의 발달장애 학생(18)이 어머니와 함께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장애인 감염병 대책과 관련해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한 정당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위기 발생시 장애인 정보 전달 방안, 활동지원사 감염병 대응 교육 의무화, 장애인 대처방법 교육, 장애 특성에 적합한 구호물품 지급,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환자 이송 방법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감염병 예방·관리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지난해 4월 강원도 산불 당시 드러난(제1262호 ‘장애인은 그저 가만히 있으라’) 장애인 재난 대책의 부재에 대해서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장애인 소득 보장, 자립생활 기반 마련, 이동권 보장, 일자리 지원 등과 관련한 공약을 제시했지만 공약집에서 감염병·재난 관련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21>과 손잡은 제21대 총선 주요 공약

<한겨레21>과 손잡은 제21대 총선 주요 공약

“통합당은 노동 공약 없고 민주당은 의지 없어”

비건 가족인 ㄱ양·ㄴ씨의 바람에 녹색당이 응답했다. 녹색당은 공공급식에서 채식선택권을 의무화하고 식료품에서 비건 표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노동당 울산 출마자들도 ‘채식선택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정비’를 공약으로 밝혔다.

<한겨레21>은 아파도 병가를 쓰지 못하는 직장인들(제1261호 ‘아파도 일한다’), 플랫폼노동자(제1288호 ‘회색 플랫폼노동’), 노인 산재(제1285호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 은폐된 산재(제1298호 ‘은폐된 289억3288만원’) 등 법과 제도 바깥에 있는 노동 의제를 꾸준히 발굴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산재의 경우 ‘산업재해 감소시 산재보험료 할인, 산재 발생 원청사용사업주 책임 강화’(민주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사업주 책임 강화’(정의당), ‘기업살인처벌법 도입’(민중당) 등 사업주 책임을 높이는 공약이 다수 나왔다. ‘플랫폼노동자 노동삼권 보장 입법’(정의당)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확대’(민주당) 등의 공약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플랫폼노동자를 노동관계법 테두리로 끌어안고 노동삼권을 통해 플랫폼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첫걸음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아파서 쉴 때 소득·임금을 지원하는 ‘건강보험 상병수당제도’ 도입을 약속하기도 했다.

노동 공약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제자리걸음이라는 평가가 많다. 참여연대 등 25개 단체 등으로 구성된 ‘2020총선네트워크’는 4월8일 총선 정당 공약 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노동 공약과 관련해 민주당은 “노동의제 공약은 있지만 실현 의지가 안 보인다”고, 미래통합당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 공약이 전무하다. 경영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노동시장 개혁만을 공약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한겨레21> 독자는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 문제와 매일 썩지 않고 쌓여가는 플라스틱 재앙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추석·설 퀴즈큰잔치 독자응모 엽서에서 많은 독자가 ‘마녀들의 씐나는 작당’(제1294호)과 ‘플라스틱 로드’(제1265호)를 인상 깊게 본 표지 기사로 꼽았다. ‘마녀들의 작당’은 농사짓는 청년 여성 네 명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청년들을 다뤘다. 농어촌 고령화와 ‘지역 소멸’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각 정당은 농어촌에 정착하는 청년·여성 공약에 공을 들였다.

민주당은 “양성이 평등한 농업·농촌을 만들겠다”는 구호 아래 지자체 여성농업인 전담 부서 설치, 여성농업인 특화 건강검진 도입과 단계적 확대, 보육시설 지원, 농업인 대상 교육과정에 성평등 교육 확대와 농촌지역 특화 성평등 강사 육성 등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미래통합당도 ‘청년·후계농 10만 명 육성’을 목표로 영농정착지원금 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금액도 월 1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공약으로 걸었다.

2018년 쓰레기 대란, 2019년 전국 곳곳 ‘쓰레기산’ 몸살 등으로 지난 2년간 우리 사회가 쓰레기와 플라스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것에 비해 관련 공약은 앙상한 편이다. 민주당은 인구 10만 명 지자체에 포장재 없는 가게(제로웨이스트숍) 설치, 해양쓰레기 저감을 위한 전 주기(발생-수거-처리) 관리를 대책으로 내놨다. 환경운동연합은 “폐기물 배출 저감과 관리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라 볼 수 있지만, 복합적인 국내 폐기물 관리 체계에 비해 단편적이고 사후 처리 중심에 그친 전략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정의당·녹색당 등 진보정당은 ‘자원순환경제 시스템 구축’과 ‘폐기물 생산자(발생지) 책임 처리 원칙’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부족하지만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틀의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모든 정당 공들인 ‘청년 주거’ 해법은 제각각

환경운동연합은 정의당과 녹색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한 단계 앞서간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자원순환경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폐기물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구축해 경제·사회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인데, 유럽연합(EU)은 최근 몇 년간 ‘플라스틱 제로’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미래통합당·민생당·우리공화당·국민의당·민중당 등은 공약에서 쓰레기,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정책은 역대 선거에서 표심을 좌우하는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다. 제1287호(‘집에 인생 건 2030’)에서 2030세대의 부동산 자산 불평등,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다루었는데 이번에도 각 정당은 부동산 공약을 앞다투어 쏟아냈다. 청년·신혼 주택 공급(민주당·민생당 등), 각종 규제완화·세제혜택(미래통합당) 등 주요 정당이 과거에도 제시했던 ‘큰 정책’들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청년 정당’을 내세우는 미래당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폐지’ 공약이 눈에 띈다. 미래당은 ‘최저 주거기준(1인 14㎡) 정밀 검토’ ‘최저 주거기준을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으로 지정’ 등의 공약을 선보였다. ‘작은 공약’이지만 ‘청년·취약계층을 위한 주민센터 국선 공인중개사’를 도입하겠다는 것도 ‘지옥고’를 전전하며 ‘집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간 국회가 공약 지킨 비율은 절반도 안 돼

공장이 떠난 두 도시, 군산과 울산(제1269호·제1271호)의 텅 빈 거리에도 ‘선거 바람’이 분다. 방준호·조윤영 기자가 6주 동안 머물렀던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각자의 해법을 내놓고 한 표를 호소한다. 누가 당선되든 정치가 제구실을 해야 하는 곳이다.

중요한 건 공약 발표가 아니라 꾸준한 실천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분석한 자료(2월7일 발표)를 보면 20대 국회의원의 공약 완료율은 46.8%로 집계된다. 19대 국회보다 4.44%포인트 낮은 수치다. 총선에 쏟아낸 공약의 무게를 21대 국회는 또다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겨레21>도 ‘공약의 운명’을 계속 지켜볼 작정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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