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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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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를 위한 거야?

조직 논리 체화한 이들에게 대처하는 법
등록 2018-11-15 00:31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채식 선언 뒤 끊이지 않는 동료들의 걱정, 이젠 걱정으로 들리지 않는데 어떡해야 할까.”

그는 조용하고 주변에 맞추는 유형의 사람으로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채식을 선언하자 가장 주목받는 이가 됐다. 어디서 찾은 자료인지 단백질이나 철분 결핍이 만성 질환을 가져올 수 있다, 체지방이 늘어나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탈모 위험이 있다더라, 심지어 우울증 위험이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끼니때마다 들어야 했다. 그나마 이런 걱정들은 건강과 영양소를 고려한 채식 방법이 널리 있다고 간간이 반박이라도 할 수 있다. 대뜸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거나 머리카락에 윤기가 없다며 “채식하니까 그렇잖아” 하고 지나가버리면 속수무책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채식을 시작한 뒤 간혹 도시락을 준비해 다닐 때가 있다. 그러자 까다롭게 보일 수 있다, 동료들과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문제는 걱정이라며 하는 말들이 걱정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한테도 있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데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경험. 휴가를 잘 쓰지 않는 분위기의 직장에서 연차휴가를 챙겨 쓰는 편이었다. 일이 바쁜 중에도 내 계획대로 휴가를 쓰곤 했다. 법이 정한 권리였고 회사가 언제 한가한 때가 있었나, 나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동료 한 명은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며 함께 지내는 조직인데 서로 보조를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겠느냐며 걱정했다. 한참을 듣다가 말했다.

“다른 사람 누구? 그냥 네가 싫은 거잖아. 알겠다고. 그런데 내가 너 좋은 대로 네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해?”

걱정돼서 한다는 말, 나를 위해 한다는 말들은 선별해 들어야 한다. 실제로는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많다. 채식한다고 유난 떠는 게 싫고, 한 사람 때문에 점심 식당이나 회식 메뉴를 고를 때 두번 세번 생각해야 하는 게 싫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채식의 장점을 들어 반박하는 대신 진지하게 물어보자. 내가 채식하는 게 싫은 건 알겠다고, 근데 내가 너에게 맞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채식이나 휴가 사용이나, 단지 내가 싫다는 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조직 질서를 대하는 자세가 싫은 것이다. 나는 조직에 맞춰 살려고 힘들게 애쓰는데 왜 너는 그러지 않느냐는 게 본질이다. “너도 삼겹살 회식 좀 그만하자고 말해.” 혹은 “너도 휴가 쓰면 되잖아”라고 말해야 소용없다. 어릴 때부터 전체 혹은 다수를 우선해야 한다고 배워왔고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신념처럼 돼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나 좋은 대로만 하고 사느냐는 핀잔이 돌아올 게 빤하다. 조직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인지, 확장은 불가능한 것인지 생각할 여유 없이 그저 속해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맞춰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길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꾸역꾸역 채식을 고수하고 휴가를 쓰다보면 어느새 같이 어울려 살고 있더라는 게 내 경험이다. 그렇게 낯선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범위는 넓어졌다. 채식을 선언한 당신은 지금 길을 새로 내고 세상의 울타리를 고쳐 짓는 중인 거다. 당신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낯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응원을 대신한다.

윤정연 자유기고가 *직장, 학교, 모임 등에서 겪는 고민, 전자우편(susanghancenter@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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