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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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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값 급등 딜레마

3년 새 70% 올랐지만 지구온난화로 화석연료 정부 보조금은 폐지 운명
등록 2019-12-17 20:16 수정 2020-05-02 19:29
연탄은행의 도움을 받아 추운 겨울을 나는 저소득 독거노인.

연탄은행의 도움을 받아 추운 겨울을 나는 저소득 독거노인.

“연탄니(연탄이) 비사서(비싸서) 우리가 춥씁니다(춥습니다). 산동내애는(산동네에는) 네무(너무) 춥고… 연탄값울(연탄값을) 내레주세요(내려주세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노원구 중계본동 산104번지에 있는 백사마을에 사는 김기분씨가 연탄 가격 인상을 막아달라며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손편지의 내용이다. 아직도 백사마을에 사는 450가구는 연탄 한 장으로 “방구들 싸늘해지는 가을 녘에서 이듬해 봄눈 녹을 때까지”(안치환, ) 겨울을 나고 있다.

연탄이 ‘금탄’ 됐다

2018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 허기복 밥상공동체 복지재단·연탄은행 대표가 백사마을 노인들의 손편지를 품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선 이유다. 이 재단은 저소득층과 홀몸 노인에게 무료 급식을 하고 전국 31개 지역에서 연탄은행을 운영하며 저소득층에게 연탄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재단이다. 허 대표는 인터뷰에서 “전국에 10만 넘는 가구가 연탄을 쓰는데 연탄값이 올라 연탄이 ‘금탄’이 됐다”고 했다.

올해 연탄 한 장 가격은 공장도가격 기준 639원이다. 그나마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생산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3년 연속 가격을 올리다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한 가격이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374원이던 연탄 가격은 2016년 447원, 2017년 534원, 2018년 639원으로 해마다 100원 가까이 올랐다. 2015년 이후 70.9%나 뛴 셈이다.

지난해 산업부는 서울 평지를 기준으로 배달료를 포함한 소비자가격이 765원으로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한 농어촌, 도서벽지에선 배달료를 얹어 연탄 가격이 한 장에 1천원에 육박했다. 실제 제주도는 1200원, 전남 목포는 1100원까지 올랐다. 연탄 가격 인상을 막아달라며 지난해 12월31일 거리로 나선 허 대표의 릴레이 1인시위는 올해 1월31일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20만4207명이 참여한 서명이 정부에 전달됐다.

서민들에게 ‘금탄’이 된 연탄 가격 상승의 딜레마는 화석연료 감축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연탄을 쓰는 서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1989년부터 생산원가 이하로 최고 판매가격을 제한해왔다. 대신 생산자에게는 정부 재정으로 차액을 보조했다. 하지만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2020년까지 화석연료 정부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해, 연탄 가격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후 G20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계획의 후속 조처로 생산자 보조금을 줄이고 공장도가격을 올리자 소비자가격도 가파르게 뛰었다. 거센 반발에 부딪힌 정부는 3년 연속 올렸던 연탄 가격을 올해 동결하고, 생산자 보조금 폐지 결정도 한 해 미뤘다. 문제는 내년이다. 약속한 시한인 2020년이 다 됐지만 생산자 보조금을 폐지하고 연탄 가격을 추가 인상할지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 한 통화에서 “연탄을 쓰는 에너지 빈곤층의 난방비 부담이 너무 커서 올해 가격을 동결했다. 내년 연탄 가격 추가 인상이나 생산자 보조금 폐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연탄 가격 현실화는 가격 인상 속도나 연탄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연탄 쓰는 에너지 빈곤층 10만 가구

정부는 화석연료 사용 감축 등을 위해 연탄 사용을 줄이려 하지만 “추위를 견디기 위해 한밤중 자다가도 일어나 연탄을 가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연탄은 난방비 부담 등으로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통계연보’를 보면 석탄은 2010년 원자력을 제친 뒤 7년째 1위를 차지한 에너지원이다. 이처럼 전체 발전 비율의 절반이 넘는 에너지원을 석탄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G20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후속 조처로 서민들이 주로 쓰는 연탄 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탄은행이 올해 조사한 ‘2019년 전국 연탄 사용 가구 조사’를 보면 연탄 사용 가구는 전국 10만347가구로 추산된다. 2017년과 비교해 23.0% 줄어들었다. 하지만 등유나 가스 보일러로 교체했다기보다는 도시 재개발로 이사하거나 노인성 질환 등으로 고령 사용자들이 요양시설로 옮겨가거나 숨져 실제 사용 가구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허 대표는 “지금 추세라면 2025년 이후 연탄 사용 가구는 5만∼7만 가구를 밑돌 것이라고 예상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연탄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지금 수준으로 동결하되 창호 등을 개선해 난방 효율을 높이고 가스나 등유 등을 쓸 수 있도록 소득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2007년부터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 가구, 장애인 가구, 홀몸 노인 등 저소득층 가구에 상품권 형태의 연탄 쿠폰을 지급하고 있다. 2006년 공장도가격 기준으로 인상된 만큼 차액을 지원해 연탄값 상승으로 인한 난방비 추가 부담을 덜기 위한 조처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정부가 저소득층 가구에 지급하는 공장도가격 인상분은 배달료를 포함한 실제 소비자가격 인상분과 견줘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실제 연탄 가격 상승분의 상당 부분이 연탄 사용 가구 부담으로 돌아온다.

전체 10만347가구 가운데 기초생활 수급자 가구는 3만1043가구, 차상위계층 가구는 1만2208가구에 이른다. 연탄은행은 자식이 부양 의무를 기피하거나 생활 환경이 열악한 소외 가구가 4만2621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전체의 85.5%에 이르는 연탄 사용 가구가 에너지 빈곤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전월세로 쪽방이나 옥탑방에 살고 경제활동을 하기 힘든 고령이어서 한 달 소득이 50만원대를 밑돈다. 정부가 보일러 교체를 희망하는 연탄 사용 가구에 교체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보일러를 설치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비싼 가스나 기름(등유)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들이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가 지원한 보일러 교체 가구는 2018년 기준 508가구뿐이었다.

대다수 쪽방·옥탑방 고령자들

12월10일 찾은 강원도 원주 일산동의 박아무개(90)씨 집은 그나마 평지여서 배달료를 포함한 연탄 한 장 가격이 800원이다. 40만6천원어치의 연탄 쿠폰으로 박씨가 교환할 수 있는 연탄은 500여 장이다. 그는 자비로 연탄 300장을 더 샀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노령연금을 합친 50여만원으로 사는 박씨에겐 한 달 치 생활비의 절반이나 되는 돈이 연탄을 사는 데 들어갔다. 여기에 연탄은행에서 지원받은 200장을 합한 것이 박씨가 이번 겨울을 날 수 있는 연탄의 전부였다.

2구3탄(구멍 2개에 연탄 6장 들어가는 것)짜리 연탄보일러에 밤낮으로 하루 8개의 연탄을 갈아도 온기를 유지하기 빠듯하다. 백발의 박씨는 방 안에서도 긴팔 내복에 보라색 꽃이 그려진 긴팔 티, 조끼, 외투까지 네 겹을 껴입었다.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연탄값이 너무 올랐어요. 서민들은 너무 고통스럽고 추워요. 추우니까 껴입는데 옷이 두꺼우니까 움직이질 못하겠네요.”


원주=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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