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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인간이 머뭇거리는 사이

등록 2020-09-19 05:01 수정 2020-09-22 01:36
1331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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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금남면에 있는 세종보를 중심으로 금강 상류와 하류, 어느 쪽으로 눈길을 옮겨도 드넓은 모래밭이 펼쳐집니다. 금강 하류 쪽으로 차를 달려 공주보에 도착해보니 그곳에서도 거대한 모래밭이 나타납니다. 신발·양말을 벗고 올라갔더니 부드러운 촉감이 맨발을 간질간질합니다. 모래를 살살 뒤집으면 재첩이 하나둘 나옵니다. 작은 것은 쌀알만 하고 큰 것은 손톱만 합니다. 30년 전 금강 하구에 둑을 쌓으면서 자취를 감췄던 재첩이 돌아온 것입니다.

제1331호에서는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는 금강을 담았습니다. 세종보~공주보~백제보 구간을 걸으며 녹조 현상은 사라지고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출현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 더위와 함께 창궐했던 ‘녹조라떼’는 올해 들어 한 차례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수달과 왜가리, 백로 등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년6개월 전 세종보와 공주보를 개방한 뒤 일어난 변화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 생명과 자유를 돌려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단 일부 보의 수문을 상시 개방하고 경제성을 따지기로 했습니다. 또 2019년 6월까지 보 처리 방안을 확정하고 12월까지는 실행 계획을 마련해 집행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공격과 총선 영향 등을 의식한 탓에 정부의 행보는 자꾸만 더뎌졌습니다.

돌고 돌아 이제, 4대강의 운명을 결정할 시간이 다시 다가옵니다. 오는 10월,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금강의 세종보·공주보·백제보, 영산강의 죽산보·승촌보의 처리 방안을 결정합니다. 이 결정을 청와대와 환경부가 빠르게 집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의 반대가 거세지면 또다시 정부는 결정과 집행을 미룰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이해득실을 따지며 머뭇거리는 동안,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며 생명력을 빠르게 회복해갑니다. 보의 수문이 열려 가로막힌 물길이 트이자 금강에는 모래톱이 52만7천㎡(축구장 면적 74배), 풀이 자라는 수변 공간이 81만9천㎡(축구장 면적 115배) 늘었습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다른 강도 금강의 흐름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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