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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헌법소원] 눈치 안 보고 ‘채식 급식’ 먹을 수 있도록

‘공공급식 채식선택권’ 헌법소원 맡은 장서연·지현영 변호사 인터뷰
등록 2020-04-11 04:43 수정 2020-05-02 19:29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엄격하게 비건을 지향하는 학생들은 밥과 김만으로 식사하는 경우도 있다. 공교육이 학생들의 건강권에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청구인 8

“5년 전부터 비건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축산업, 육식으로 인한 산림 파괴, 곡류 부족, 물 부족, 메탄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이 모든 것이 축산업과 육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청구인 10

청구인들의 경험은 공통적이었다. 동물권·환경 보호 등을 이유로 한 ‘윤리적 채식’은 생존의 기본인 ‘식’에서부터 존중받지 못했다. 육식 위주의 급식에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건 기본이었고, 차별과 배제의 시선은 따가웠다. 신념에 따른 채식은 ‘편식’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이에 수년 동안 학교, 군대, 병원 등 공공급식에서 소외된 이들이 목소리를 모았다. “급식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4월6일 ‘고기 없는 월요일’에 낸 채식인들의 헌법소원심판청구엔 62명이 이름을 올렸다. 2003년 미국에서 공중보건 캠페인으로 시작한 ‘고기 없는 월요일’은 2009년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유럽 의회에서 환경 캠페인으로 제안하면서 40여 개국으로 확산됐다. 한국에선 2010년부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채식선택권과 관련해 처음 제기된 헌법소원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사진 오른쪽) 변호사와 사단법인 ‘두루’의 지현영(왼쪽) 변호사가 맡았다. 장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군입대를 앞두고 “군대 내에서도 채식 식단을 허하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정태현씨의 진정 대리인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다” “눈총을 받는다” “교우관계까지 신경 쓰인다”처럼 청구인들이 학교급식을 하면서 겪은 불이익을 활자로 봤을 때 장 변호사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식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구인들처럼 채식으로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는 4년차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달걀·우유 등은 먹는 채식인)인 지 변호사도 말을 보탰다. “나도 회식할 때 눈치 본 적이 있어서 충분히 공감했다.” 두 변호사를 4월7일 오전 공감 사무실에서 만났다.

청구인들은 어떤 불이익을 겪었나.
장서연 변호사(이하 장) 학생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급식에서 먹을 수 있는 밥만 먹어 건강을 포기하든가, 12년 동안 도시락을 싸든가. 또 채식하면 학교에서 혼자 밥을 먹게 된다고 한다. 학생 처지에선 소외를 느끼고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또 자녀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채식을 하면서도 주변에서 배척당해 홈스쿨링(가정학습)을 하게 됐다는 학부모 사례도 있었다.

채식이 신념을 지킨다기보다 ‘편식’하는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지현영 변호사(이하 지) 채식인들에게 한 설문조사에서 채식하는 이유를 물으면 ‘건강 목적’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청구인들은 환경문제와 동물권, 양심, 윤리 때문에 채식하는 경우였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신념을 갖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장 변호사는 2013년 녹색당과 함께 공장식 축산이 동물을 학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낸 적이 있다. 헌재는 2015년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하지만 장 변호사는 해당 결정이 의미 있다고 봤다. 헌재가 국가의 의무는 미흡할 수 있지만 동물복지 인증제 같은 최소한의 조처는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식선택권의 경우 국가가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아 최소 보호도 못한다고 봤다.

이번 헌법소원 대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교급식법으로, 같은 법 시행규칙 제5조 2항은 식단을 작성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담고 있는데, 어육류·우유 등의 식품을 쓸 것을 규정하면서도 채식인들의 채식선택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 헌법에서 정한 건강권, 양심의 자유,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학교급식을 이용하는 채식인 학생과 채식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 등 24명이 참여했다.

둘째는 대학·군대·병원 등에서 공공급식을 이용하는 대학생, 군인 등 38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한 입법부작위에 의한 기본권 침해 헌법소원이다. 공공급식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도록 입법 조처를 하지 않은 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헌법소원을 추진한 녹색당은 “채식을 지향하는 것은 먹을거리에 대한 기호를 넘어 건강을 돌보고 동물을 착취하지 않으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기후위기 대응 실천”이라며 헌법소원의 취지를 설명했다.

주요하게 짚은 쟁점은 무엇인가.

학교급식 채식선택권에 대해 법적 다툼을 한 적도, 채식선택권이 헌법상 기본권인지에 대한 판단도 과거에 없었다. 다만 학교급식과 관련한 헌법소원은 있었다. (2006년) 학교급식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학교급식의 운영 원칙을 학교장 직영으로 규정한 조항은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급식업체들이 헌법소원을 낸 사례 등이다. 당시 헌재는 학교급식이 단순히 영양 공급 차원이 아니라 교육 목적이 있고,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라고 판시했다. 이를 참고해 학교급식의 공공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공급식에 관한 헌법소원 청구에서 환경권이 제한된다고 주장했다. 환경문제는 막연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언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외국에선 기후위기 관련 소송들이 성공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영국에선 히스로공항의 활주로 증설 계획에 대해 법원이 “활주로 하나를 확장하면 영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같은 주요 보고서들에서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헌법에 국가는 환경보전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서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급식은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는 (공공급식이 환경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헌법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청소년들이 낸 기후위기 헌법소원과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
장 그러길 바란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법적 다툼은 처음인데다, 헌법소원에서 기본권을 직접 침해했느냐가 요건이라서 법원에서 (환경과 기본권 침해를) 어떻게 연결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채식선택권을 놓고 소송한 국외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두 변호사는 채식급식권을 법으로 보장한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2017년 공공급식에서 모든 일일 메뉴에 채식 옵션을 둬야 하고, 채식 식단은 영양소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병원에서 비건에게 비건식을 제공해야 하고,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유사한 법안은 뉴욕주에서도 통과됐다. 이스라엘과 캐나다에서는 군대에서 비건식을 제공해야 한다. “외국은 (채식이) 종교로서도 존중되다보니 소송 없이 좀더 쉽게 적용되는 것 같다.”(지현영 변호사)

이들은 총선 결과를 지켜본 뒤 입법 운동도 고려하고 있다. 장 변호사는 “사회적 환경문제와 차별을 제도적으로 없애기 위해 시작한 거니까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한다”며 “헌재에서 전향적인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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