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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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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도 될까요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12-03 02:08 수정 2020-05-02 19:29

서울을 떠날 때 첫눈이 내렸습니다. 자리를 비우고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계속 쉬고 있는 분한테,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어 계속 장사하는 분한테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릅니다.

지난호 ‘만리재에서’도 쉬었습니다. 너무 뻔뻔한 편집장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전수조사를 해본 건 아니나 창간 이후 편집장이 마감 때 휴가를 이유로 자리를 비운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에서 13년이나 일한 전 편집장 K의 기억입니다. 대부분 마감 뒤 휴가를 떠나 다음 마감에 맞춰 복귀했습니다. 부원은 더 쉬어도 편집장은 더 쉬면 안 됐습니다. 제가 모처럼 그 법칙을 깼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자리를 비웠습니다.

지난해 휴가 중 잠시 고향에 머물렀습니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챙겨 조용히 자리를 떴습니다. 20분쯤 차를 몰아 읍내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해놓은 취재에 몇 시간 자료 조사를 보태 칼럼을 써서 회사에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다 자고 있었습니다. 마감 때 자리를 비우더라도 편집장의 편지마저 빼먹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건너뛸 용기도 없었습니다. 자리를 비운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올해 휴가를 떠나면서 또 노트북을 챙겼습니다. 동료들은 “휴가면 칼럼을 안 쓰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칼럼을 한 주 쉬는 걸 독자들이 되레 멋지게 볼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맨 먼저 ‘만리재에서’부터 본다는 독자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건너뛸까, 아니면 짧게라도 써서 보낼까, 분량을 다 채울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론 내지 못한 채 휴가지에서도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들겼습니다. 고민 끝에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호 차례에 “류이근 편집장 휴가로 ‘만리재에서’는 쉽니다”라는 알림을 낸 사연입니다.

우리는 쉬는 것을 미안해합니다. 손님한테, 상사한테, 동료한테 그리고 독자한테 그렇습니다. 쉬는 것은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 거로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뭘 성실히 한다거나 책임감 있다는 말은 쉬지 않고 일하거나 쉬더라도 적게 쉬고 일하는 것과 등치되곤 합니다. 지금도 그런 열심과 성실의 정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쉴 권리는 머뭇거리며 행사됩니다. “쉬어도 될까요?” 너무 자주 했던 말인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자주 듣는 말입니다.

쉴 권리는 충분한 휴가를 쓰고 싶을 때 쓰는 것도 있겠지만,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얻어지는 게 더욱 큽니다. 총량적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 일터에 매여 있어 문제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학 교수가 지난 6월 한국에 와서 한 말이 머리를 때립니다. “52시간이라고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요.” 두 달 전 미국에 사는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역시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그나마 노동시간이 주는 분위기라고 했더니,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52시간이나 일한다고요?”

회사에는 일찍 나오고 집에는 늦게 가는 게 오랜 미덕이었습니다. 늦게 나오거나 먼저 나가는 사람은 동료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주 52시간제가 이미 시행됐지만 너무 적게 일한다며, 더 일할 수 있도록 예외가 늘고 있습니다. 꼭 예외가 아니더라도 온갖 편법과 불법이 초과노동을 부추깁니다. 이를 노리는 자본에 아쉬운 대로 유연근로시간제란 만병통치약이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주 52시간제로 요란했으나 노동시간 단축을 얼마나 이룰지 아직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내년 여름 누가 편집장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의 휴가로 ‘만리재에서’가 또 쉬더라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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