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주당 당헌 개정]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더불어민주당,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위한 당헌 개정… 여론 반발 감수하며 개정 강행한 이유는?
등록 2020-11-07 02:30 수정 2020-11-07 23:36
더불어민주당은 11월3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의에서 2021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당헌 개정을 의결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은 11월3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의에서 2021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당헌 개정을 의결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2021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보궐선거 공천을 기정사실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대선을 1년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아 야당 후보를 ‘무혈입성’시키는 건 정치적으로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

지난 총선에서 대승 직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낙마했을 때만 해도 민주당 내에선 부산시장 무공천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느 정도 타격을 입겠지만 ‘판’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유고 상태가 되면서 계산이 완전히 달라졌다. 포기하기엔 ‘판’이 너무 커져버렸다는 것.

포기하기엔 ‘판’ 너무 커져

이 상황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이낙연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뒤, 무공천 가능성은 더 떨어졌다. 그리고 공천은 현실화했다. 사실 이전 재보궐선거에서도 선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 무공천하는 문제는 쟁점이 됐다. 재보선 때마다 거대 양당은 이 문제로 상대를 공격했다. 승리 가능성이 작거나 자기 당에 우호적인 무소속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클 때 공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주로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선거에 국한됐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 결정 역시 어찌 보면 뻔한 ‘내로남불’ 정치 공방의 한 토막으로 치부될 여지가 있다. 민주당 지지자나 의원들이 “국민의힘도 탄핵 이후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았냐?”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 이후 재보선에도 후보를 내지 않았냐”고 역공을 가하는 것도 이런 인식의 발로다.

그러나 이번은 좀 다르다. 민주당이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에 ‘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치르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스스로 당헌을 만들어놓고 5년 만에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게다가 이번 보궐선거는 모두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치러지기에 ‘물타기’할 상황도 아니다. 3월 비례연합 정당 참여에 대한 전 당원 투표의 경우 ‘야당의 선제적 꼼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있었다.

당헌을 바꾸는 형식도 매끄럽지 못했다. 전 당원 투표 형식을 취했는데 찬성률은 86.64%로 압도적이었지만 투표율은 26.35%에 불과해 효력 논란이 일었다. 개정된 당헌조차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한 재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기존 당헌에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가 추가됐는데 여기에다 ‘단, 내년 서울·부산 재보선에 관한 전 당원 투표는 당헌 개정 전인 2020년 10월31일~11월1일 실시한 투표로 갈음한다’는 내용의 부칙도 추가됐다. 이해하기 힘든 누더기가 된 것이다.

전 당원 투표 또 해야 할 수도

이미 여야 의원 상당수가 총선 과정의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몇몇 여당 지역구에서도 재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개정된 당헌대로라면 그때도 전 당원 투표를 해야 할지 모른다. 차기 지도부는 또 머리가 아플 것이다. 형식을 이끌어내는 과정도 좋지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겠지만 격론이 벌어졌다면 찬성률이 다소 낮아지더라도 투표율은 더 높았을 것이다. 이낙연 대표와 지도부의 부담은 덜했을 것이다. 이낙연 대표 체제가 출범할 때만 해도 ‘이해찬 대표 시절보다는 당의 언로가 틔지 않겠냐’는 기대가 높았지만, 이번 전 당원 투표는 전임 대표 시절 세 차례 투표보다 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낙연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이런 부작용과 여론의 반발을 예상치 못했을 리 없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보궐선거 공천 기류가 짙어지고 전 당원 투표가 실시되는 동안 필자에게 “정말 마음에 안 들고 면목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러 차례 토로했다. 누구일지 모르는 민주당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는 선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재보궐선거 책임’과 ‘당헌 변경’이라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어쨌든 민주당의 당헌 변경으로 2021년 4월 재보선의 ‘판’은 더 커졌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공천을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다. 승리 가능성을 크게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대체적 기류는 ‘이길 가능성이 크다. 아니, 질 확률이 낮다’이다. 민주당 쪽 상황을 보면 △대통령 지지율과 핵심 지지층이 견조하고 △계파 갈등이 없어 경선 부작용 가능성이 적다. 반면 국민의힘 등 야권 상황을 보면 △바닥을 치는가 싶었던 지지율이 다시 횡보하고 △리더십 부재로 내분이 고조되고 있다. 여당의 ‘행복 회로’만은 아니다. 현재 야당의 현실 인식도 비슷 하다.

여당 위험요인 적지 않아

그러나 재보궐선거는 5개월 뒤다. 찬찬히 짚어보면 여당의 위험요인도 적지 않다. ‘민주당 vs 국민의힘’ 구도라면 민주당이 유리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찬반 투표 구도라면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 정당 지지율 비교에선 여당이 야당을 압도하지만,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시장 후보가 자기 소신과 역량대로 움직일 공간이 넓지 않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로 상징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나 법무부와 검찰 갈등 이슈의 경우, 지금도 중도층과 무당층의 반응이 좋지 않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서울시장 선거에선 부동산 문제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부동산 문제는 지금도 정부와 여당의 아킬레스건이다. 2021년 봄 이사철에 집값과 전셋값이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올해 안으로 점쳐지는 개각과 인사청문회도, 전례로 보건대 여당에 좋은 소재는 아니다.

냉정히 말하면, 정당은 선거로 평가받고 그 결과로 책임을 진다. “후보를 내서 책임을 지겠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틀린 것도 아니다. 민주당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면 이번 당헌 개정의 난맥상은 묻힐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진다면, 민주당은 스스로 키운 판의 책임을 고스란히 질 수밖에 없다. 그 책임에서 후보 몫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