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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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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는 것을 1년11개월 전 알았다면

등록 2021-12-16 04:17 수정 2021-12-17 02:38
1392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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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드르륵 울릴 때마다 덩달아 심장이 덜컥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 학교와 학원에서 문자메시지, e알리미 등으로 인근 초등학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탓이다. 지난주와 이번주 연달아 아이 같은 반 친구들의 가족 중에 확진자가 나왔다. 친구가 양성 판정을 받으면 아이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고, 나 역시 꼼짝없이 격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다음날 아침 아이 친구의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거듭됐다.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급기야 7천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된 지 1년11개월 만에 최고 숫자다. 3차 유행의 정점이던 1년 전 크리스마스에 신규 확진자가 1200명 이상 발생했다고, 중환자 병상이 부족해 ‘의료 붕괴 위기’라고 기사를 썼는데 그땐 진짜 위기도 아니었던 셈이다. 그때만 해도 7천 명은 전문가들의 수학적 시뮬레이션에만 등장하는, 실체가 없는 숫자였다. 폭증은 단숨에 진행됐다. 12월1일 신규 확진자 수가 처음 5천 명을 넘더니, 일주일 만에 7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병상이 부족해 1천 명 이상 입원 대기 중이다. 확진자 한 사람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감염재생산지수(R값)가 1.2를 넘으니 일일 신규 확진자가 1만 명 넘는 것도 시간문제다. 연말에 최대 2만7천 명까지 늘어난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진정한 지옥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걸까. 지난 2년 가까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뱅뱅 맴도는 중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들어온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를 막지 못해서라고 탓하는 이들을 보면, 2020년 1~2월 우한에서 오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탓이라고 호들갑 떨던 이들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하기엔, 그 앞의 델타 변이는, 그보다 앞선 GH그룹 변이는 다 잊은 건가 싶다. 정부가 12~18살 소아·청소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강요한다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자니 계절성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고 숨진 사람들이 마치 모두 ‘백신 부작용’ 때문인 양 떠들썩했던 2020년 10월의 아우성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볼 병상이 부족하다고, 공공병상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데, 1년11개월 전에 바로 첫 삽을 떴다면 이미 공공병원 하나는 거뜬히 완공했겠다 싶다. 왜 우리는 지난 경험에서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한 것일까. 방준호 기자가 코로나19 첫 유행으로부터 2년 가까이, 우리가 ‘감당 가능한 위험’을 위해 준비했어야 한 일, 놓쳤던 일이 무엇인지를 짚었다.

그래도 코로나19 덕분에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배달음식의 신세계에 눈떴고, 국외 여행길이 막히니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여행지들을 발견하게 됐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다룬 전남 신안군 안좌도 역시 그런 보물 같은 곳이다. 안좌도에 딸린 작은 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는 12월2일 유엔세계관광기구가 뽑은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됐다. 마을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인 이 두 섬은 ‘퍼플섬’이라 불린다. 안좌도와 그 옆 팔금도에서 ‘청년마을’을 만들겠다며 분투 중인 청년들은 마치 보물섬을 차지하려는 장난꾸러기 해적단처럼 발칙하면서도 엉뚱하고 재밌다. 김선식 기자는 “소멸할지도 모르는 것들의 가치를 지켜내려고 소멸 위기의 땅을 개척하고 있는 청년”이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극단에서도, 다시 버텨내고 개척하는 이들에게 ‘주섬주섬해적단’의 이야기가 작은 희망,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호 표지이야기로 공개할 ‘페미사이드’(여성살해) 심층기획 기사에 앞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당신의 이야기를 모으는 특별 웹페이지(speakup.hani.co.kr)를 먼저 연다. 교제살해, 아내살해에 관한 목소리를 남겨주시면, 12월 넷째 주 공개될 또 다른 웹페이지에 ‘세상을 떠난 여성들’을 대신해 연대하는 마음을 담겠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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