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식을 위해 입양아를 ‘선물’한 게 학대로 이어진 것 아닌지 의심되는 사건이 여론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는 사람이 아닌 ‘상품’이었다. 끔찍한 스펙터클에 사람들은 공분하고 정치권은 무슨 방지법 시리즈를 쏟아낸다. 몇 차례나 반복돼온,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고발 프로그램 방송으로 번져나간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는 공감과 자기과시가 뒤섞여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의사표현을 하고 ‘좋아요’로 공감을 모으는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인데, 그렇다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음식 홍보 사진에 ‘#정인아미안해’를 붙인 일도 방식은 문제지만 진심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굿즈’를 만들어 파는 사례에 이르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 세상에 살고 있나 싶다. 추모와 공감마저 ‘상품’이 되는 시대적 흐름에 재빨리 올라타 시장을 선점(?)하려는 장삿속이 아닌가.
정치인들은 정말 안타까워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혹은 이 기회에 이름 석 자 알려보고자 제도적 보완을 한다며 분주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냉소적이다. 이미 있는 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아동보호전문기관, 병원 등이 개입을 시도했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다. 경찰과 관련 기관의 전문성 제고와 아동을 원가정에서 분리하기 위한 보호기관 확충이 필요하다. 돈을 더 들여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역이다. 아동학대는 사회적 재생산을 오직 개별 가정이 떠맡는 환경에서 더 심화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돌봄을 함께 책임지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이 강화돼야 한다.
결국 사람과 예산, 관행과 문화의 문제인데 정치권 논의는 매번 첫 단추를 끼우는 정도에 그친다. 정치인은 시대 흐름을 바꾸는 것을 꿈꿔야 하는데, 법안이든 이미지든 아니면 전직 대통령 사면이든 선거에 내다 파는 것만이 전부가 된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모두의 목표인 시대에 어떤 사명감을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코스피 3000 시대가 열렸다는데, 일부 언론은 ‘동학개미’의 성과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중산층 이슈였던 주식 투자는 이제 대학생들까지 빚을 얻는 세태로 이어지고 있다. 남들이 이득을 볼 때 가만있는 건 손해를 보는 거나 다름없고, 각자도생 사회에서 뒤처지는 건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란 시대 인식이 배경이다.
한국은행 등은 실물과 금융의 괴리와 과도한 부채가 코로나19 종식과 맞물리면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적 측면 외의 걱정도 있다. 시민이 주주와 투자자 정체성으로 대체되는 현상의 강화이다. 개인이 오직 투자한 만큼 혹은 그 이상 이득을 보는 게 최고 가치인 세상에 공동체 타령은 공허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요구하는 산업재해 유가족의 단식은 손해를 보상해달라는 게 아니라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을 대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처음에 이들의 눈물에 진심으로 동조하는 듯했지만 결국 법안은 누더기가 돼 생색내기 수단으로 전락했다. 산재는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일 뿐이지만 공동체 기준에서 보면 사람의 죽음이라는,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없는 비극이다. 여기는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 사회인가? 답은 우리 눈앞에 이미 있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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