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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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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65살이 되는 게 겁난다

만 65살이면 활동지원 서비스에서 노인장기요양으로 강제 전환…

지원받는 시간 줄어 큰아들마저 잃을까 두려운 김현숙씨
등록 2018-11-15 00:25 수정 2020-05-02 19:29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 회원들이 10월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지원’과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특례업종 지정’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 회원들이 10월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지원’과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특례업종 지정’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난 10월 중순 충북 청주의 한 임대아파트. 1.5평(4.9㎡)도 안 되는 작은 방의 한쪽 벽에 김현숙(63)씨가 등을 기대 앉아 있었다. 김씨가 왼손 엄지와 검지로 좌식 책상의 위를 천천히 만지작거렸다. “푸쉬- 이이익” “푸쉬이- 익” 옆방에 누워 있는 아들 임사홍(35)씨의 호흡 소리가 약 3초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들려오자 김씨가 안도했다. 김씨가 느릿느릿 왼손을 움직여 휴대전화를 켰다. 호흡기를 쓴 사홍씨가 이불과 베개를 쌓은 곳에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숨소리가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럼 휴대전화 앱으로 큰애가 잘 있나 확인한다. 다행히 오늘은 잘 있다.”

둘째 아들 호흡기 호스가 빠졌던 날
근육이 파괴되는 근이영양증을 앓아 왼손 외에 움직일 수 없는 김현숙(63)씨가 활동지원서비스에 연령 제한을 두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근육이 파괴되는 근이영양증을 앓아 왼손 외에 움직일 수 없는 김현숙(63)씨가 활동지원서비스에 연령 제한을 두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파괴되는 병인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왼손을 제외하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김씨뿐만 아니라 김씨의 두 아들도 같은 병을 앓았다. 두 아들은 김씨보다 상태가 더 나빠 자가호흡도 할 수 없어 호흡기에 의존해야만 했다.

김씨의 하루하루는 ‘다행’과 ‘불행’을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불행할 뻔했다가 다행인 날이 반복됐다. 지난해 4월4일, ‘다’와 ‘불’ 한 글자 차이가 둘째 아들 임영훈(당시 32살)씨의 생사를 갈랐다. 영훈씨는 생명줄이던 호흡기의 호스가 빠져 그대로 숨졌다. “갈 때가 됐으니까 간 거다. 그냥 자다가 편안하게 잘 갔으니까 그걸로 됐다. 병원에서 20살을 못 넘긴다고 했는데 32살까지 살았으니 오래 산 거다.” ‘잔인한 4월’을 김씨는 “괜찮다”며 자위했다.

‘그날’ 아침 8시께, 김씨는 작은방에, 두 아들은 거실 겸 큰방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방과 거실은 움직이지 못하는 세 모자가 단절된 채 생활하는 곳이기도, 얼굴을 볼 순 없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를 확인하고 안심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방문을 없애면서 걸어놓은 천을 사이에 두고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김씨는 영훈씨와 대화를 나눴다. “뭐 먹을래?” 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고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푸- 쉬익.” 호스에 호흡을 토해내야 할 둘째 아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호스에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행과 불행이 겹쳐 사홍씨와 영훈씨를 돌보던 활동지원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영훈씨의 호흡기가 빠졌고 그날로 김씨 가족은 셋에서 둘로 줄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학 입학 때 찍은 반명함 사진이 영훈씨의 영정 사진이 됐다.

형 사홍씨도 호흡기 호스가 빠져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이 몇 번 있다. “동생이 죽은 뒤에도 호스가 빠진 적이 있는데 엄마가 홈시시티브이(CCTV)로 나를 발견하고 사람을 불러서 다행히 살았다. 숨을 내뱉다보면 호스 연결이 헐거워진다. 그러다 빠지는 거다.” 김씨는 둘째 아들의 죽음 이후,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봐 사홍씨 머리맡에 홈시시티브이를 설치해 수시로 지켜보고 있다.

김씨는 “둘째 아들이 살 만큼 살았다”고 했지만 아직도 둘째 아들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김씨가 앉아서 생활하는 책상 앞쪽 벽에는 영훈씨가 적어둔 복지관과 지인들 번호가 붙어 있었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에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둘째 아들이 붙여뒀다. 내가 힘들까봐 집안일도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영훈이가 죽은 게 믿기지 않는다.” 화병 때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김씨가 앞에 켜둔 초에 담뱃불을 붙였다.

다리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데

김씨와 두 아들이 날 때부터 거동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증상이 나타난 건 큰아들 사홍씨였다. 탁구와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좋아하던 사홍씨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쯤부터 자꾸 넘어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빠릿빠릿하던 애가 이상하게 자주 넘어지더라”고 어젯일처럼 이야기했다. 학교를 다녀온 어린 사홍씨가 “엄마, 나 오늘 탁구 치면서 세 번이나 넘어졌어요” 하는 말에 김씨는 바로 다음날 학교에 찾아가서 사홍씨가 탁구 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탁구채를 들고 이리저리 뛰던 어린 사홍씨가 중심을 못 잡고 네다섯 번인가 넘어졌다. “발뒤꿈치가 들리는 게 이상했다.” 김씨는 바로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에 사홍씨를 데리고 갔다.

급성 근이영양증. 갈수록 근육이 없어져 결국엔 누워서 생활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뒤이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둘째 아들도 같은 병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는 것. 얼마 뒤 두 살 터울인 둘째 영훈씨도 형처럼 뒤꿈치를 들어 걷기 시작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김씨가 50살쯤 됐을 때 김씨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식당에서 일하며 두 아들에게 좋다는 약도 먹이고 병원에도 다녔지만, 두 아들 다 차도는 보이지 않고 증세가 악화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씨 자신이 가장 늦게 발병해 아들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사홍씨와 영훈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큰아들은 충북대 컴퓨터공학과, 영훈이는 심리학과를 다녔다. 영훈이는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남들을 돕는 상담사가 되고 싶어 했다.” 김씨의 회상 속에 호흡기를 달지 않은 아들들의 모습이 선명했다.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으면 어쩌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김씨의 아들 임사홍(35)씨. 장수경 기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김씨의 아들 임사홍(35)씨. 장수경 기자

얘기하던 중 김씨가 활동지원사 박민경(55·가명)씨를 불렀다. “민경씨, 다리.” 김씨 가정을 약 10년간 봐왔다는 박씨가 김씨의 오른쪽 다리를 능숙하게 베개 위로 올렸다. 김씨가 “한번 자리를 잘 잡으면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도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활동지원사를 자꾸 불러서 괴롭히게 된다”고 했다. 김씨 같은 근이영양증 환자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뿐이지 몸의 감각은 다 살아 있어 간지러움, 통각 등을 느낄 수 있다.

김씨 모자가 받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사회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장애인복지법’상 만 6~64살 1~3급 등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누웠다가 일어나기, 잠자리 뒤집기 등을 조사해 활동지원서비스 인정 점수가 220점 이상이면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점수에 따라 1등급에서 4등급으로 나눠 월 47시간에서 최대 118시간(시간당 단가 1만760원)을 지원한다. 여기에 독거·취약 가구 등을 따져 추가 급여를 준다.

영훈씨가 숨진 당시 김씨 세 모자는 독거 가구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을 받지 못했다. 가족이 있어도 서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법은 김씨와 두 아들에게 냉정했다. 세 모자에게 지원되는 활동지원사 시간은 중앙정부(391시간)와 지방자치단체 지원(140시간)을 합쳐 1인당 한 달에 531시간 정도. 이마저도 시간이 아닌 급여로 지급되기 때문에 시간당 수당이 1.5배 붙는 야간이나 주말·공휴일에 서비스를 이용하면 531시간이라는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24시간을 단순히 30일로 곱해도 한 달 720시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세 사람에게 평일 낮 기준 하루 17시간 이용할 수 있는 531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방책으로 김씨는 세 모자가 지원받는 시간을 쪼갰다. 세 모자를 맡는 활동지원사 3명을 동시에 집으로 부르지 않고,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2명이나 1명만 두는 방식으로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을 줄이려 했지만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영훈씨가 죽은 뒤 청주시와 충청북도에서 사홍씨가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종전 140시간 외에 280시간가량에 해당하는 급여를 추가 지원하고 있다. “고맙긴 하지만 사람 있고 법 있는 건데, 사람이 죽으니 지원을 해준다.” 김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김씨는 아들과 함께 받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 150만원으로 정부와 시에서 지원해주지 않는 활동지원사의 나머지 비용 100만원가량을 낸다.

김씨는 만 65살이 되는 2019년이 올까봐 겁이 난다. 활동지원 서비스는 만 65살이 넘으면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로 넘어간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이 만 65살이 되면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심사받는데, 노인장기요양 등급 외 판정을 받으면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지만,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게 되면 활동지원 서비스는 중단된다. 김씨처럼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 등급 외 판정을 받을 수 없어 장기요양 서비스로 강제 전환된다.

17시간 지원에서 5시간으로, 엄마의 걱정

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김씨는 요양시설에 들어가거나 이전에 이용했던 활동지원 서비스와 유사한 재가요양 서비스를 받게 된다. 김씨에겐 모두 걱정이다. 노인장기요양 서비스의 최대 한도액은 139만6200원으로 활동지원 서비스 수가(1만760원)로 계산했을 때 하루 5시간 정도밖에 지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지원받는 시간이 4분의 1 이상 줄어든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최근 3년 만 65살 도래로 활동지원 수급자에서 노인장기요양 수급자로 전환’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환된 사람은 총 802명으로 이 중 63.7%는 서비스 이용 시간이 월평균 56시간 줄었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월 307시간이나 줄어든 사례도 있었다. 특히 김씨처럼 활동지원 1급이던 장애인 344명 모두 서비스 시간이 줄었다. 윤소하 의원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만 65살 이후에도 활동지원급여 신청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지원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발의했지만 본회의도 가지 못한 상태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활동지원 시간을 24시간으로 늘리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현재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지자체에 재량껏 추가 지원을 하라고 떠넘기는 식이다. 재정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중증장애인들은 아예 추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장애인의 사회참여 욕구 해소, 노인장기요양은 요양을 위한 것으로 서비스의 목적이 다르다”며 “만 65살 이상 중증장애인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위해 정부도 고민 중이지만,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정부 예산, 노인장기요양은 보험이라 재원이 달라 무작정 두 서비스를 합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형 사홍씨는 동생과 10여 년간 함께했던 거실에 혼자 누워 있다. 동생을 잃은 사홍씨는 엄마까지 잃을까봐 겁이 난다. 밥알을 삼키기도 어려워서 국수와 라면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홍씨는 “그날 이후 나도 갑자기 죽을까봐 누워서 자지 않는다”고 거친 숨을 토해내며 띄엄띄엄 말했다. 하나 남은 아들을 잃을 수 없는 김씨는 오늘도 휴대전화 속 사홍씨 모습을 지켜본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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