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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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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같은 더위가 일상화된다

100년 동안 계단식으로 기온 상승, 가장 높았던 기온이 평균기온으로…
탄소중립 달성해도 기후변화는 필연적
등록 2021-07-14 13:42 수정 2021-07-17 06:46
장마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2021년 7월6일 오후 물에 잠긴 전남 장흥군의 한 축사. 연합뉴스

장마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2021년 7월6일 오후 물에 잠긴 전남 장흥군의 한 축사. 연합뉴스

수만 년 전의 빙하기가 46억 년 지구 역사상 가장 추웠던 시기에 속한다고 한다.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따뜻하지만, 그래도 추운 시기에 속하는 건 마찬가지다. 2021년 6월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고온이,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섭씨 50도에 가까운 폭염이 이어져서 마치 지구에 불난 것처럼 수은주가 치솟는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지역에 불폭탄이 터졌으니 이런 물음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기상관측 자료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기상관측 자료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많이 배출됐고, 그 결과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예전과 다른 모양의 위도 간 에너지 불균형을 만들기 때문에 대기에서 열 수송 형태와 세기를 바꾸며, 필연적으로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강에 쌓인 커다란 돌무더기로 인해 물길이나 그 속도가 바뀌고, 물길이 약해진 곳에 모래나 흙이 쌓여 흐름을 더 더디게 하는 것처럼 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지구 대기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대기 흐름이 약해진 지역에서는 현재 북미 서쪽 지역에서 나타난 것처럼 블로킹(대기 정체)으로 ‘열돔 현상’이 나타난다. 블로킹 다른 쪽에서는 집중호우가 나타나거나 태풍이 강하게 발달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경험한 우리나라 여름철 기후를 기억해보자. 2018년에는 대기 정체로 열돔 현상이 일어났다. 여름철 평균기온, 폭염 일수, 열대야 일수에서 1994년 기록을 경신해 역대 1위로 기록된다. 여름에 시원한 곳으로 알려진 강원도 홍천의 기온이 41도에 이르렀다. 2019년에는 1904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7개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대개 우리나라에 태풍이 5개 접근해 2개가 상륙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많았다.

2020년 장마는 8월15일에 끝나 역대 가장 늦게 끝난 장마로 기록된다. 기후적으로 장마가 끝나는 시기인 7월25일께 시작한 집중호우는 장마가 종료될 때까지 20여 일간 전국에 물폭탄을 가져왔다. 섬진강이 범람해서 전남 구례가 물에 잠겼고 이웃 마을인 경남 하동에서도 비슷하게 물난리가 났다.

하지만 이 재해는 이상기후뿐 아니라 관리 잘못으로 인한 요인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2020년 여름철에 보인 집중호우 형태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장마기의 강수 분포를 시간별로 살펴보면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 집중되는 모양이다. 오전에만 비가 집중되는 해가 있고, 오전과 오후 모두에서 비가 집중되는 해가 있다. 홍수 피해 대부분은 오전과 오후 모두 집중호우가 발생하는 해에 나타난다. 2020년이 꼭 그런 경우였다. 단지 강수량이 많았고, 지방자치단체와 치수 담당 기관에서 효율적으로 물관리를 하지 못해 피해가 크게 났다.

2100년 지구 평균온도는 18도?

2018년 여름 더위는 대기 정체라든가 북태평양 고기압 확장 등에서 1994년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태풍이 많이 상륙한 것도 1959년과 1991년에 이미 경험했다. 이처럼 최근 3년 동안 나타난 여름철 이상기후는 강도가 셌지만 예전에 없던 일이 나타난 건 아니었다. 폭염, 태풍 그리고 집중호우가 연속해서 나타났기에 특이하게 여겨진다.

세계기상기구와 국제환경연합이 1988년 설립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난 30여 년간 기후변화 보고서를 다섯 차례 출판했다. 이 보고서에서 대기과학자들은 일관되게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금세기 안에 심각한 지구온난화가 나타나고 인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후변화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기록된 지난 5억 년간의 지구 온도 변화 기록에 따르면 남북극 빙하 존재 유무의 기준점이 되는 온도가 섭씨 18도 정도로 나타났다. 현재 지구 평균온도가 15도이니 아직 3도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후손이 살아야 할 2100년의 온도는? 지금 추세로 온도가 높아진다면 18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빙하가 없는 지구가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나라에서 구한말부터 관측된 기상자료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이 선형적으로 높아지지 않고, 계단을 오르듯 갑작스럽게 높아져서 한동안 지속된다(그림 참조). 계절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한 개 혹은 두 개의 계단을 올라온 듯하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전 시기에 높았던 온도가 평균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계단을 두 번 오르면 가장 높았던 기온이 평균으로 바뀌었다. IPCC 기후모델 전망에 따르면 앞으로 20년 뒤 2040년쯤에는 서울 온도가 한 계단 위로 올라갈 거라고 한다. 그때는 2018년 경험한 여름철 무더위가 일상화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이에 동반된 기후변화를 막을 방안이 있을까? 최근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즉 탄소배출 제로를 만든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미국, 중국 등 온실가스 배출 주요 국가도 탄소중립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현실화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온 국민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을 얘기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후변화는 멈출 수 없다. 현재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2100년 뒤에도 대기 중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에 기후변화 영향이 크게 나타날 거라는 전망이다.

최선의 일은, 잘 예측해 피해 최소화

산업혁명 당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은 280ppmv(공기 100만 개에 이산화탄소 280개)였다. 현재는 420ppmv, 지난 250년간 50% 늘었다.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이산화탄소는 매년 1%씩 증가해 2050년에는 550ppmv가 넘을 것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지금까지 쌓였고 앞으로 30여 년간 추가로 쌓일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기후변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름철이면 반복될 폭염과 태풍 그리고 집중호우 발생을 잘 예측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대비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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