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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 결정 나올까

코앞으로 다가온 헌법재판소 선고… 보수적 색채의 주심 조용호 헌법재판관 판단에 관심
등록 2019-04-09 08:35 수정 2020-05-02 19:29
조용호 헌법재판관이 2018년 6월28일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위헌 선고를 위해 헌법재판소 대법정에 앉아 있다. 조 재판관은 낙태죄 위헌소송 주심을 맡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조용호 헌법재판관이 2018년 6월28일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위헌 선고를 위해 헌법재판소 대법정에 앉아 있다. 조 재판관은 낙태죄 위헌소송 주심을 맡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낙태를 합법화하면 국민의 집단적 양심은 무뎌질 수밖에 없고,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현상도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헌법은 자유, 권리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돼 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하면, 자기가 원해서 한 행동이니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낙태가 합법화되면 남성이 더 무책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은 낳고 싶은데 남성이 낙태를 강요하는 현상도 생기지 않을까.”

낙태 반대하는 시각 그대로 드러낸 질문

2018년 5월24일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에서 주심인 조용호 헌법재판관이 변호인들에게 던진 질문들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주심 재판관의 질문에 청구인 쪽 변호인들은 곤혹스러워했다. “여성이 낙태를 결정할 때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하는지 말씀드리고 싶다. 단순히 아이를 낳기 싫다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또 임부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많은 고민을 한다.” 숨을 고르며 차분히 답변하던 한 변호인이 말미에 간곡하게 덧붙였다. “재판관님,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잘 살펴봐주십시오.”(공개변론 동영상은 헌법재판소 인터넷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한 산부인과 의사가 2017년 청구한 낙태죄 위헌소송에 대한 결론이 곧 내려진다. 지난해 공개변론 때 까칠한 질문을 던졌던 조 재판관과 서기석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에 선고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두 재판관 퇴임 전에 결론이 나지 않으면 후임 재판관들이 처음부터 이 사건을 새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 주심을 맡은 조 재판관도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퇴임하겠다는 뜻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공개변론 때만 해도 낙태죄 관련 조항(낙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와 낙태 시술을 한 의사 등을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은 합헌 선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재판관 9명 가운데 위헌 정족수인 6명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구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5명의 재판관이 한꺼번에 교체되면서 헌재의 보수 색채가 옅어졌다. 여기에다 낙태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한국갤럽이 2019년 3월26~28일 전국 성인 1003명에게 낙태 관련 인식을 질문한 결과, 낙태를 “일종의 살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45%였다. “그렇지 않다”는 38%였고, 17%는 의견을 유보했다. ‘낙태는 살인’이라는 인식은 1994년 78%에 이르렀으나, 2016년 53%에 이어 올해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법조계 “헌법 불합치 결정 가능성 커”

낙태 허용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인구의 88%가 가톨릭교도인 아일랜드는 유럽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낙태를 엄격하게 규제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실시한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투표율 64.1%)에서 유권자의 66.4%가 개정에 찬성하자 헌법을 고쳤다. 아일랜드 정부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주도한 시민사회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은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에는 치명적인 기형아 출산 또는 임부 건강에 중대한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을 2019년 1월1일부터 시행했다. 한국처럼 강간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독재국가나 아프리카의 후진국 등 30여 나라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 등을 근거로 헌재에서 처음으로 낙태 처벌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는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위헌 결정보다 변형 결정 중의 하나인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헌법 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효력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가 정한 시일까지 법률을 개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그 효력이 사라진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낙태 전면 허용 또는 전면 금지와 같은, 어느 한쪽의 손을 완전히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낙태 허용의 시기와 사유를 넓혀주는 쪽으로 절충적인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3월30일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지난 3월30일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태아 12주까지 감각 능력 없어

헌재는 7년 전인 2012년에 이미 임신 기간에 따라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재판관 8명(당시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 후보자의 임명이 무산돼 정원을 못 채움) 가운데 무려 4명의 재판관이 동조한 의견이다. 위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법정의견(다수의견)이 안 됐을 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수의견이다.

이강국 당시 헌재소장과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재판관은 2012년 8월23일 선고된 2010헌바402 결정에서 임신 기간에 상관없이 임부의 낙태를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했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유명한 낙태 판결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취한 임신 ‘3분기 체계’에 근거했다. 임신 단계를 임신 초기(1~12주), 중기(13~24주), 24주 이후로 구분한 뒤 ‘감각 능력’이 결여된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소수의견은 “임신 초기의 태아는 감각을 분류하거나 그 강도 등을 식별할 수 없고,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지각을 형성할 수도 없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헌재 안팎에선 ‘의외로’ 만장일치로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하는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7년 전 소수의견으로 제시된 ‘임신 기간 차등 허용’ 의견에 법조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다 낙태 허용에 긍정적인 여론을 재판관들이 외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장일치 여부는 헌재에서 낙태 허용에 가장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조 재판관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재판관은 5기 재판부에서 개인의 결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취지의 결정을 지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조 재판관은 2016년 3월 헌재가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성매매 피해자를 처벌하도록 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릴 때 유일하게 ‘전부 위헌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는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여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입법자가 특정한 도덕관을 확인하고 강제하는 것”이라며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또 2015년 2월 간통죄 위헌 결정 때도 “간통죄 처벌은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다수의견에 동조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낙태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낙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15~44살)의 낙태 시술 경험률은 2010년 15.8%에서 2017년 7.6%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낙태율(가임기 여성 1천 명당 낙태 건수)은 15.8건에서 4.8건으로 줄었다.

의료 사각지대 증언에 고개 끄덕인 조 재판관

하지만 낙태 시술이 불법이기 때문에 공식 통계는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낙태 시술이 줄었다 하더라도 낙태 시술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5월 헌재 공개 변론 당시 청구인 쪽 참고인으로 나온 한 의사는 “여러분(재판관)들은 현재 낙태 시술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실 거다”라며 낙태 처벌에 따른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파혼을 당한 20대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으러 개인병원에 갔다가 의료사고를 당했다. 시술 도중 출혈이 너무 심해 자궁을 들어내야 했다. 명백한 의료사고였지만 낙태죄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병원에 제대로 따지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 여성은 파혼의 아픔에다 불임의 고통까지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런 피해가 병원에서 심심찮게 벌어진다.”

의사는 왜곡된 비용 구조도 증언했다. “낙태 시술은 현금 거래다. 의무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비교 선택이 불가능하다. 비용도 비싸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로 낙태를 인정받는 경우, 본인 부담으로 2만~3만원이면 시술한다. 하지만 일반 낙태 시술은 50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만큼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앞서 변호인에게 까칠한 질문을 날렸던 조 재판관은 의사의 증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낙태죄 위헌소송은 유남석 헌재소장 체제의 6기 재판부에서 주요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앞서 5기 재판부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결정을 내렸던 조 재판관은 이번에 어떤 판단을 내릴까.

참고 논문: 고봉진 ‘태아의 헌법상 지위’(2016년 2월29일)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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