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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빠의 1100쪽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

1100쪽짜리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의혹과 진실>
등록 2020-07-25 12:59 수정 2020-07-31 02:25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4월12일 전남 목포 신항에 거치되어 있는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4월12일 전남 목포 신항에 거치되어 있는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1100쪽 넘는 엄청난 분량에 일단 압도되고 만다. 세월호도 무거운데 책은 더 무겁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이런 생각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글의 전개가 머리에 들어오면 마치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당시 상황이 그려진다. 선장 이준석, 기관장 박기호 등 선원들의 시간대별 위치와 움직임이 복원된다. 해경 수뇌부의 움직임, 동원 가능한 헬기와 선박, 인력들의 위치와 실제 행위가 하나씩 머릿속에 인화된다. 청와대와 정보기관도, 해양수산부와 보건복지부도, 단원고와 청해진해운도 어디서 언제 무엇을 했는지 사실로서 드러남을 경험한다.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쓴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의혹과 진실>(선인 펴냄)이다.

아버지는 왜 보고서들을 읽었나

나는 몇 쪽을 읽다 바로 노트를 꺼내 조금씩 메모했다. 세월호 참사의 실제 상황 상당 부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그려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있는 의혹을 그저 의혹이 아니라 맥락 속에 위치한 의혹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단원고 학생들은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세월호 선원들의 거짓말에는 배후가 있다/ 해양경찰 일선 실무자들의 책임과 거짓말/ 구조작전의 지휘자 해양경찰은 무엇을 했나/ 대통령과 청와대의 무능/ 언론의 책임과 ‘가짜뉴스’의 배후/ 정보기관의 유가족 사찰과 개입 의혹/ 용납해서는 안 되는 국가기관의 증거인멸. 이 책의 8개 장 제목들이다. 각 장에 시종일관 그 생생함이 이어진다. 양을 보고 이거 언제 다 읽나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메모하며 보았는데도 이틀 반 만에 완독하고 말았다. 그만큼 저자의 촘촘함과 상황 설명의 요령은 빛났다.

사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저자가 읽어낸 자료의 총량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조사록, 법원 판결문, 검찰과 국방부 보통검찰부 그리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술조서와 수사보고서, 수사 설명 자료, 감사원 문답서, 확인서, 감사결과보고서, 해경의 전화 녹취록과 공문서, 기무사령부 문건, 여러 연구기관의 조사연구 보고서, 공군본부 시간대별 상황 조치 등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료를 6년간 차곡차곡 모으고, 읽고, 사실들을 하나하나 복원해간 애씀이 행간마다 읽힌다. 진술들은 엇갈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추정되는 시간대나 위치, 기타 상황 인식을 토대로 진술 내용의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사실을 재구성했다. 저자의 연구적 상상력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인용된 자료들을 종합하다보면 저자의 합리적 추정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공감에 이르게 된다. 비학자 유가족임에도 저자의 자료 비판과 사실 확정의 방법론은 학자들의 그것을 능가하는 수준을 보여준다.


분노 대신 인내하며 진상규명

완독 뒤 든 첫째 생각은 ‘내게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다. 추상화의 오류는 고통의 실재에 공감하고 함께하기보다 추상화된 사회적 과제에 집중하고 모든 것을 그것에 환원해버리는 실천의 편향을 낳기 마련이다. 이 책은, 신문기사와 몇 권의 책으로 참사의 실재를 꽤 알고 기억한다고 믿었던 나의 기억 방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표피적인 사실 이해와 그에 짝하는 진상규명 과제에 대한 내 ‘지식’은 학문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않았다. 그에 비해 저자의 사실 이해와 진상규명 과제에 대한 지식은 학문적이며 실천적이다.

세월호 안의 선원들, 그리고 배 바깥 이른바 ‘구조세력’의 움직임, 해경 본청과 서해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 그리고 122구조대 등의 대응, 청와대, 해수부, 법무부, 복지부, 그리고 해군과 공군, 또 국가정보원, 기무사, 경찰, 감사원, 그리고 단원고와 청해진해운으로 펼쳐지는 다중 현장의 사실들을 시간대별로 일일이 기억하고 그 사실들 사이에 맥락적으로 존재하는 진상규명 과제를 하나하나 짚어낸 저자의 기억 방식은 학문적·실천적 진정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누구를 향해 그리고 무엇을 밝혀내기 위해 세상과 맞서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 방식을 진화시켜준 저자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둘째 생각은, 광장에서의 진상규명과 합력으로서의 운동에 대해서다. 정치적 노력과 시민운동에 더해 광장에 운집한 시민의 힘이 모여 부정한 박근혜 권력을 몰아냈다. 공간·주체·방법의 다원성이 결합해 현실적 힘으로 작동해 결국 변화를 이끌어냄을 목도한 사건이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그간의 노력과는 다른 방법으로 합력의 한 부분을 채워줬다. 특별법 투쟁이 이어질 때도, 특별조사위원회가 공식 영역에서 진상규명을 시작했을 때도, 암울한 시기에도, 다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을 진행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자는 자료와 씨름하며 탐구하고 분노를 억제하면서 한올 한올 글을 이어가는 인내의 방식으로 진상규명을 해간다. 개인 작업이지만 이 책이 나옴으로써 그의 실천은 하나의 광장을 연 것과 다름없다.

검찰·재판부가 놓치는 지점 조목조목 비판

무엇인가 바로잡는 일은 외침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법리와 공식 조직의 조사만으로도 이룰 수 없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게 학문적 추구를 통한 합리적 추정이라는 조밀한 실천이다. 이 실천이 외침을 강력하게 만들며 법리와 공식 조사를 실효 있게 해준다. 합력이 작동하는 현실을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의 과제다.

대학교수인 내가 하지 못한 실천을 비전문가인 저자가 해냈다는 점이 가슴 아프고 감사하다. 검찰과 재판부가 보지 못하고 허술하게 지나간 수많은 지점을 하나하나 찾아내 비판하는 점이 서글프다. 이 책의 출간은 많은 이의 응답을 요구한다, 검찰과 사법부에, 권력에, 학자에게 그리고 독자인 우리 모두에게. 일독하고 기억의 방식, 실천 방식을 진화해가기를 권한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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